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난청 아이 토리에게 보청기는 무서운 기계가 아니라 소리요정 루루다. 신간 《토리와 루루의 군산 시간여행》은 이 발상 하나로 청각장애 아동문학의 결을 바꾼다. 보청기 착용을 낯설어하는 아이들에게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심어주려는 목적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고, 배경으로 삼은 도시 군산의 역사까지 함께 녹여낸다.
장애를 소재로 한 그림책은 최근 몇 년 새 국제 아동문학 시장에서 뚜렷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시각·청각·지체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번역서와 창작서 양쪽에서 늘었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청각장애, 그중에서도 보청기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 드물었다. 특수교육 현장이나 가정에서 보청기 착용 초기 거부감을 다룰 참고 자료 자체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토리와 루루의 군산 시간여행》은 보청기 자체를 캐릭터화해 이 공백을 채운다. 군산이라는 실존 도시의 역사 공간을 무대로 삼아, 장애 이해 교육과 지역 역사 교육을 한 권에 묶은 점도 눈에 띈다. 그림책 한 권으로 두 가지 교육 목적을 동시에 다루려는 시도인 셈이다.

글을 쓴 지승주 작가는 필명 ‘토토지’로 활동한다. 스타키보청기 종로센터 대표로 15년 넘게 보청기·청각 재활 현장을 지켜온 전문가다. 위아 언론인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코리안투데이 종로·중구·송파지부장과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한다. 앞서 청각 건강을 다룬 《소리의 재발견》 시리즈와 《소리의 선물》, 《마법같은 순간들》 등을 펴냈다. 인공지능 융합학과에 재학하며 AI 활용 글쓰기·출판 가이드서, 워드프레스 실무서 등 다른 분야의 책도 여러 권 써온 다작 저자다. 현장에서 만난 난청 아동과 가족들의 언어 발달, 소통 고민을 오래 지켜본 경험이 이번 동화의 바탕이 됐다. 공저자 JIAN과 함께 이야기를 완성했다.
책은 작가소개와 등장인물소개에 이어 5개 장으로 이어진다. 제1장 ‘소리요정 루루와의 만남’에서 시작해 제2장 ‘박물관에서 만난 옛날 소리’, 제3장 ‘파도와 바람의 노래’, 제4장 ‘시간이 멈춘 골목길’, 제5장 ‘달빛 아래 꿈나라 여행’으로 마무리하고 작가의 말과 판권지를 붙였다. 배경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과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는 역사 도시 군산이다. 토리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옛날 배의 ‘뿌앙뿌앙’ 소리를, 진포해양테마공원에서 파도의 ‘찰싹찰싹’ 소리를, 신흥동 말랭이마을 굽이진 골목에서 시계의 ‘째깍째깍’ 소리를 듣는다. 루루가 이 소리들을 증폭시켜 들려줄 때마다 토리는 역사와 소리의 관계를 몸으로 익힌다. 수채화 풍 그림으로 토리네 가족의 하루를 따라가는 구성이다. 다섯 개 장 모두 실재하는 군산의 장소를 배경으로 삼아, 읽고 난 뒤 실제 여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짰다.
1차 독자는 난청을 가진 유아·어린이와 그 가족이다. 보청기를 낯설어하는 아이가 착용 초기 거부감을 줄이는 데 쓰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동시에 비장애 어린이 독자에게는 장애 이해 교육 자료로, 부모 세대에게는 군산 여행 전 예습용 그림책으로도 읽힌다. 문장은 짧은 대화체 위주로 짜여 있어 취학 전 아동이 보호자와 함께 소리 내어 읽기에 맞춰졌다. 가정뿐 아니라 어린이집·유치원의 장애 이해 교육 시간에도 활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본문은 토리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우와! 엄마, 아빠! 우리 드디어 군산 가는 거야?”라는 물음에 부모가 “응, 토리야! 우리 오늘 멋진 여행 할 거야”라고 답하며 이야기가 열린다. 이어 루루가 “토리야, 새로운 소리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라고 속삭이고, 토리는 “와! 이 건물 진짜 크고 멋지다!”라며 눈앞의 근대 건축물에 감탄한다. 짧은 문장을 주고받는 이 리듬은 이 책이 지향하는 감각 체험형 서사를 압축해 보여준다.
다음 권에서 루루와 토리가 어느 지역을 다음 무대로 고를지, 소리 체험이라는 형식을 다른 장애 유형으로도 확장할지가 이 시리즈의 관전 포인트로 남는다. 《토리와 루루의 군산 시간여행》은 지승주·JIAN 작가가 짓고 WIA Book이 2026년 7월 15일 펴냈다. 정가는 15,000원, EPUB3·PDF 형식 전자책으로 나왔으며 구매는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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