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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8월 17일 – 현해탄 정사 열나흘째, 시신 없는 미스터리는 계속된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5101
오전판 · 1926년 8월 17일 화요일

100년 전 오늘

🕙 오전 10시 10분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926년 8월 17일 화요일, 경성은 또 한 번 늦더위 속에서 하루를 열었다. 부산 부두와 시모노세키 항구에는 여전히 수색선이 오갔다. 현해탄에 몸을 던진 두 사람,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자취는 열나흘이 지나도록 찾지 못했다. 경성 법원가 취재진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그날의 경성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8월 17일자 조간은 나란히 부산발 소식을 실었다. 현해탄에서 사라진 두 사람의 시신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고, 부산수상서와 시모노세키 경찰서가 합동으로 벌인 수색도 성과 없이 끝났다. 8월 4일 새벽,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관부연락선 덕수환 갑판에서 양장 차림의 여자와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부둥켜안고 바다로 몸을 던졌다. 배는 곧바로 멈추고 부근을 샅샅이 뒤졌지만 두 사람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선객 명부에는 남자는 김수산, 여자는 윤수선이라 적혀 있었으나 본명이 아니었다. 훗날 이들은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으로 밝혀졌다.

두 사람을 둘러싼 소문은 날마다 새로 태어났다. 신문들은 정사라 못 박았지만, 정작 두 집안 사람들과 가까운 이들은 그 말을 딱 잘라 부인했다. 김우진은 목포의 이름난 집안 아들로, 이미 처자식이 있는 몸이었다. 그가 왜 윤심덕과 같은 배를 탔는지, 정말 바다에 몸을 던졌는지, 아니면 어디론가 몸을 감췄는지, 그 답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날 다른 소식도 있었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시대일보가 끝내 발행을 멈췄다는 소식이 문단과 언론계를 술렁이게 했다. 최남선이 세운 이 신문은 조선어로 세상을 읽던 창 하나가 닫혔다는 뜻이었다.

경성과 한반도

현해탄 소식은 경성만의 일이 아니었다. 관서 지방은 이달 초 쏟아진 폭우로 대동강과 청천강, 압록강이 넘쳐 마을이 통째로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평양과 신의주 일대 이재민들은 아직 임시 거처를 벗어나지 못했고, 구호 곡식과 옷가지를 실은 화물이 철도를 따라 북으로 올라갔다.

부산에서는 관부연락선을 오가는 승객들 사이에 뒤숭숭한 기색이 감돌았다. 밤배를 타는 이들 중에는 갑판에 오래 머무르지 말라는 당부를 주고받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음악계와 문단에서는 이 소식을 더 무겁게 받아들였다. 윤심덕은 조선 사람으로서 처음 소프라노로 무대에 섰던 이였고, 김우진은 새로운 연극을 꿈꾸던 젊은 극작가였다.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실종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던 조선 근대 예술계에 작지 않은 구멍을 남겼다.

그날의 세계

바다 건너 중국에서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북벌을 이어가고 있었다. 7월 창사를 손에 넣은 뒤 북으로 진격하던 이들은 8월 들어 후베이성 우창과 한커우, 한양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군벌의 시대가 저물지 모른다는 소식은 상해와 만주의 한인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쿨리지 대통령이 뉴욕주 별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멕시코와의 토지법 협상 소식을 전했다. 멕시코 정부가 미국 측 요구를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도쿄 정계에서도 한 정치인의 옥중 사진을 둘러싼 논란이 며칠째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성 24시

화요일 아침, 경성지방법원 앞은 다른 사건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지난 6월 순종 국장 때 만세를 외쳤던 학생들에 대한 조사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종로 다방과 카페에서는 손님들이 신문을 펼쳐 놓고 현해탄 사건을 화제 삼았다. 서점가에는 윤심덕이 부른 노래를 찾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부산 부두에서는 아침부터 수상서 경찰들이 배를 띄워 수색을 이어갔다. 저물녘이 되어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항구를 오가는 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며 자리를 떴다.

100년의 거울

100년이 지난 지금, 실종된 이를 찾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1926년에는 수색선과 사람의 눈이 전부였지만, 오늘날에는 해상 수색에 위성과 레이더, 수중 드론까지 동원된다. 언론의 자리도 크게 바뀌었다. 시대일보처럼 자금난 하나로 신문이 통째로 문을 닫는 일은 이제 흔치 않다.

항목 1926년 2026년
실종자 수색 수색선, 육안 확인 위성·레이더·수중 드론
신문 발행 자금난 시 즉시 폐간 온라인 병행으로 생존 가능
대중가수 음반 유성기 음반, 한정 발매 스트리밍, 무제한 재생

100년 전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가 남긴 노래 한 곡은 유성기 음반 한 장에 담겨야 했다. 지금은 그 목소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다.

내일을 기다리며

현해탄의 물결은 아직 답을 내놓지 않았다. 내일, 8월 18일에는 어떤 소식이 경성 조간에 실릴까. 100년 전 오늘도 그렇게, 답을 모른 채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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