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가슴까지 내려온 수염
1월 · 별이 모이다 | 약 3분 읽기

장비의 작은 장원(莊園) 별채 주점, 어느 날 밤이 지난 뒤의 이른 저녁이었다. 유비와 장비 두 사람이 낮은 탁자 둘레에 앉아 있었다. 술 한 잔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었고, 창 너머 버드나무 가지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수레 끄는 소리가 문 앞에서 들렸다. 한 사내가 작은 수레를 밀고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붉은 얼굴이었다. 긴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다. 키는 구 척. 두 눈이 봉(鳳)의 두 눈처럼 좁고 길었다. 눈썹이 누에처럼 누워 있었다.
사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주점 주인을 향해 손을 들었다.
“주인장. 술 한 잔을 빨리 내어 주시오. 나는 성내로 들어가 의병(義兵)에 지원할 몸이오.”
그 한 마디에 유비의 손이 술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장비도 수염 끝을 다듬었다. 작은 주점 안쪽의 공기가 그 한 마디의 결에 미세하게 바뀌어 있었다.
유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그 사내의 앞자리로 걸어가 아무 말도 꺼내지 아니한 채 조용히 앉았다.
“형씨. 방금 의병에 지원하러 가신다 하셨소.”
사내가 유비를 올려다보았다. 그 두 눈은 아주 오래 먼 곳을 바라보아 온 사람의 두 눈이었다. 다만 유비의 얼굴을 처음 본 그 순간, 먼 곳을 바라보던 두 눈이 한 결만큼 가까이 돌아왔다.
“그렇소. 오 년을 강호(江湖)에 숨어 다녔소. 이제 더 숨을 수가 없었소. 이 고을에 의병을 모은다는 방(榜)을 길 위에서 보고, 어쩐지 내 발이 이쪽으로 먼저 돌아섰소. 다른 방향이 아니라 — 이 방향이었소. 나도 그 까닭을, 아직 잘 모르겠소.”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소.”
“…성은 관(關). 이름은 우(羽). 자는 처음에는 수장(壽長)이었으나, 지금은 운장(雲長)이라 쓰오. 하동군(河東郡) 해량(解良) 사람이오.”
관우. 그 이름이 유비의 가슴 한가운데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오 년을 숨어 다니셨다 하시는데, 그 까닭은 무엇이오.”
관우가 짧게 호흡을 골랐다. 그러고는 가슴까지 내려온 긴 수염의 끝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고향에 세력가 한 사람이 있었소. 그 사람은 자기 세력을 믿고 아랫사람을 함부로 짓밟는 자였소. 어느 날 내 두 눈 앞에서 한 여인이 그 사람에게 끌려가고 있었소. 그 여인이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소. 그 소리 다음에, 내가 그 사람을 쳤소.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소.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소. 그 일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아니하오. 다만 — 그 뒤로 오 년 동안, 한 번도 내 이름으로 불리어 본 일이 없소.”
유비와 장비가 한동안 한 마디도 꺼내지 아니하였다. 오직 주점 한 구석에 놓인 작은 등잔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을 뿐이었다.
“수장(壽長)에서 운장(雲長)으로 이름을 갈았을 때는 — 나 스스로에게 미안하였소. 부모께서 지어 주신 이름을 내가 먼저 감추었으니 말이오.”
관우의 말은 천천히 내리는 눈처럼 고요하였다. 그러나 그 눈이 쌓여 가는 땅 안쪽에는, 꺼지지 아니한 불이 남아 있었다. 그 불이 쉽게 꺼지지 아니할 종류의 불이라는 것을, 유비가 그 짧은 순간에 이미 알아 버렸다.
유비가 자기 이름을 말하였다. 팔리지 못한 짚신 두 켤레 이야기도 더 꺼내 놓았다. 그러자 관우의 가슴까지 내려온 긴 수염의 끝이 조용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오 년 동안 한 번도 입을 벗어난 일이 없는 웃음이 그 수염 끝 안쪽에 섞여 있었다.
“형씨의 이름이 방(榜)의 앞에 서 주시면, 나의 수염과 이 아우의 목소리가 뒤를 받쳐 드리겠소.”
유비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장비의 거친 목소리와 관우의 가슴까지 내려온 긴 수염이 낮은 탁자의 양쪽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Book 1의 세 번째 저녁이 장비의 작은 장원 주점 낮은 탁자 위에서 조용히 깊어 가고 있었다. 胸臆髯(흉억염, 가슴까지 내려온 긴 수염) 세 글자가, 붉은 얼굴 관우의 자세와 한 결을 이루며 조용히 씨로 심어지고 있었다. 판(榜) 앞의 숨(Day 2)과 수염 끝의 웃음(Day 3)이, 한 자리의 한가운데에 모이고 있었다.
—

📌 알아두기 — 정사(正史) vs 연의(演義)
🟢 정사 『삼국지』 촉서 관우전(關羽傳)은 관우(關羽, 자 운장 雲長, 본자 수장 壽長)가 하동군(河東郡) 해량(解良) 사람이며, 고향을 떠나 탁군(涿郡)으로 망명하여 유비(劉備)와 만나 형제의 결을 맺었음을 간결히 기록한다. 🟢 관우의 “긴 수염”이라는 외모와 본자 수장(壽長)을 운장(雲長)으로 바꾼 일의 구절도 관우전과 배송지 주의 인용에 남아 있다. 🟡 관우 망명의 구체적 까닭(여인을 구하기 위해 세력가를 쳤다는 전승)은 정사에 기록되지 아니하였고, 배송지(裴松之) 주가 인용한 이본에 파편으로만 전한다. 🟠 유비·장비·관우 세 사람의 주점 만남이라는 구체 구도는 『삼국지연의』 1회의 각색이다. 🟠 관우가 수레를 밀고 주점에 들어온다는 자세의 구체도 연의 1회의 각색이다. 🔴 본편의 “胸臆髯(흉억염)” 세 글자 창작과, 오 년 동안 한 번도 웃지 아니한 수염의 끝이 조용히 올라가는 자세의 거울 해석은 본편의 재구성이다. 한자 창작의 계보가 오늘 세 번째 자리에 도달하였다.
“✒️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
오 년 동안 한 번도 자기 이름으로 불리어 본 일이 없는 사람의 가슴까지 내려온 긴 수염이 있지요. 그 수염 끝이 조용히 올라가는 자리가, 오 년의 결이 풀리는 자세이옵니다. 오늘 저녁 당신의 자리에도, 오래 꺼내지 아니한 이름이 혹시 있으신지요. 그 이름을 다시 들으실 때 조용히 올라가는 수염 끝이 혹시 있으신지요. 그 올라감을 한 번 더 조용히 들여다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그 해, 지구 반대편에서는…
서기 169년 이른 봄,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도나우 강변 진영의 저녁, 이방의 망명자(exul) 한 사람이 낮은 탁자 앞에 앉아 가슴까지 내려온 긴 수염을 조용히 쓸어내렸다고 전해집니다. 황제가 그 긴 수염의 결을 오래 바라보았다지요. 라틴어 구절 “barba ad pectus(가슴까지의 수염)”이 그 저녁 진영 기록의 끝에 새겨졌다고 합니다. 동쪽 끝의 붉은 얼굴 관우의 긴 수염이 탁군 주점 낮은 탁자 위에서 조용히 올라갔다 내려오던 그 저녁, 서쪽 끝 망명자의 수염도 같은 방식의 자리에서 한 결을 풀고 있었지요.
📅 내일 Day 4: 복숭아밭 세 잔
“세 사람의 자리가 장비의 장원 뒤쪽 복숭아밭으로 옮겨졌다. 봄꽃이 막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단이 세워지고, 세 잔의 술이 세 사람의 손에 들렸다.” — 연삼흠 박사
평역 — 연삼흠 평역가 · Sam H. Yeon, Ph.D. · 延三欽博士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