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많은 토끼는 이불 속에서 떨고 있다. 새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할까 봐서다. 낯선 교실 문 앞에 선 모든 아이가 품는 이 질문에, 그림책 《처음 학교 가는 날》이 정면으로 답을 건넨다. 입학이라는 통과의례를 겁내는 감정을 억누르라 하지 않고, 그 감정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 점이 다르다.
매년 3월이면 유치원과 초등학교 앞은 아이 손을 놓지 못하는 부모와, 그 손을 결국 놓아야 하는 아이들로 붐빈다. 낯가림과 분리불안은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거치는 자연스러운 단계지만, 정작 아이 눈높이에서 그 감정을 언어로 풀어낸 이야기는 흔치 않다. 국내외 유아 그림책 시장이 최근 몇 해 사이 자기존중감과 또래 관계, 다양성 수용을 다루는 작품을 꾸준히 늘려온 배경에도 이런 공백이 있다. 겁·호기심·외모 걱정처럼 서로 다른 감정을 동물 캐릭터 각각에 나눠 맡기는 방식은 해외 유아 그림책에서도 흔히 쓰이는 서사 장치인데, 《처음 학교 가는 날》은 토끼·사자를 비롯한 여섯 마리 동물 친구를 내세워 이 장치를 국내 입학 정서에 맞게 옮겨 왔다.

저자 백승주는 25년 넘게 초등교원으로 재직하며 아이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기획하고 만들어 왔다. 교실에서 마주한 수많은 첫 등굣길의 표정을 지켜본 경험이, 처음 학교 문을 넘는 아이와 그 곁을 지키는 부모의 두려운 마음을 함께 짚는 이번 작업으로 이어졌다. 교단에서 쌓은 시간이 텍스트 곳곳에 스민 흔적은, 아이의 말투를 흉내 낸 문장이 아니라 아이가 실제로 느끼는 순서대로 감정을 배치한 구성에서 드러난다. 걱정에서 시작해 친구를 만나고 안심에 이르는 순서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지켜본 사람만이 짤 수 있는 흐름이다.
책은 저자의 말, 등장인물 찾기, 본편 ‘처음 학교 가는 날’ 순으로 구성된다. 등장인물 찾기 꼭지에서는 겁 많지만 호기심도 많은 토끼, 책과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친구, 자신의 인상이 사납다고 걱정하는 친구, 춤추기와 어울림을 좋아하는 친구, 몸집과 느린 걸음 탓에 놀림받을까 염려하는 친구, 시끄럽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친구까지 여섯 캐릭터를 먼저 소개한다. 본편에 들어가기 전 독자가 각 캐릭터의 걱정거리를 미리 알아두게 함으로써, 이야기 속 사건을 자기 경험에 대입해 읽도록 이끄는 장치다. 여섯 걱정 중 하나쯤은 읽는 아이 자신의 것과 겹치도록 짠 구성이다.
본편은 등굣길 아침 장면으로 문을 연다. “처음 학교에 가는 아침, 겁 많은 토끼가 이불 속에서 덜덜덜 떨고 있어요. 새 친구들이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이 한 줄에 유치원생과 초등 저학년 독자가 자신의 감정을 겹쳐 읽도록 문장을 짧게 끊어 놓았다. 의성어와 반복 구조를 살려 소리 내어 읽기에도 알맞게 짰다. 부모가 아이와 나란히 앉아 함께 읽으며 등교 전 대화를 나누기에 적당한 분량이고,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 교실에서 새 학기 첫 수업 자료로 쓰기에도 무리가 없다.
겉모습도, 성격도, 걱정거리도 다른 여섯 친구는 결국 같은 등굣길 위에서 만난다. 다름을 확인하는 과정과 그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저자는 별도의 설명 없이 등장인물의 행동만으로 드러낸다. 인성교육을 표방한 그림책이 자칫 설교조로 흐르기 쉬운 지점을, 여섯 캐릭터가 각자의 걱정을 안고 부딪치고 화해하는 서사로 비켜간 셈이다. 자기존중감과 타인 존중이라는, 말로는 쉬워도 그림으로 옮기기는 까다로운 주제를 캐릭터의 표정과 행동에 실어 전달하려 한 시도로 읽힌다. 교사 출신 저자답게, 정답을 말해주기보다 아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여지를 남긴 결말 구성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다음으로 볼 대목은 여섯 친구가 숲속학교 교문 앞에서 각자의 걱정을 실제로 어떻게 마주하느냐다. 토끼의 떨림이 걱정으로 끝나는지, 다른 다섯 친구와의 만남으로 풀리는지가 이야기의 결을 가른다. 《처음 학교 가는 날》은 백승주 저, 정가 3,000원, EPUB2·EPUB3·PDF 형식의 전자책으로 8월 1일 WIA Book에서 나왔다.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미리보기와 구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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