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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송정숙

[디지털치유론] 가상현실 속

기사입력 기사번호 53861

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지난달 KIHA 정기 워크숍에서 한 회원분이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협회장님,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을까요?” 저는 곧바로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최근 제가 준비 중인 「디지털치유론 Level I」 4장 원고에서 읽었던 한 연구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팀이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쓴 참여자들에게 ‘미래의 자신’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게 했더니, 6주 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응답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회원분은 그날 이후로 제게 종종 연락을 주셨습니다.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이 길어지고, 무언가를 시작할 힘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상태에 이름을 붙이거나 방법을 정해드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그분이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 대화의 결을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 KIHA가 하는 일입니다. 책 속 연구 참여자의 목소리가 유독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는 VR 속에서 5년 후의 저를 만났어요. 그 ‘미래의 나’가 말했죠: ‘괜찮아, 우리는 해냈어.’ 그 순간, 뭔가가 달라졌어요.”

이 한 문장을 읽으며 저는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힘든 시간을 견디는 방법으로 “버티다 보면 나아진다”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이 연구는 순서를 뒤집습니다. 미래의 나를 먼저 만나고, 그 안도감을 오늘로 가져오는 방식입니다. 디지털 도구가 의료 행위를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상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새로운 통로 하나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저는 이것을 자가 돌봄의 확장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치유론 보조 이미지

책 4장에는 ‘행동활성화’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기분이 좋아지기를 기다린 뒤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뒤따라온다는 원리입니다. 가상의 공원을 걷고, 가상의 정원을 가꾸고, 가상의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작은 단계들이 실제 생활의 감각과 이어진다는 대목을 읽으며, 저는 KIHA 자가 돌봄 프로그램에서 늘 강조해온 이야기와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기분이 좋아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움직여라.”

저희 협회 회원분들과 매주 나누는 작은 실천 중 하나가 ‘오늘 딱 한 걸음’ 원칙입니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창문을 열고 5분 걷기, 좋아하는 음악 한 곡 틀어놓고 설거지하기 같은 사소한 몸짓입니다. 디지털 기기를 쓰든 쓰지 않든 핵심은 같습니다. 마음이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 그 반복이 일상의 균형을 조금씩 되돌려 놓는다는 것을 현장에서 여러 차례 확인했습니다.

4장 후반부에는 자기연민 훈련이라는 접근이 소개됩니다. 사용자가 가상의 몸에 들어가 자신을 마주하고, 잠시 다른 시선이 되어 슬퍼하는 스스로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방식입니다. “힘들었지, 괜찮아,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그 말을 받는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KIHA 세미나 때마다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남에게는 쉽게 건네는 다정함을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인색하게 씁니다.”

실제로 협회 활동 중 만난 여러 분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작은 실수에도 오래 자책하는 습관을 지닌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런 분들께 거창한 방법을 권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루에 한 번, 자신에게 소리 내어 다정한 한마디를 건네보라고 권합니다. 처음엔 어색해하시던 분들도 몇 주가 지나면 “그 말이 저를 조금 편안하게 해줬어요”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디지털 기술이 하는 역할도 결국 이와 비슷합니다. 낯설고 서툰 자기 다정함의 연습을, 조금 더 안전하고 몰입감 있는 환경에서 반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환청처럼 낯선 소리를 듣는 경험을 하는 분들을 위한 접근도 소개합니다. 런던의 한 연구팀은 그 목소리의 생김새와 톤을 함께 상상해 가상의 형상으로 만들고, 참여자가 그 형상과 마주 앉아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아가는 대화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위협적이던 형상이 점차 누그러지고, 참여자가 그 존재를 줄이거나 떠나보낼 수 있다는 감각을 얻게 되었다는 결과가 인상 깊었습니다. 다만 책은 이 접근이 반드시 숙련된 전문가의 동반 아래, 안정된 상태의 참여자를 대상으로만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은 KIHA 활동에서 늘 조심스럽게 다루는 원칙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도구는 전문가의 판단과 동행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통합치유를 이야기할 때 세대 간 온도차를 자주 느낍니다. 어르신 회원분들은 헤드셋 하나 쓰는 일도 낯설어하시고, 반대로 젊은 회원분들은 오히려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자리를 어색해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 격차를 문제로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세대가 서로 다른 문 앞에 서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K-치유가 해야 할 일은 그 문 앞에서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손을 내미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청년에게는 화면 너머의 작은 연습을, 화면이 낯선 어르신께는 사람의 목소리와 손길을 먼저 건네는 방식으로요.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스스로에게 건넨 말 중 가장 다정한 한마디는 무엇이었나요. 혹시 오래도록 자신에게만 인색했던 것은 아닌지, 잠시 멈춰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거창한 도구나 기술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창문을 열고 숨 한 번 크게 쉬는 것, 미래의 나라면 오늘의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상상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KIHA는 그 작은 시작을 함께하는 곳이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디지털치유론 Level I」 Chapter 4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VR과 AR이 우울감, 낯선 소리의 경험, 그리고 자기연민이라는 주제와 어떻게 만나는지, 더 풍부한 연구와 함께 다루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s://wiabook.com/books/digital-therapeutics-leve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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