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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고구려

[역사는 살아있다 – 고구려 편] 제29화: 맥적(貊炙)에서 K-Food까지 — 고구려인의 밥상

기사입력 기사번호 5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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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고구려 편

제29화: 맥적에서 K-Food까지 — 고구려인의 밥상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줄 서서 기다리는 불고기 식당, 그 밥상의 뿌리를 1600년 전 고구려 마당의 화로 앞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진 K-BBQ 열풍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유행이 아니다. 3~4세기 중국 사서들이 “북방 오랑캐의 구이”라 적어 놓은 낯선 음식 하나가, 이름과 조리법을 바꿔가며 오늘의 식탁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구려인은 무엇을 먹었고, 어떻게 저장했으며, 왜 그 음식이 중국 귀족들의 잔칫상에까지 올랐을까. 오늘은 전쟁과 정복의 역사 대신, 고구려 사람들의 부뚜막과 장독대를 들여다본다.

◆ 시대의 풍경

고구려는 압록강 유역의 산악 지대에서 출발해 4~5세기에 이르러 동으로 옥저·동예, 북으로 부여·숙신, 서로 요동·요서, 남으로 한강 유역까지 영토를 넓혔다. 산이 많고 논농사에 불리한 지형은 역설적으로 고구려의 밥상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조·기장·수수 같은 밭곡식을 주식으로 삼으면서도, 산과 강에서 얻는 사냥감과 민물고기, 정복지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식재료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고구려인은 수렵을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무예 훈련이자 국가 행사로 여겼다. 매년 3월 낙랑 언덕에서 열린 사냥 대회, 무용총 벽화 속 말 위에서 활을 당기는 사냥꾼의 모습은 사냥이 곧 군사력이자 식량 조달의 핵심이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얻은 육류는 밭에서 거둔 곡식과 만나 고구려 특유의 ‘수렵+농경 융합형’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술 빚기와 장 담그기, 젓갈 만들기 등 발효 음식을 잘하며(善藏釀), 저장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 출처: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전 (3세기 후반, 서진 진수 편찬)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한족 귀족들 사이에서 “맥적(貊炙)”이라 불린 고구려식 구이 요리가 귀한 잔칫상 음식으로 유행했다.

🗿 유럽/중동

로마제국에서는 생선 발효 소스 ‘가룸(garum)’이 식탁의 필수품이었으나, 5세기 서로마 멸망 이후 서유럽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동로마(비잔틴)에서만 명맥이 이어졌다.

🌏 기타 지역

고훈시대 일본에서도 스에키 토기를 이용한 곡물·수산물 저장이 발달해, 동아시아 전역에서 발효·저장 기술이 비슷한 시기 꽃피고 있었다.

고구려인의 밥상 — 부경과 부뚜막

부경(桴京) 고상식 저장창고

부뚜막과 시루 안악3호분 벽화(4세기) 재구성

육고(肉庫) 고기 저장창고

[이미지: 안악3호분 벽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고구려 가옥의 부경·부뚜막·육고]

⚔️ 그날의 현장

“4세기 어느 저녁, 국내성 인근 마을. 사냥에서 돌아온 남자들이 멧돼지와 사슴을 마당에 부려 놓는다. 아낙은 항아리 속 막장에 손질한 고기를 재우고, 부뚜막 위 시루에서는 조밥 짓는 김이 피어오른다.”

“장독대 옆, 기둥 위에 올린 부경의 문이 열린다. 올해 담근 장 항아리와 말린 고기가 그 안에 가지런하다. 화로에 꼬치를 얹자 불길이 치솟고, 고기 굽는 냄새가 마당을 채운다 — 훗날 ‘맥적’이라 불리게 될 바로 그 냄새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맥적(貊炙)’이라는 말은 ‘맥족(貊族, 고구려인을 가리키는 옛 중국식 호칭)의 구이’라는 뜻이다. 4세기 무렵 동진(東晉)의 간보(干寶)가 지은 《수신기(搜神記)》에는 “맥적은 본래 북방 오랑캐의 음식인데, 옛날부터 중국에서 귀하게 여겨 중요한 잔치에 먼저 내놓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변방의 이민족 음식이 중원 귀족의 식탁을 점령했다는 이야기는, 당시 고구려 음식 문화의 완성도가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다만 맥적을 오늘날 불고기의 ‘직계 조상’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최근 학계의 신중한 시각이다. 맥적은 간장이 아니라 막장(된장 계열 장) 베이스로 고기를 재워 통째로 굽는 방식에 가까워, 오늘날의 얇게 저민 간장 양념 불고기보다는 조선시대 너비아니나 경상도 언양식 소금구이형 불고기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기를 미리 양념해 재웠다가 불에 굽는다’는 조리 원리 자체는 1600년 넘게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맥적은 한국 육류 구이 문화의 가장 오래된 원형으로 꼽힌다.

이 조리법을 뒷받침한 것이 고구려의 저장 기술이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고구려인이 “장 담그기와 술 빚기, 젓갈 만들기(藏釀)를 잘한다”고 적었고, 357년 무렵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해도 안악3호분 벽화에는 아궁이 딸린 부엌, 시루로 국을 끓이는 여인, 우물, 고기를 걸어 말리는 저장창고가 상세히 그려져 있다. 집집마다 따로 두었다는 고상식 창고 ‘부경(桴京)’ 역시 곡식과 발효 식품을 습기와 짐승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고구려식 지혜였다. 이렇게 다져진 장 문화는 이후 신라로도 이어져, 683년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때 폐백 음식으로 장·메주·젓갈을 준비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남아 있다.

시대

3~4세기 무렵

핵심 음식

맥적(貊炙)

핵심 시설

부경(桴京), 육고

영향

한식 장·구이 문화의 원류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맥적이 한국 고기 구이 문화의 가장 오래된 기록상 원형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대안적 견해

맥적을 곧바로 ‘불고기의 원조’로 부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며, 실제로는 너비아니·언양불고기 계열에 더 가깝다는 신중론도 있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해외 관광객이 한국 여행에서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불고기와 K-BBQ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고기를 양념에 재워 굽는다는 아이디어, 발효 장으로 감칠맛을 만드는 기술은 고구려인이 척박한 산악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축적한 생존의 지혜였다. 그 지혜가 세대를 건너 오늘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콘텐츠가 된 것이다.

된장·간장 같은 장 문화, 김치로 대표되는 발효 저장 기술 역시 고구려 시대 ‘藏釀을 잘하는’ 민족성의 연장선에 있다. 음식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한 공동체가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구분 고구려 시대 현재
조리법 막장에 재운 고기를 통째로 구운 맥적 간장 양념 불고기, 숯불 K-BBQ
저장기술 부경 창고, 항아리 발효(장·젓갈) 김장 문화, 발효식품 산업
정체성 수렵·농경 융합의 생존 지혜 K-Food 문화 콘텐츠

맥적에서 K-BBQ까지 — 1600년의 밥상

맥적 고구려, 3~4세기

너비아니 조선시대

불고기 근현대 한식

K-BBQ 오늘날, 전 세계

[이미지: 맥적에서 오늘날 K-BBQ에 이르는 한국 육류 구이 문화의 변천]

📚 더 깊이 알아보기

  • 황해도 안악3호분 벽화 속 부엌·육고·우물 장면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고구려 고분벽화 디지털 자료로 열람 가능
  • 경상도 언양식 소금구이 불고기 — 맥적의 조리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고 평가되는 지역 향토음식
  •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실 및 관련 논문 “고구려의 음식문화”(한국역사연구회) 참고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국경 없는 산악 지대에서 사냥과 농사를 합쳐낸 고구려인의 지혜는, 오늘날 세계인이 열광하는 K-Food의 가장 깊은 뿌리다.

“불 위에서 익어가던 그 고기 냄새는, 16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식탁 위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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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고구려의 복식 – 바지 입은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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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고구려의 기술 – 철기와 건축

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고구려 편 (총 4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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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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