
압록강 건너 지린성 지안(集安)시, 옥수수밭 한가운데 거대한 돌무지 하나가 솟아 있다. 이름하여 장군총. 그런데 이 무덤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21세기 학자들은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 회에서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어떻게 고구려사를 ‘중국 지방정권’으로 왜곡하려 했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정작 그 역사 전쟁의 무대가 되는 유적들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국내성과 환도산성은 중국 땅에, 대성산성과 안학궁은 북한 땅에 있다. 같은 왕조의 수도가 국경 두 개로 갈라져 있는 셈이다.
한국인이 자기 조상의 궁궐터를 밟으려면 여권과 비자, 때로는 정치적 허가가 필요하다. 역사는 국경을 모르지만, 답사는 국경을 넘지 못한다. 이번 회차에서는 국내성부터 평양 안학궁까지, 고구려 700년의 흔적을 실제 지리 위에서 따라가 본다.
◆ 시대의 풍경
고구려는 서기전 37년 졸본(오늘날 랴오닝성 환런) 오녀산성에서 나라를 세운 뒤, 서기 3년 유리명왕 22년에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지금의 지안시 통구분지 일대다. 국내성은 평지의 방형 도성이었고, 바로 뒤편 산줄기에는 유사시 왕실이 피신할 환도산성이 짝을 이루어 서 있었다. 평시엔 평지성에서 다스리고, 전시엔 산성으로 옮겨 농성하는 이 ‘평지성-산성 짝짓기’ 구조는 고구려 도성 체계의 특징으로 꼽힌다.
국내성 시대는 427년, 장수왕 15년에 평양 천도가 이뤄지기까지 무려 424년간 이어졌다. 그사이 5세기 초 광개토왕이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완성했고, 그의 아들 장수왕이 414년 아버지의 업적을 새긴 거대한 비석을 국내성 인근에 세웠다. 이후 평양으로 옮긴 고구려는 대성산성을 새 방어 거점으로 삼고 그 남쪽 기슭에 안학궁을 지어 668년 멸망 때까지 왕도로 삼았다.
“이십이년 겨울 십월, 왕이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二十二年 冬十月 王遷都於國內 築尉那巖城).”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국내성 시대(3~427년)는 후한 멸망과 위진남북조의 혼란기와 겹친다. 고구려는 이 분열을 틈타 요동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 유럽/중동
광개토왕이 만주를 정복하던 410년, 서로마제국은 서고트족 알라리크에게 로마 도성이 함락당하는 치욕을 겪는다.
🌏 기타 지역
일본 열도에서는 야마토 정권이 오사카 일대에 다이센료 고분 같은 거대 고분을 조성하던 시기로, 동아시아 전역이 ‘거대 무덤의 시대’였다.
[이미지: 지안시에 밀집한 국내성·환도산성·왕릉군의 지리적 배치 (모식도)]
⚔️ 그날의 현장
“414년 가을, 국내성 들판에 수천의 인부가 모였다. 화강암 덩어리를 실은 수레가 삐걱이며 지나가고, 석공들은 예서체 글자 한 자 한 자를 정으로 새겼다. 1,775자. 아버지 광개토왕이 정복한 성과 나라의 이름들이었다.”
“장수왕은 비석이 서는 것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 돌은 천 년을 버틸 것이다. 실제로 그 비석은 1,600년이 지난 오늘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 다만 이제는 국경 저편, 외국의 관광지가 되어.”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지안 통구분지의 우산하고분군에는 장군총과 태왕릉이 나란히 남아 있다. 장군총은 화강암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7단 돌무지무덤으로, 밑변 한 변이 약 32m, 높이는 약 13m에 이른다. 정교한 축조 기법 때문에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며 고구려 석축 무덤 기술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태왕릉은 밑변이 62.5~68m에 달해 장군총보다 훨씬 크지만 붕괴가 심해 원형을 알아보기 어렵다.
국내성 자체는 오늘날 대부분 지안 시가지 아래 묻혀, 성벽 일부만 도로와 주택 사이로 드러나 있다. 환도산성은 산줄기를 따라 쌓은 석축 성벽과 왕궁터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남아 있어 국내성보다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다. 2004년 7월 1일, 유네스코는 쑤저우 회의에서 국내성·환도산성·왕릉과 귀족묘군을 포함한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 43곳을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무덤군’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흥미롭게도 같은 해, 같은 회의에서 북한 소재 고구려 고분군도 별도로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평양·남포·안악 5개 구역에 흩어진 고분 63기(벽화고분 16기 포함)로, 강서대묘와 동명왕릉, 쌍영총 등이 포함된다. 분단국의 유산이 같은 날 각자의 이름으로 등재된 이례적 사례였다. 동북아역사재단 조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고구려 문화유산은 총 717곳으로, 중국 406곳, 북한 214곳, 남한 89곳, 일본 8곳에 흩어져 있다.
국내성 시대
서기 3년~427년 (424년간)
핵심 인물
광개토왕, 장수왕
유네스코 등재
2004년 7월, 중·북 동시 등재
유적 총수
4개국 717곳
🔍 학계의 시각 – 광개토왕은 어느 무덤에 잠들었나
태왕릉설
규모(밑변 62.5~68m, 높이 14m)가 장군총을 압도하고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 명문 벽돌이 출토돼, 중국 학계 다수와 국내 일부 학자가 태왕릉을 광개토왕릉으로 본다.
장군총설
국내 일부 학자는 출토 와당과 명문 기와를 근거로 태왕릉을 광개토왕릉으로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장군총이 광개토왕릉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1906년 태왕릉 발견 이후 120년 가까이 정설이 없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평양의 대성산성과 안학궁은 지안보다 사정이 더 딱하다. 대성산성은 장수왕이 427년 천도와 함께 쌓은 방어 거점이며, 그 남쪽 기슭 안학궁은 둘레 약 2.5km의 방형 평지 궁성으로 왕과 왕실이 거처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다만 정확한 축조 시기를 두고는 6세기 초설부터 후기설, 심지어 고려시대설까지 갈릴 만큼 자료가 부족하다.
2006년 서울시와 고구려연구재단은 김일성종합대학 등 북측 전문가 15명과 함께 안학궁 남북공동발굴조사를 실시했다. 분단 이후 최초의 고구려 유적 남북 공동조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지만, 이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이런 협력은 다시 이어지지 못했다. 반면 지안은 중국의 국경절 관광지로 개발돼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지만, 정작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조차 찾기 어렵다는 현장 보고도 있다.
| 구분 | 고구려 시대 | 현재 |
|---|---|---|
| 접근성 | 왕과 백성이 국내성-평양을 자유로이 오가며 통치 | 분단으로 한국인은 중국 지안만 방문 가능, 평양 유적은 사실상 접근 불가 |
| 관리 주체 | 고구려 왕실이 직접 축조·관리 | 중국·북한이 각자 영토 내 유적을 별도 관리, 2004년 각각 유네스코 등재 |
| 기록과 전승 | 비석과 벽화, 사서로 업적을 새김 | 2006년 남북공동발굴 등 제한적 학술 협력, 디지털 복원·VR 답사로 접근성 보완 시도 |
[이미지: 국내성 천도부터 오늘날 유산 보존까지 고구려 유적의 시간선]
📚 더 깊이 알아보기
- 우산하고분군에서는 장군총·태왕릉 외에도 수천 기의 크고 작은 돌무지·봉토무덤이 확인돼 왕도 국내성의 위상을 보여준다.
- 광개토왕릉비는 1,775자 예서체 비문 전체가 남아 있는 동아시아 최대급 금석문으로, 신묘년 기사를 둘러싼 해석 논쟁이 지금도 계속된다.
- 안학궁 남북공동발굴(2006년)은 이후 재개되지 못했지만, 남북 학계가 함께 고구려 왕궁터에 삽을 댄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국내성의 돌 하나, 안학궁의 주춧돌 하나는 국경이 갈라놓기 전 하나였던 나라의 증거다. 유적을 지키는 일은 과거를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하나의 눈으로 그 돌을 바라볼 날을 준비하는 일이다.
“국경은 지도 위의 선일 뿐, 돌무지 속 왕들은 여전히 하나의 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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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중국의 동북공정 – 역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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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고구려사 연구 – 남북의 시각
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고구려 편 (총 4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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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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