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8월 22일, 일요일. 경성 하늘은 여전히 늦더위로 후텁지근했다. 내일모레면 처서, 더위가 물러간다는 절기지만 아직 하루가 남아 있었다. 거리는 여느 일요일처럼 한갓졌으나, 이날 아침 조간 동아일보 1면 한구석 짧은 글 하나가 조용히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횡설수설」이라는 자그마한 칼럼이었다.

그날의 경성
이날 동아일보 1면 「횡설수설」 코너에는 기자 최원순이 쓴 짧은 글이 실렸다. 공산주의자를 잡아들이고, 신문을 억누르고, 사람들이 모이는 것마저 막아서는 총독부의 이른바 ‘문화정치’를 겨눈 글이었다. 겉으로는 부드러운 문화정치를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무단통치와 다를 바 없다는 뜻을, 짧은 글 속에 눌러 담았다.
당국은 이 짧은 글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글을 쓴 최원순은 보안법 위반으로, 편집 겸 발행인 김철중은 신문지법 위반으로 걸려 넘어갔다. 최원순은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도쿄 유학 시절 2·8독립선언에 이름을 올렸다가 붙잡혀간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신문기자로, 칼럼 한 줄로 다시 법정에 서게 된 셈이었다. 다음 달 8일 공판에서 검사는 최원순에게 징역 8개월, 김철중에게 금고 6개월을 구형할 참이었다.

경성과 한반도
최원순의 필화는 그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신문지법과 보안법은 조선 언론 위에 늘 드리워진 그늘이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창간 이래 압수와 정간을 밥 먹듯 겪어왔다. 「횡설수설」은 1920년 창간 때부터 이어져 온 짧은 촌평 코너였는데, 짧다고 만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짧아서 더 날카로운 말을 눌러 담을 수 있었고, 그만큼 당국의 눈초리도 매서웠다.
한편 경복궁 안에서는 그해 1월부터 업무를 시작한 새 조선총독부 청사가 한 달 남짓 뒤인 10월 1일 낙성식을 앞두고 있었다. 조선 사람의 입은 틀어막으면서 저희 청사는 웅장하게 세우는 그 대비가, 이 시절 사람들 눈에는 씁쓸하게 비쳤을 법하다.

그날의 세계
이날 그리스에서는 정변이 일어났다. 콘딜리스 장군이 군대를 움직여 팡갈로스 장군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콘두리오티스 제독을 다시 대통령 자리에 앉혔다. 큰 유혈 없이 이루어진 정변이었고, 콘딜리스는 그해 11월 총선을 약속했다.
중국에서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북벌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날 국민혁명군은 양쯔강 항구 도시 웨저우를 점령하며 후난성 전체를 손에 넣었다. 미국 뉴욕에서는 무성영화 스타 루돌프 발렌티노가 병원 침상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위궤양이 터져 수술을 받았지만 복막염에 늑막염까지 겹쳐 체온이 103도를 넘나들었다. 바로 다음 날, 그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경성 24시
일요일 아침, 종로 거리 교회에는 신자들이 모여들었고, 낮에는 축음기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 유행가를 들었다. 그 며칠 전 현해탄에 몸을 던진 성악가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 이야기는 여전히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두 사람이 실은 로마에서 잡화상을 차리고 살아 있다는 헛소문까지 나돌 정도로, 사람들은 그 정사 사건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늦더위 속에서도 배재, 중앙, 휘문, 경신 네 학교 학생들은 그달 내내 야구 연맹전으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필화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정사 소문이,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야구 한 판이 그 일요일의 전부였다.

100년의 거울
100년 전 그날, 짧은 칼럼 한 줄에 기자와 편집인이 나란히 법정에 서야 했다. 1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신문과 방송, 인터넷 어디서든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자유로이 쓴다. 그 당연함이 사실은 셀 수 없이 많은 최원순들이 감옥에서 치른 값이었다는 것을, 이 짧은 칼럼 하나가 새삼 일러준다.
| 항목 | 1926년 | 2025년 |
|---|---|---|
| 언론 자유 | 보안법·신문지법 사전 검열 | 헌법상 언론·출판 자유 보장 |
| 필화 결과 | 기자·편집인 기소, 옥고 | 대체로 표현의 자유로 보호 |
| 뉴스 속도 | 조간 신문, 하루 한 번 | 실시간·전 세계 동시 |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은 처서,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절기다. 최원순과 김철중은 다음 달 초 법정에 서야 한다. 짧은 칼럼 한 줄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100년 전 그 여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 지켜본다.
THE KOREAN TODAY × WIA CODE
이 기사의 WIA Code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사실과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기본 카메라로 찍으면 스캐너 안내 페이지가 열립니다 — 기사 바로 열기
움직이는 코드는 스트림입니다 — WIA Code 스캐너로 약 118초 비추면 기사 전문(사진 포함)이 폰에 저장되어 인터넷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WIA Code · 코리안투데이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