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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전체기사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中文 日本語 Tiếng Việt

경제 경제 정책 및 트렌드

훔친 기술로 세운 모래성, 결국 파산과 패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반도체·배터리·조선·디스플레이까지 번진 국가핵심기술 유출의 실체
중국 창신메모리·화웨이·론바이·BOE 등으로 향한 첨단 공정 기술
대한민국에 막대한 손실, 재판부 엄벌 기조 속에서도 처벌 공백 논란
73년 만의 형법 개정, 산업 스파이에도 간첩죄 적용 길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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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첨단 산업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건이 더 이상 개별 기업의 보안 사고로만 볼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디스플레이, 바이오·식품 분야까지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기술이 조직적으로 유출되면서, 기술 유출은 사실상 기술 안보 범죄로 부상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와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통합 통계에 따르면 국내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 건수는 2021년 9건에서 2025년 33건으로 3.6배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적발된 사건으로 인한 국가 경제적 피해 추산액만 최소 23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단순한 도면 복사나 개인 일탈이 아니다. 수조 원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된 양산 공정 프로토콜(제품을 실제 대량생산하기 위한 세부 절차와 조건), 소스코드(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원본 명령어), 불량 분석 노하우, 소재 배합 데이터가 통째로 해외 기업에 넘어간다는 점에서 국가 산업 경쟁력의 뿌리를 흔드는 문제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특정 산업을 넘어 전방위로 확산됐다

과거의 기술 유출은 일부 설계도나 단편적 자료 반출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사건들은 훨씬 정교하고 치명적이다. 기업 내부의 전·현직 임직원, 해외 헤드헌터, 현지 자회사, 협력업체, 연구 인력 스카우트가 얽히면서 핵심 기술과 인력이 동시에 이동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국정원 적발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요 국가핵심기술 유출 대상국을 분석하면 전체 유출 시도의 73%가 중국을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미국 12%, 대만 6%, 기타 국가 9% 순이었다. 산업별로는 반도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디스플레이·OLED, 이차전지, 조선·자동차, 바이오·화장품·식품 분야로 확산됐다.

 [코리안투데이]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대상국 비중. 대한민국 국가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 건수를 국가별 비중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이 73%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미국(12%), 기타 국가(9%), 대만(6%) 순으로 나타나 특정 국가를 향한 기술 스파이 행위가 매우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자료: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통합 데이터 기반 재구성) ⓒ 박찬두 기자

반도체와 배터리처럼 한 번 기술 격차가 무너지면 시장 지배력이 급격히 흔들리는 산업에서 유출 피해는 더욱 치명적이다. 특히 첨단 제조업은 단순히 장비만 갖춘다고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공정 조건, 수율 관리, 소재 반응 제어, 현장 엔지니어의 경험이 결합돼야 양산 안정성이 확보된다. 

 [코리안투데이] 대한민국 6대 핵심 산업 기술 해외 유출 현황. 과거 반도체에 집중되던 기술 유출 범죄가 카메라 이미지센서,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 OLED 디스플레이, LNG 고부가 선박을 넘어 K-푸드 및 뷰티 등 민생 소비재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황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선두 기업들이 중국의 창신메모리(CXMT), 화웨이, 론바이, BOE 등 거대 자본 기업들의 주 타깃이 되었음을 극명하게 증명한다.(자료: 각 사건별 법원 판결문 및 국정원 수사 자료 기반 재구성) ⓒ 박찬두 기자

반도체부터 K-푸드까지, 유출 대상은 대한민국 주력 산업 전반이었다

삼성전자 D램이 중국 창신메모리(CXMT)로

삼성전자 D램 관련 기술 유출 사건은 대표적인 반도체 기술 유출 사례로 꼽힌다. 삼성전자 부장 출신 김모 씨와 전직 연구원 전모 씨가 공모해 세계 최초로 개발된 것으로 알려진 10나노급 D램 최신 공정 기술을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측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전 씨는 계약 인센티브 3억 원과 스톡옵션 등을 포함해 6년간 총 29억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D램 공정 기술은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이다. 특히 10나노급 공정은 회로 선폭을 극도로 미세하게 만드는 기술로, 생산성·전력효율·성능을 동시에 좌우한다.

SK하이닉스 HBM이 중국 화웨이(Huawei)로

SK하이닉스에서는 반도체 불량 분석을 담당하던 중국 국적 직원 A씨가 퇴사 직전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메모리) 및 CIS(CMOS Image Sensor, 이미지센서) 관련 제조 공정 문제 해결 자료를 무단 출력한 사건이 발생했다.

A씨가 출력한 자료는 A4 용지 약 4,000장 분량으로 알려졌다. 이후 A씨는 중국 화웨이로 이직했다. HBM은 인공지능 연산용 반도체에 필수적인 고성능 메모리로, 데이터 처리 속도를 크게 높이는 기술이다. 단순한 제품 정보보다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함을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훨씬 중요한 자산이다.

LG화학 배터리가 중국 론바이(Ronbay)로

배터리 분야에서는 LG화학의 NCM(니켈·코발트·망간) 삼원계 양극재 기술 유출 의혹이 제기됐다. 양극재는 전기차 배터리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그중에서도 입자 내부 구조를 제어하는 기술은 배터리의 용량, 수명, 안정성을 좌우한다.

이 기술이 중국 최대 양극재 업체로 꼽히는 론바이 테크놀로지와 한국 자회사 재세능원으로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배터리 산업은 소재 조성뿐 아니라 미세구조 제어와 열 안정성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관련 기술 유출은 단기간의 매출 손실을 넘어 미래 시장 지배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선 대기업이 중국 국영조선소로

조선 분야에서도 핵심 기술 유출 의혹이 이어졌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LNG 운반선 화물창 멤브레인 기술과 심해원유시추선, 즉 드릴십 설계 도면이 전직 임원과 선급 검사관들의 USB, 노트북 등을 통해 중국 CSSC(중국선박공업집단) 계열 조선소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지목됐다.

LNG 운반선 화물창은 극저온 액화천연가스를 안전하게 보관·운송하기 위한 핵심 설비다. 멤브레인 기술은 내부 단열과 누출 방지 성능을 좌우한다. 드릴십은 심해에서 원유를 시추하는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1척 가격이 수천억 원에 달한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중국 BOE로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 감광액 양산 기술이 중국 BOE 등으로 유출된 사건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는 스스로 빛을 내는 디스플레이 기술로, 스마트폰·태블릿·TV·차량용 디스플레이의 핵심이다.

문제가 된 감광액 양산 기술은 경제적 가치가 2,000억 원 이상으로 평가됐고, 중국과 최대 10년의 기술 격차가 존재하던 분야로 알려졌다. 감광액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서 빛에 반응해 미세 패턴을 형성하는 소재다. 이 기술이 유출되면 고해상도 패널 생산 경쟁력이 급격히 흔들릴 수 있다.

K-뷰티 & K-푸드가 중국 식품 가공업체, 동남아로

기술 유출은 첨단 제조업에만 머물지 않았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국내 화장품 대기업의 천연 기능성 배합 레시피는 물론 CJ제일제당 등의 만두 자동화 성형 설비 도면, 김치 발효 균주와 배양 데이터까지 중국 식품 가공업체로 넘어간 사례가 언급됐다.

균주(미생물의 특정 계통)는 발효식품의 맛과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다. 김치, 장류, 발효 음료 등은 제조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랜 연구를 통해 확보한 미생물 데이터와 발효 조건이 품질 경쟁력의 본체다. 이처럼 생활 소비재 분야에서도 기술과 데이터가 결합된 지식재산이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적발 건수는 매년 증가했고, 반도체 비중이 가장 컸다

최근 5년간 해외 기술 유출 적발 건수는 빠르게 늘었다. 2021년 9건에 불과했던 적발 건수는 2022년 14건, 2023년 21건, 2024년 26건을 거쳐 2025년 33건에 도달했다. 해마다 최고치를 갱신한 셈이다.

 [코리안투데이] 최근 5개년(2021~2025) 기술 유출 적발 건수 추이. 해외 기술 유출 범죄의 위험도가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2021년 9건에 불과했던 적발 건수는 매년 단 한 차례의 꺾임도 없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25년에는 33건으로 5년 만에 무려 3.6배 폭증했다. 이는 사법당국의 단속 강화와 더불어 국내 핵심 기술을 노리는 글로벌 스파이 행위가 갈수록 대담하고 빈번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자료: 국정원 및 산업통상자원부 적발 통계 기반 재구성) ⓒ 박찬두 기자

산업별 적발 비중을 보면 위기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더 분명해진다. 반도체가 38%로 가장 많았고, 디스플레이·OLED 24%, 이차전지·배터리 18%, 조선·자동차 12%, 바이오·화장품·푸드 등 기타 분야 8% 순이었다. 

  [코리안투데이] 산업별 기술 유출 적발 비중. 해외 기술 유출 범죄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 전반에 무차별적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다. 국가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가 3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가운데, 디스플레이/OLED(24%), 이차전지/배터리(18%)가 뒤를 이어 소위 ‘3대 첨단 핵심 기술‘의 유출 비중이 전체의 80%에 달했다. 아울러 조선/자동차(12%)는 물론 바이오/화장품/푸드 등 기타 민생 분야(8%)까지 스파이 행위가 다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자료: 국정원 및 산업통상자원부 분야별 통계 기반 재구성) ⓒ 박찬두 기자

이 수치는 기술 유출이 특정 기업이나 특정 품목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산업 구조 전체가 표적이 되고 있으며,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우위를 점한 분야일수록 해외 기업과 국가 차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훔친 기술은 오래가지 못했다, 복제 기업의 한계가 드러났다

기술을 무단으로 확보한 해외 기업들은 한때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가 드러났다. 핵심은 기초 R&D 자생력이다. 공정 조건 일부를 가져가거나 인력을 영입해도,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다음 세대 기술로 발전시키는 능력이 없으면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삼성 복제 공장 꿈꾸던 한청반도체의 공중분해 및 파산

삼성전자 상무 출신 조모 씨는 중국 자본과 손잡고 중국 시안에 삼성 반도체 공장을 사실상 복제한 형태의 ‘한청반도체’를 설립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검찰의 수사로 핵심 인력들이 구속 기소됐고, 미·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까지 겹치면서 후속 공정 라인 구축에 실패했다.

특히 ASML 노광장비(반도체 웨이퍼 위에 초미세 회로를 새기는 핵심 장비) 등 첨단 장비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생산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결국 후속 기술 개발 능력과 장비 조달 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이 기업은 막대한 부채만 남긴 채 중국 법원에서 법정 파산 및 청산 절차를 밟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OLED 업체의 수율 문제와 단가 하락

중국 패널 업체들은 한국 핵심 인력을 영입하거나 기술을 베껴 OLED 양산에 접근했지만, 수율 안정화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수율(Yield)은 전체 생산품 중 정상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첨단 디스플레이 산업에서는 수율이 곧 수익성이다.

표면적으로 패널을 구동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미세 공정에서 불량률을 낮추지 못하면 글로벌 고객사의 기준을 통과하기 어렵다. 애플과 같은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는 색 정확도, 밝기 균일성, 내구성, 전력효율 등 엄격한 품질 기준을 요구한다. 일부 중국 업체들은 악성 불량률, 재고 누적, 단가 하락이 겹치며 자금난과 구조조정 압박에 직면했다.

C-뷰티·식품 브랜드의 품질 한계

한국 연구 인력을 빼돌리거나 제조 설비를 복제해 기능성 화장품과 식품을 내놓은 중국 현지 브랜드들도 초기에는 저가 공세로 시장을 파고드는 듯했다. 그러나 화장품의 안전성 제어, 피부 과학 기반 후속 라인업 개발, 식품 발효 안정성 관리 등 고차원 R&D 역량이 부족했다.

그 결과 미세 유해 물질 검출, 품질 편차, 소비자 신뢰 하락 문제가 이어졌고 일부 브랜드는 마케팅 비용만 소진한 채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기술은 복제할 수 있어도 축적된 연구 문화와 품질 관리 시스템까지 한 번에 가져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대목이다.

국제 특허 소송전에서는 피해 기업이 또 한 번 벽에 부딪혔다

기술 유출 기업들이 시장에서 자멸하는 사례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 기업들은 해외 현지 소송에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도 자국 기업 보호 장벽에 막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사례로 LG화학과 중국 양극재 기업 론바이 간 특허 분쟁이 거론된다. LG화학은 자사의 핵심 특허인 NCM 삼원계 양극재 입자 내부 금속 농도구배 및 결정 구조 방향 제어 기술을 침해했다며 중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금속 농도구배는 입자 내부에서 니켈·코발트·망간 등 금속 성분의 농도를 위치별로 다르게 설계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배터리 용량과 안정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결정 구조 방향 제어는 소재 입자의 내부 구조를 원하는 방향으로 배열해 성능을 개선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중국 베이징 지식재산권법원은 중국 국가지식재산권국(CNIPA)의 판단을 받아들여 LG화학 핵심 특허 3건 중 2건에 대해 특허 무효 판단을 내렸다. 이유는 “실험 데이터 설명이 불충분하고 재현 가능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한국 특허청과 법원에서 유효성이 인정된 기술이 중국 현지에서는 무효 판단을 받은 셈이다. 이는 기술을 빼앗긴 피해 기업이 오히려 현지 사법 장벽 앞에서 패소하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해외 전문가들은 한국의 낮은 처벌 수위를 문제로 지적했다

세계 지식재산권 전문가들과 해외 언론은 한국의 기술 보호 체계가 산업 경쟁력에 비해 취약하다고 지적해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포스트 등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배터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보호하는 사법적 방패는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취지의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 FBI 방첩 전문가 그룹도 한국의 처벌 수위가 낮다는 점을 문제로 거론했다. 미국은 경제스파이법(EEA, Economic Espionage Act)을 통해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사범에게 장기 징역형과 막대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수십조 원 가치의 기술이 유출돼도 실형이 5~6년 안팎에 그치는 사례가 발생해 논란이 컸다.

실제로 국내 법원은 삼성전자 기술 유출 사건 관련자에게 징역 6년 4개월, SK하이닉스 기술 유출 사건 관련 중국 국적 직원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대한민국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고 판단했음에도 국민 눈높이에서는 처벌이 약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전문가 진단, 기술 유출은 현대판 영토 침탈이다

한국산업보호법학회 고문을 지낸 정 안 보 변호사는 기술 유출을 단순 절도가 아니라 현대판 영토 침탈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 세계는 군사 무기가 아니라 기술로 패권을 가르는 기술 내셔널리즘 시대에 들어섰다”고 설명했다. 기술 내셔널리즘은 국가가 전략 기술을 경제·안보 자산으로 보고 보호와 육성에 적극 개입하는 흐름을 뜻한다.

과거에는 도면 몇 장을 복사해 나가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기업의 핵심 양산 노하우와 데이터베이스 자체를 통째로 이식하는 시스템적 탈취로 바뀌었다. 특히 중국 법원이 LG화학 양극재 특허에 대해 내린 무효 판단은 글로벌 사법 무대에서 자국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해 법적 장치까지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정 변호사는 기업 개별 보안에만 의존해서는 기술 유출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사법·방첩망을 재정비하고, 산업기술유출 범죄를 형법상 간첩죄에 준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훔친 기술로 취득한 범죄 수익뿐 아니라 그 기술로 파생된 해외 기업의 자산까지 추적해 몰수하는 징벌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73년 만의 형법 개정, 산업 스파이도 간첩죄 적용 대상이 됐다

대한민국 법제도에도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기존 형법상 간첩죄는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에 한정됐다. 현실적으로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가 아니면 중국, 미국, 대만 등 외국 기업이나 기관에 국가핵심기술을 넘겨도 간첩죄 적용이 어려웠다.

하지만 국회가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개정 법률은 2026년 9월 13일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코리안투데이] 간첩법 개정 전후 산업스파이 처벌 형량 변화 비교. 오는 9월 시행되는 형법 개정안(간첩죄 확대)에 따른 처벌 수위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즌다. 그동안 해외로 기술을 빼돌려도 미온적인 실형(1~5년)이나 집행유예에 그쳤던 처벌이, 앞으로는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로 인정되어 최대 징역 30년(사형·무기징역 가능)까지 대폭 상향돤다. 이는 산업 스파이를 국가 안보 위협 세력으로 보고 엄단하겠다는 강력한 사법 의지의 반영이다.(자료: 국회 통과 형법 개정안 기반 재구성) ⓒ 박찬두 기자

개정안 시행 이후에는 해외 기업이나 외국 단체를 위해 국가 핵심 기술 및 국가기밀을 유출한 산업 스파이에게도 형법상 간첩죄 적용이 가능해진다. 사안에 따라 최대 징역 30년, 무기징역, 사형까지 가능한 엄벌 체계가 열리는 것이다.

그동안 기술 유출 범죄의 상당수가 집행유예나 무죄로 끝나면서 한국이 ‘스파이들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썼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번 개정은 그 처벌 공백을 메우는 첫 단계로 평가된다.

대한민국 기술 영토를 지키기 위한 세 가지 과제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산업 보안, 인재 관리, 사법 제도, 국제 소송 대응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첫째, 산업기술유출죄를 간첩죄 수준으로 다뤄야 한다

국가핵심기술 유출은 단순한 영업비밀 침해가 아니다. 반도체 공정 하나, 배터리 소재 설계 하나가 국가 수출 경쟁력과 고용, 세수, 안보까지 좌우한다. 따라서 산업기술유출죄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경제 간첩 행위로 다뤄야 한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과 범죄수익 몰수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하게 해 재발을 막는 제도다. 기술 유출로 얻은 이익의 수십 배를 환수하고, 관련 자산까지 추적하는 경제적 단죄가 필요하다.

둘째, 퇴직 핵심 인재를 보호하는 국가 리텐션 허브가 필요하다

핵심 연구원과 엔지니어가 퇴직 이후 해외 헤드헌터의 고액 연봉 제안에 흔들리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 리텐션(Retention)은 인재가 조직이나 국가 생태계 안에 계속 머물도록 붙잡는 전략을 뜻한다.

국가 차원에서 ‘시니어 국가핵심기술 자문단’을 운영해 퇴직한 베테랑 인재를 연구소, 대학, 공공 프로젝트로 연결해야 한다. 이들이 축적한 경험을 국내 산업 생태계 안에서 활용하고 합당한 예우를 제공해야 기술 유출 유혹을 줄일 수 있다.

셋째,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기술 유출 소송에서 피해 기업이 가장 크게 부딪히는 벽은 증거 부족이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은 상대방이 자료를 감추면 침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디스커버리(Discovery)는 재판 전 상대방에게 관련 문서, 소스코드, 이메일, 설계 자료 등을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증거개시 제도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전 산업 분야로 확대하면 기술 유출 피해 기업이 실질적으로 권리를 지킬 수 있다.

대한민국 기술 영토를 지켜라

기술은 한 나라의 또 다른 영토다. 국경을 지키는 일이 군사 안보라면, 반도체 공정과 배터리 소재, 조선 설계와 OLED 양산 기술을 지키는 일은 경제 안보다. 기술을 빼앗기면 공장만 잃는 것이 아니라 미래 시장, 일자리, 수출 경쟁력, 국가 주권의 일부까지 흔들린다.

훔친 기술로 세운 모래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후속 연구개발 능력이 없는 기업은 수율과 품질의 벽에 막혔고, 일부는 파산과 청산으로 무너졌다. 그러나 피해가 저절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해외 소송과 자국 기업 감싸기, 증거 부족, 낮은 처벌 수위라는 벽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 기술 유출은 기업 보안팀만의 일이 아니다. 정부, 사법부, 수사기관, 산업계가 함께 대응해야 하는 국가 생존 전략의 문제다. 산업 스파이를 간첩죄 수준으로 다루는 법제 변화는 시작일 뿐이다. 내부 보안 강화, 인재 보호, 국제 소송 대응, 증거개시 제도 확대가 함께 작동할 때 대한민국 기술 영토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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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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