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9월 20일 월요일.
오전 10시 10분, 경성은 추석을 하루 앞둔 아침이었다.
달력으로 따지면 음력 8월 14일, 이튿날이 한가위다. 열하루 뒤인 10월 1일엔 경복궁 앞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낙성식을 연다. 10년을 끌어온 공사가 끝을 앞둔 때다. 같은 날 지구 반대편 시카고 근처에서는 호텔 하나에 총알 천 발이 넘게 쏟아졌다. 오늘은 이 장면들을 따라 걷는다.
이날 경성의 날씨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달은 보름 하루 전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 그날의 경성
조간신문 1면
9월 20일자 동아일보·조선일보·매일신보의 지면 원문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그날 기사를 지어내지 않고, 확인된 기록으로 이 무렵 경성의 결을 짚는다.
경복궁 흥례문 자리에서는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낙성을 열하루 앞두고 있었다. 1916년에 첫 삽을 떴고, 전면 약 131미터에 연건평이 9천4백 평을 넘는 큰 건물이다.
출처: 국가기록원 주제별 총설, 우리역사넷
🏛️ 총독부 관보
9월 20일자 관보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대신 열하루 뒤의 기록이 남았다. 10월 1일 새 청사 중앙홀에 전 직원이 모여 낙성식을 열었고, 오후에는 경회루에서 경축연이 이어졌다.
출처: 국가기록원 주제별 총설
✊ 기록된 저항
순종의 국장일인 6월 10일 터진 만세운동. 관련 학생들의 1심 판결은 두 달 가까이 뒤인 11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나왔다. 이선호 등 10명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 박하균은 징역 1년이었다. 이날은 아직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이었다.
출처: 6·10만세운동 판결 기록(610manse.or.kr), 우리역사넷
👤 오늘의 인물 – 홍진
홍진(洪震, 1877~1946)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이었다. 이상룡이 2월에 물러난 뒤 몇 달 동안 내각이 비었다가, 7월 7일 홍진이 새 내각을 꾸렸다. 9월에는 외무총장까지 겸하며 비타협적 자주독립운동, 전민족대정당, 피압박민족 연맹이라는 세 방침을 내걸었다. 하지만 독립운동 단체들의 다툼이 끊이지 않아 12월 국무위원들과 함께 물러났다. 9월 20일 그날 그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처: 위키백과 「홍진」,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신문 광고로 본 물가
• 당일 물가 정보 없음 (추정 가격은 싣지 않는다)

🗾 경성과 한반도
• 노동: 9월 9일 이 시리즈는 목포 노동자들이 여덟 달째 파업 중이라고 전했다. 그 뒤 소식은 확인하지 못했다.
• 공산당 재판: 1925년 11월 시작된 조선공산당 검거는 6·10 예비검속으로 이어져 220명이 붙잡히고 101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9월 12일 이 시리즈는 ‘내일의 공산당 재판’을 전했다.
• 해외: 상하이 임시정부는 홍진 내각이 이끌었다. 만주·미주 동향은 이날치를 확인하지 못했다.
• 문화: 열하루 뒤 10월 1일 저녁 7시, 종로 단성사에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처음 걸린다. 일제 당국은 선전물 1만 장을 압수하고 노래 가사 일부를 지우게 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회부산도서관, KCI 「101인 사건 판결」

🌍 그날의 세계
🇺🇸 미국 – 시카고의 총성
시카고 근교 시서로의 호손 호텔. 점심을 먹던 알 카포네를 노리고 북부 갱단이 차량 행렬로 몰려와 기관총을 퍼부었다. 총알이 천 발을 넘었지만 카포네는 다치지 않았다. 서울 시각으로는 21일 새벽 무렵이다. 같은 날 마이애미를 덮친 허리케인은 플로리다 펜서콜라 만의 부두와 창고를 부수고 있었고, 사흘 뒤 필라델피아에서는 템프시와 터니의 헤비급 타이틀전이 열린다.
🇨🇳 중국 · 🇯🇵 일본
국민혁명군이 9월 6~7일 한양과 한커우를 차지했지만 우창은 아직 함락되지 않았다. 장제스는 난창 사령부에 머물렀다. 9월 5일에는 쓰촨 완셴에서 영국 포함이 시가지를 포격해 큰 인명 피해가 났다. 일본은 다이쇼 15년이었고, 석 달 뒤 12월 25일 연호가 쇼와로 바뀐다.
🇪🇺 유럽 – 불안한 화해
독일이 9월 8일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 됐고, 로카르노 조약은 14일 발효됐다. 사흘 전인 17일 프랑스 투아리에서 브리앙과 슈트레제만이 마주 앉아 라인란트 철수와 프랑 안정을 맞바꾸는 이야기를 나눴다.
🌐 남미 – 엔카르나시온
저녁 6시 45분 무렵 파라과이 엔카르나시온을 토네이도가 덮쳤다. 300명이 넘게 숨졌고 남미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숨진 토네이도로 꼽힌다. 서울 시각으로는 21일 아침, 경성이 추석을 맞을 무렵이다.
출처: 위키백과 「September 1926」, 「1926 Encarnación tornado」, 「Wanhsien incident」, Chicagology 카포네 편

🏮 경성 24시 – 일상의 기록
🌅 아침 풍경
이날 아침의 일과는 확인된 기록이 없다. 달력만 분명하다. 음력 8월 14일, 이튿날이 한가위다. 1926년 추석은 양력 9월 21일이었다.
☀️ 낮의 도시
광화문 앞 신청사는 낙성을 열하루 앞두고 있었다. 공사장에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는 이날치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
🌙 밤의 경성
음력 열나흘 밤, 보름 하루 전의 달이 뜨는 때다. 그날 하늘이 맑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 월요일의 일터 – 신청사 공사장
9월 2일 이 시리즈는 신청사의 벽돌을 나른 이들이 하루살이 인부들의 손이었다고 전했다. 10년 공사의 마지막 열하루도 그런 손들이 채웠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이름과 품삯은 확인되지 않았고, 추정하지 않는다.

🔄 100년의 거울
| 구분 | 1926년 | 2026년 |
|---|---|---|
| 직업 | 신청사 같은 큰 공사를 10년간 떠받친 일용 인부 | 기계와 안전 규정이 자리 잡은 건설 현장 |
| 임금 | 이날 자료 확인 안 됨 (추정 금지) |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이 있다 |
| 추석 | 양력 9월 21일 | 양력 9월 25일 |
💡 역사의 교훈
열하루 뒤, 같은 10월 1일에 경복궁 앞에서는 총독부의 새 집이 문을 열고 종로에서는 ‘아리랑’이 걸린다. 한쪽은 남을 다스리는 집이었고 다른 쪽은 사람들이 함께 부른 노래였다. 총독부 청사는 1990년대에 헐렸고, 올해는 아리랑 개봉 100년이다. 큰 집보다 오래 남는 것이 무엇인지 이날이 알려 준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 이 시간, 10시 10분
1926년 9월 21일을 만납니다.
“내일은 한가위입니다. 내일 이 시간, 다시 만나요.”
어제의 이야기
1926년 9월 19일
10:10
내일의 이야기
1926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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