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지난달 말, 협회 상담실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장마가 시작되던 날이었고, 창밖으로는 굵은 빗줄기가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건 분은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오십대 여성이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쓰던 불면증 앱이 이번 5월부로 보험 적용이 끝났다는데, 그럼 이제 그 앱이 별로였다는 뜻인가요?” 목소리에는 억울함과 불안이 섞여 있었습니다. 실제로 국내 1호 디지털 치료제로 불리는 수면 개선 앱의 임시 등재 기간이 2023년 6월부터 2026년 5월까지로 마감되었고, 정식 등재 여부는 아직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얼마 전 보도되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니요,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그 앱이 정말 근거를 갖췄는지 다시 한번 저울에 올리는 시간이에요.” 전화기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저는 이 질문이 비단 그분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하나로 정말 밤잠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알약도 아닌데 어떻게 몸과 마음에 실제 변화를 만들어낼까요. 오늘은 그 질문의 안쪽, 디지털 치료제가 딛고 서 있는 과학적 토대를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알약 없이 마음을 움직이는 설계
디지털 치료제가 힘을 발휘하는 첫 번째 이유는 사람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바꾸는 심리학적 설계에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범이론적 모델(TTM)입니다. 사람이 습관을 바꿀 때는 전숙고, 숙고, 준비, 행동, 유지라는 단계를 거치는데, 좋은 앱은 지금 이용자가 어느 단계에 서 있는지를 먼저 살핍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당장 시작하세요”라고 다그치지 않고, 정보부터 천천히 건네는 식입니다.
여기에 자기결정이론이 더해집니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했다는 감각,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있을 때 오래 지속합니다. 해외의 한 명상 앱이 시간과 주제를 이용자가 직접 고르게 하고, 연속 기록을 보여주고, “오늘 함께한 사람 몇 명”을 알려주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저는 KIHA 워크숍에서 이 원리를 설명할 때마다, 결국 좋은 디지털 도구는 사람을 대신 움직여주는 게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곁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자기효능감, 즉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쌓아주는 장치도 빠질 수 없습니다. 작은 성공부터 경험하게 하고, 비슷한 사정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몸의 반응을 스스로 읽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 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에야 화면 속 문장 한 줄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근거의 무게는 숫자로 잰다
그렇다면 이 설계가 정말 통했는지는 무엇으로 확인할까요. 여기서 근거기반 의학의 원칙이 등장합니다.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사용군과 미사용군을 무작위로 나누어 비교하는 대조 연구를 거쳐야 하고, 그 차이의 크기를 코헨의 d 같은 지표로 냉정하게 재야 합니다.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는 인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앞서 언급한 국내 수면 앱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최근 발표된 검증 연구에서 이 앱을 이용한 그룹의 불면증 심각도 지수는 9.0까지 내려간 반면, 사용하지 않은 그룹은 12.8에 머물렀습니다. 그 차이인 3.8이라는 숫자, 그리고 석 달 뒤에도 11.3과 14.7로 격차가 유지됐다는 사실이 바로 이 앱이 임시 딱지를 떼고 정식 등재를 논의할 자격을 얻은 근거입니다. 업계에서는 아시아태평양 디지털 치료제 시장이 연 20퍼센트 안팎으로 커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 성장세보다 이 숫자 하나하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규모가 아니라 근거가 신뢰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끊기 전, 저는 그분께 한 가지를 더 말씀드렸습니다. 좋다는 소문보다 “어떤 연구로, 얼마만큼 검증되었는지”를 먼저 물어보시라고요. 그날 빗소리를 들으며 통화를 마치고 나니, 3.8이라는 숫자가 단지 통계표 안의 기호가 아니라 누군가의 밤을 되돌려준 실제 거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거리를 재는 법을 아는 것, 그것이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 이 칼럼은 송정숙 협회장의 저서 「디지털치유론 Level I」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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