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전체기사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中文 日本語 Tiếng Việt

칼럼 지승주

한 위대한 한국인을 눈물로 추모하며 – 잊혀진 건국의 어버이 이승만

감사 / 고난 / 믿음 / 지혜 / 희망 / 공동체

기사입력 기사번호 46253

당신은 한 나라의 시작을 만든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남긴 빛과 그림자 가운데, 무엇을 먼저 떠올립니까.

1965년 7월 19일 새벽 0시 35분.

하와이의 한 노인 요양원에서,

나이 아흔의 한국인 한 사람이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서거 한 달 전부터 그는 피를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날이던 7월 18일, 그는 더욱 많은 피를 쏟아냈습니다.

그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평생 곁을 지킨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

대라도 잇겠다며 들어온 양자,

그리고 조용히 곁을 지키던 교민 한 사람.

마지막 숨을 길게 들이쉬고,

그는 한 세기를 관통한 파란만장한 생애를 내려놓았습니다.

그 곁에서, 평생 눈물을 보여본 적 없던 아내가 처음으로 오열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승만이었습니다.

 [코리안투데이] 머릿돌8 한 위대한 한국인을 눈물로 추모하며  © 지승주 기자

당신이 교과서와 소문을 통해 들어온 그 이름 뒤에는,

이토록 쓸쓸한 마지막 장면이 숨어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 장면을 떠올리며,

무엇을 느끼게 됩니까.

■ “내가 너를 알아!” – 한 미국인의 절규

장례식장에서 한 미국인이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너를 알아!

네가 조국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사랑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 왔는지,

나는 안다.”

그는 평범한 미국인이 아니었습니다.

장례식장과 관을 오가며,

이민자들의 마지막 길을 묵묵히 도와온 장의사였습니다.

1920년대 어느 날,

중국인 노동자의 시신을 본국으로 보내기 위해 관을 준비하던 그에게

한 조선인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나를 그 관 속에 숨겨 중국 상하이로 보내주십시오.

나는 독립운동을 해야 합니다.

일본이 나를 현상수배했습니다.”

그 조선인이 바로 이승만이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관 속에 몸을 숨겨

상하이에 밀항했습니다.

조국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감수하던 그 모습을

장의사는 평생 잊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와이의 작은 장례식장에서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의 애국심 때문에,

너의 인생이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

그로 인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아 왔는지,

나는 안다.”

당신은 이 말을 들으며,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이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있었을까”

2019년 7월 15일 아침.

서울 국립현충원.

그의 50주기를 나흘 앞두고

한 사람이 묘비 앞에 서서 눈물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물었습니다.

“만약 이승만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 없었다면,

이 나라는 공산주의의 물결 속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 없었다면,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설 수 있었을까요.

그 없었다면,

전쟁 와중에 나라를 지키고,

한·미 동맹이라는 전략적 틀을 세울 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이 질문 앞에서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묘비에는 간단한 몇 줄의 글만 새겨져 있습니다.

지주의 땅을 나누어 농민에게 돌려준 농지개혁,

문맹을 줄이고 미래를 준비하려 했던 교육 진흥,

새로운 국가 제도와 행정 시스템의 기초.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이 땅,

당신이 누리는 제도와 구조의 상당 부분이

바로 그가 열어 놓은 길 위에 세워졌습니다.

■ 썩은 나라에서 세계로 나아간 한 청년

이승만은 무지와 혼란 속에 가라앉은 조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 길을 거부했습니다.

열아홉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외국인의 눈을 통해 처음으로 “세계”라는 창을 보았습니다.

그는 썩은 조정을 개혁하고자 글을 썼고,

언론을 통해 목소리를 내다가

사형선고까지 받았습니다.

감옥 안에서조차

낮에는 심문을 당하고,

밤에는 영어사전을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신앙과 학문, 언론과 정치, 나라와 백성은

따로 떨어진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는 숙명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를 대신 일으켜 세워주지 않는다.”

이 절박함이

그를 감옥에서, 조선에서,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이끌었습니다.

■ 수평선 너머 미국을 바라본 19세기 조선인

그는 확신했습니다.

“조선이 독립하려면, 미국을 통하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1905년, 서른 살의 나이에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입학했고,

이어 하버드 대학원을 거쳐

프린스턴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가 논문을 쓰던 시절,

조선에서는 아직도 왕과 대신들이

구시대의 체면 싸움에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세계의 권력 지도를 펼쳐 놓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조선이 살아남을 길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1941년, 그는

“Japan Inside Out(일본의 가면을 벗긴다)”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그 책에서 그는

“일본은 반드시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책이 나온 지 불과 넉 달 뒤,

진주만이 폭격당했습니다.

미국 정치인들은 놀랐습니다.

멀리 조선에서 온 한 사람이

자신들보다 먼저 일본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1954년,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일본인은 옛 버릇대로

겉으로는 웃으나 속으로는 악의를 품고,

교활한 외교로 세계를 속인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아직도 이를 알지 못하고

일본의 재무장과 재확장을 돕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우리 백성이 다 죽어 없어질지언정

노예만은 되지 않겠다는 각오로

국토를 지켜야 한다.”

당신은 이 문장을 읽으며

그의 외침이 단순한 반일이나 친미의 차원을 넘어서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한 민족의 결기였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하와이의 작은 집, 그리고 김치찌개 노래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

그는 하와이의 작은 집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습니다.

한겨울에도 제대로 된 난방조차 하지 못했고,

교포들이 조금씩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연명을 이어 갔습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친정에서 보내온 박스를

옷장 대신 사용해야 할 만큼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고국 음식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때 프란체스카 여사는

서툰 한국말로 노래를 만들어 불러주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김치찌개 김칫국,

날마다 날마다 콩나물국 콩나물,

날마다 날마다 두부찌개 두부국,

날마다 날마다 된장찌개 된장국.”

그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멀리 떨어진 조국을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이 장면을 떠올릴 때,

한 인간의 힘겨운 말년과

그 뒤에 가려진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조용히 마음을 흔듭니다.

■ 우리는 이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누군가는 그를 독재자로만 기억합니다.

누군가는 그를 친일로,

어떤 이는 친미로 단정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의 전 생애를

한 줄의 낙인으로만 덮어 버리기에는

그가 걸어온 길이 너무도 길고,

그가 치른 대가가 너무도 무겁습니다.

잘못과 과오가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사람이 없었어도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글자,

당신이 누리는 제도와 교육,

당신이 서 있는 이 땅의 국경선과 국호.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에

그의 결단과 선택,

그리고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눈물과 고독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건국의 어버이를 잊어버린 나라는

자신의 뿌리를 잃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추모는, 단지 한 인물을 미화하는 일이 아니라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 기억이 있을 때만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바르게 물을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은

이 묵직한 이름 앞에서

조용히 마음속으로 고개를 숙입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늦게 알았고,

너무 쉽게 잊었습니다.

이제라도 기억하겠습니다.

이 나라의 시작에

당신의 눈물과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그 고백 한 줄이,

건국의 어버이를 향한

당신의 작은 추모가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나라를 더 사랑하고

더 곧게 세우겠다는

당신 자신의 다짐이 됩니다.


지역 홍보대사     기자양성과정     지부장·지국장
코리안브랜드대상     최고경영인대상     소비자만족도대상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지승주 기자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