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에 찍힌 빨간 숫자 앞에서 아이가 배우는 건 정답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법이다. 양은지 작가의 신작 그림책 「골대 앞에서 수학 문제를 이해한 태승이」는 수학 점수에 주눅 든 초등학생 태승이가 운동장 축구공의 패스 길에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정답을 맞히는 순간이 아니라 막힌 곳을 찾아 화살표를 긋는 순간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시험지를 작게 접어 숨기고 싶었던 아이가 운동장의 공 하나로 다시 수학책을 펼치게 되는 과정이 이 그림책의 뼈대를 이룬다.
초등 저학년 수학 학습을 다루는 그림책은 대개 개념 설명이나 문제 풀이 요령에 집중해 왔다. 이 책은 다른 길을 택한다. 시험 점수라는 결과 대신 풀이 과정에서 막힌 지점을 스스로 찾아내는 경험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다. 아는 것부터 동그라미 치고, 모르는 부분을 표시하고, 화살표로 다음 단계를 그려 나가는 방식은 수학 문제뿐 아니라 아이가 크고 작은 실패를 마주하는 방식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태도다. 최근 초등 교육 현장에서 자기주도학습과 과정 중심 평가가 꾸준히 강조돼 온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점수 하나로 아이의 자신감이 흔들리는 일은 드물지 않다. 이 책은 그 순간을 회피하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다음 걸음을 찾도록 곁에서 지켜보는 어른의 시선을 함께 담는다. 문제집을 더 풀게 하는 대신 어디서 막혔는지 함께 들여다보는 태도가 이 그림책이 은근히 건네는 제안이다.

저자 양은지는 이 책을 통해 수학 시험 점수를 받고 속상해하던 자신의 경험을 어린 주인공의 마음으로 옮겨 왔다. 생활 속 작은 경험을 성장의 이야기로 바꾸는 글을 꾸준히 써 온 작가로, 이번 작품에서도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누구나 겪었을 법한 하루의 감정을 세밀하게 따라간다. 시험지 앞에서 작아지고 싶었던 마음과 운동장에서 다시 용기를 낸 순간을 같은 아이의 하루 안에 나란히 두는 구성이 특징이다.
책은 저자 소개, 본편 「골대 앞에서 수학 문제를 이해한 태승이」, 작가의 말 세 부분으로 짜였다. 본편은 빨간 점수를 받은 태승이가 시험지를 접어 숨기고 싶어 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운동장에서 이어지는 축구의 패스 길이 수학 문제의 풀이 과정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으로 넘어간다. 아는 수부터 동그라미 치고 막힌 곳을 찾아 화살표를 그으며 한 칸씩 나아가는 태승이의 모습이 이야기의 축을 이룬다. 어려운 순간에 선생님에게 질문을 건네는 장면은 혼자 끙끙대기보다 물어보는 쪽을 택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부모와 교사가 함께 읽기에 알맞은 분량과 구성이다. 시험 점수에 위축된 아이, 수학 문제 앞에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는 아이에게 특히 권할 만하다. 질문하는 습관과 실패 이후의 회복력을 그림책의 언어로 전달하고자 하는 부모와 교사 모두를 위한 학습 동화이기도 하다. 시험 결과를 두고 아이와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부모에게도 대화의 실마리를 준다. 결과를 다그치기보다 과정을 함께 짚어보는 대화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소재가 될 수 있다.
미리보기에는 이 그림책의 정서가 압축돼 있다. “시험지 위 빨간 점수를 본 태승이는 볼이 화끈 달아오르자 종이가 콩알만 해지기를 바라며 꼭꼭 접습니다”라는 문장은 점수 앞에서 작아지는 아이의 마음을 그대로 옮긴다. 이어 “운동장으로 굴러온 공과 친구들의 그림자가 수학책 위에 패스 길을 만들자, 태승이는 틀린 문제의 수들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이어 봅니다”라는 대목에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답보다 풀이가 끊긴 곳이 먼저 보인다는 문장 하나가 이 책이 던지려는 메시지를 요약한다. 축구공이 그리는 패스 길과 수학 문제의 풀이 순서를 겹쳐 놓은 발상은 이 작품만의 장면으로 남는다.
태승이가 다음 페이지에서 선생님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그 질문이 어떻게 답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이 그림책을 읽는 핵심 관전 포인트다. 「골대 앞에서 수학 문제를 이해한 태승이」는 양은지 지음, 정가 5,000원, 전자책(PDF) 형식으로 WIA Book이 2026년 7월 25일 출간했다.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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