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턱에 들어선 도시의 풍경은 늘 대비적이다. 한쪽에서는 김장 냄비가 끓고, 다른 한쪽에서는 식탁 위 반찬 걱정이 깊어진다.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김장은 더 이상 ‘연례행사’가 아니라 부담이 된 지 오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역 공동체의 연대가 얼마나 실질적인 힘을 갖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양천구에서 펼쳐졌다. 숫자로 환산하면 50톤, 가구 수로는 1만 세대. 그러나 이 김장나눔의 본질은 무게가 아니라 관계와 구조에 있다.
![]() [코리안투데이] 이기재 양천구청장이 수혜가구를 방문해 김장김치를 전달하고 있다. |
양천구는 지난 25일 신월1동 주민센터에서 『2025 양천사랑 김장나눔』 전달식을 열고, 지역 내 생계·의료 수급자 등 취약계층 10,000세대에 김장김치 총 50톤을 전달했다. 세대당 5kg씩 배분된 이번 지원은 지난해 대비 규모가 두 배로 확대된 것이다. 단순한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민관이 함께 만든 복지 네트워크의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양천사랑 김장나눔’은 양천구를 대표하는 민관협력 복지사업이다. 관내 기업, 종교단체, 기관, 그리고 구민 개인의 자발적 후원을 바탕으로 매년 김장철마다 진행돼 왔다. 올해는 ‘만 개의 나눔, 만 배의 행복’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후원 모집 단계부터 참여의 폭을 넓혔다. 그 결과 지원 대상과 물량 모두 역대 최대 규모로 확대됐다.
이번 김장나눔에는 씨앤씨학원, 양천구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 양천구기독교연합회, 우리은행 양천구청점, 이마트 목동점, 지구촌교회, 목민교회, 양천구치과의사회 등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가 참여했다. 여기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다수의 구민 후원까지 더해지며, 김장김치는 ‘누군가의 기부’가 아니라 ‘지역 전체의 합’이라는 성격을 띠게 됐다.
올해 김장나눔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한 물량 확대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양천구는 올해부터 복지관 등 민간 지원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강화해 수혜 대상 중복을 사전에 차단했다. 그동안 김장나눔이나 생필품 지원 사업은 취지와 달리 일부 가구에 지원이 집중되거나, 정보 접근성이 낮은 가구가 소외되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구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민간기관과 정보를 공유하고, 지원 대상을 분산하는 방식으로 보다 촘촘한 복지 전달 구조를 구축했다.
또한 배부 과정에서도 지역 공동체의 역할이 강조됐다. 각 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통반장,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유관 단체가 배부에 참여하며, 행정 주도의 전달이 아닌 ‘이웃이 이웃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나눔이 이뤄졌다. 김장김치 한 상자를 건네는 과정 자체가 안부를 묻는 접점이 되었고, 이는 겨울철 고립 위험이 큰 독거 가구에게 중요한 사회적 연결망으로 작용한다.
양천구의 김장나눔은 단일 행사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시기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김장 나눔이 이어지고 있다. 양천구시설관리공단은 목동운동장에서 로타리클럽 3640지구와 함께 ‘행복나눔 사랑의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를 열어 총 1,000kg 상당의 김치를 양천구푸드뱅크마켓센터에 전달했다. 신월종합사회복지관은 2,000kg 상당의 김치를 취약가구에, 한빛종합사회복지관은 1,800kg 상당을 독거어르신에게 전달했다. 개별적으로 보면 소규모일 수 있지만, 이런 활동들이 모여 지역 전체의 복지 안전망을 형성한다.
전문가들은 김장나눔과 같은 계절성 복지 사업이 단순한 생계 지원을 넘어 정서적 안정에 기여한다고 평가한다. 특히 겨울철은 사회적 고립과 우울감이 심화되는 시기다. 김장김치는 식재료인 동시에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신호로 작용한다. 양천구가 김장나눔을 매년 구조화된 사업으로 이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기재 양천구청장은 전달식에서 “김장김치 한 포기에 담긴 정성과 마음이 추운 겨울 어려운 이웃에게 큰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어려운 시기에도 나눔에 동참한 모든 후원자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행정과 민간이 함께하는 복지체계를 통해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발언의 핵심은 ‘감사’보다 ‘체계’에 있다. 일회성 온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복지는 더 이상 행정만의 영역이 아니다. 민간의 참여 없이는 규모를 키울 수 없고, 행정의 조율 없이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양천구의 김장나눔은 이 두 축이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50톤의 김치가 전달된 날, 양천구가 나눈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겨울을 함께 건너겠다는 약속, 그리고 지역 공동체가 아직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 변아롱 기자 : yangcheon@thekoreantoday.com ]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