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주 작가가 그림책 『쉿! 포도순이 기지개 켜는 소리야』를 냈다. 스타키보청기 종로센터를 2009년부터 운영해온 청각 전문가가 쓴 동화는, 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하는 아이의 시선으로 봄 포도밭의 미세한 기척을 좇는다.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 지점에서 이 책의 자리가 갈린다. 저자가 17년 가까이 청각 재활 현장에서 지켜본 아이들의 얼굴이 문장 사이사이에 겹쳐 보인다.
장애 이해를 다루는 그림책은 최근 국내외에서 꾸준히 늘어나는 흐름이다. 다만 상당수가 설명과 교훈을 앞세우다 이야기의 결을 잃는다. 이 책은 다른 길을 택했다. 난청이라는 조건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소리를 듣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 구조로만 보여준다. 주인공 토리가 귀 대신 눈과 손, 살갗의 감각으로 포도순이 돋아나는 기척을 알아채는 과정이 그 축이다. 보청기를 다루는 전문가가 직접 쓴 만큼, 청각을 잃어가는 아이의 심리를 관찰이 아니라 체감으로 옮겼다는 점도 다른 그림책과 갈리는 대목이다. 국제 아동문학 흐름에서도 감각의 차이를 결핍이 아니라 다른 감지 방식으로 그리는 시도가 늘고 있는데, 이 책은 그 흐름에 국내 청각 재활 현장의 구체성을 더한 사례로 놓인다.

지 작가는 2009년부터 스타키보청기 종로센터를 운영하며 청각 재활 현장에서 일해왔다. 위아 언론인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코리안투데이 종로·중구·송파지부장과 보건의료 전문 칼럼니스트를 겸한다. 한국인공지능진흥협회 이사, 위아 평생교육원 전문교수로도 활동하며 AI 최고위과정을 수료했고, 한국AI작가협회 이사와 한국콘텐츠능률협회 정회원, 종로구 상공회 회원이기도 하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인공지능융합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앞서 『소리의 선물』 『마법같은 순간들』을 냈고, 청각 재활을 다룬 『소리의 재발견』 시리즈(다시 듣는 세상, 보청기 완전 정복, 생애주기별 청각케어, 함께 사는 세상)로 소리를 주제로 한 저술을 이어왔다. AI 글쓰기와 워드프레스 관련 실용서도 여러 권 냈지만, 어린이 그림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각 전문가로서 축적한 임상 언어를 동화의 문법으로 옮긴 시도라는 점에서 이전 저서들과 결이 다르다.
책은 32쪽 분량으로 다섯 장에 걸쳐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리를 찾는 아이, 비밀의 문이 열리다, 생명이 깨어나는 소리, 가족과 함께하는 하모니, 모두를 위한 소리 순이며, 앞뒤로 등장인물 소개와 작가의 말을 붙였다. 다섯 장은 각각 아이가 소리의 부재를 자각하는 순간부터, 자연의 소리를 되찾고 가족과 나누는 순간까지 단계별로 짚는다. 장마다 짧은 장면 두세 개로 호흡을 나눠, 긴 설명 없이 그림과 짧은 문장만으로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구성이다.
미리보기 원고는 “따스한 봄날, 토리네 가족이 초록빛 포도밭에 도착했어요”로 문을 연다. 아빠 네오가 “여기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니?”라고 묻는 순간, 반짝이는 날개를 가진 소리 요정 루루가 나타나 숨어있던 자연의 소리들을 노래로 풀어놓는다. 텃밭의 미나리가 “쑥쑥” 키를 재며 자라나는 소리를 그린 대목처럼, 짧은 문장과 의성어로 리듬을 살린 문체가 이 책의 특징이다. 문장을 짧게 끊고 한 줄씩 내려앉히는 편집도 눈에 띄는데, 소리를 시각적 리듬으로 바꿔 전달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등장인물은 토리와 부모 네오·엘라, 소리 요정 루루 넷으로 단출하다. 출판사는 전 연령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라고 소개한다. 유아·어린이 독자에게는 자연 관찰 그림책으로 읽히고, 보호자에게는 난청 자녀나 보청기 착용을 앞둔 아이와 나눌 대화의 실마리로 쓰일 여지가 있다. 작가가 청각 재활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든 서사에 녹아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지점이다.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와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며 등장인물의 대사를 나눠 맡아보는 방식도 가능해 보인다.
텍스트가 소리를 언어로 옮기는 방식은 이 책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꼬물꼬물’처럼 생명이 깨어나는 순간을 의성어로 그려낸 대목들이 독자에게 어떻게 가닿는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청각 재활 전문가가 쓴 그림책이 국내 장애 이해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될지도 지켜볼 대상이다. 『쉿! 포도순이 기지개 켜는 소리야』는 EPUB3·PDF 전자책으로 제작됐으며 정가는 1만4900원, 지난 7월 11일 출간됐다. 지승주·JIAN 공저이며, 구매는 WIA Book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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