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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5년 10월 12일 – 을축년 물난리 복구 여전한데, 임시정부는 새 국무령 조각에 난항

[100년 전 오늘] 1925년 10월 12일 - 을축년 물난리 복구 여전한데, 임시정부는 새 국무령 조각에 난항

기사입력 기사번호 54173
🕙 오전판

100년 전 오늘 – 1925년 10월 12일 (월요일)

10:10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925년 10월 12일 월요일, 경성 거리에 늦가을 바람이 불었다. 이날의 정확한 날씨는 확인되지 않으나, 절기로는 한로를 지나 상강을 앞둔 즈음이었다. 지난여름 을축년 큰물에 집과 세간을 잃은 사람들은 아직 살 곳을 구하지 못한 채 겨울을 걱정하고 있었다. 종로 거리에는 아침 일찍부터 신문을 손에 든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해에서 임시정부 소식이 들어왔다는 말이 오갔다.

그날의 경성

경성부는 지난여름 두 차례 한강 물이 10미터 넘게 불어나며 4만 명 넘는 이재민을 낸 을축년 큰물의 뒷수습에 여전히 매달려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용산 제방을 5~10척 더 높이 쌓고, 제방 바깥 이촌동 일대에는 다시 집을 짓지 못하게 하는 대책을 마련해 두었지만, 겨울을 앞둔 이재민들의 살 곳 마련은 더뎠다. 관의 예비금만으로는 모자라 신문사와 청년회, 조선수해이재자구제회가 모은 의연금이 큰 몫을 하고 있었다.

같은 날 경성 거리에는 상해 쪽 소식도 함께 전해지고 있었다. 지난달 임시정부 국무령으로 뽑힌 이상룡이 내각을 꾸리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이끌던 인사들을 대거 불러들이려 했는데, 이들이 모두 상해로 옮겨가면 정작 만주 쪽 독립운동 진영에 큰 구멍이 난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지난 초여름 마무리된 간이국세조사 결과 조선 인구가 1,952만 명으로 집계되었다는 소식도 뒤이어 신문 지면을 채웠다. 이날 경성의 구체적인 물가를 전하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경성과 한반도

경성 바깥에서는 형평사를 둘러싼 갈등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두 달 전 경상북도 예천에서 반형평 세력이 형평분사를 습격한 사건 이후, 형평사 본부는 전국 형평사원에게 예천으로 모일 것을 결의한 바 있었다. 백정 출신과 양반 출신이 함께 만든 이 단체는 신분 차별을 없애자고 나섰지만, 그만큼 거센 반발도 함께 짊어져야 했다. 진주에서 시작된 이 움직임은 경상도를 넘어 전국 각지 형평분사로 번져 있었고, 지역 형평분사들은 잇달아 모임을 열어 대응을 논의하는 중이었다. 만주와 간도의 한인 사회, 하와이와 미주의 동포 사회에도 임시정부의 어려움과 국내 소식이 시차를 두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날의 세계

이날 세계는 여러 갈래로 술렁였다. 스위스 로카르노에서는 독일의 슈트레제만, 프랑스의 브리앙, 영국의 체임벌린 등이 모여 라인란트의 안전을 서로 보장하는 조약을 놓고 열흘 넘게 협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회의는 10월 16일 타결을 앞두고 있었다. 같은 날 독일과 소련은 통상조약을 맺어 두 나라의 경제 교류 물꼬를 텄다. 파리에서는 경찰과 공산주의자들이 충돌해 두 명이 숨지고 일흔 명 가까이 붙잡혔는데, 그 가운데는 공산당 소속 하원의원 자크 도리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파나마에서는 소작인들의 파업을 진압해 달라는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미군 600명이 들어갔다.

경성 24시

월요일 아침 경성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전차가 종로와 남대문을 오가고, 학생들은 책보를 끼고 학교로 향했으며, 상인들은 가게 문을 열고 하루 장사를 시작했다. 이 무렵 화제의 인물은 단연 임시정부 국무령 이상룡이었다. 안동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나라가 기울자 가산을 정리해 만주로 망명한 그는, 서로군정서와 정의부를 이끌며 무장투쟁의 한 축을 지켜 온 인물이었다. 예순여덟의 나이에 임시정부의 첫 국무령을 맡았지만, 상해와 만주 두 진영의 요구를 함께 만족시키는 내각을 짜기란 쉽지 않았다. 그의 고심은 이날도 계속되고 있었다.

100년의 거울

월요일이면 늘 그렇듯, 오늘은 그때와 지금의 사람 사는 모습을 견주어 본다.

항목 1925년 2025년
인구 약 1,952만 명 (간이국세조사) 약 5,175만 명 (추계)
쌀 한 섬 값 19원 26전 확인 안 됨
정부 수반 국무령 (의회 선출, 망명지 무보수직) 대통령 (국민 직선, 임기 5년)

100년 전 조선 사람은 나라 없는 백성이었다. 나라의 수반조차 남의 땅에서 숨어 지내며 뽑아야 했고, 그 자리는 봉급도 명예도 아닌 짐에 가까웠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 나라의 일꾼을 뽑는다. 당연해 보이는 이 하루하루가, 100년 전에는 누군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꿈이었다.

내일 10월 13일은 화요일, 법과 질서를 두루 살피는 날이다. 예천에서 불거진 형평사 갈등이 법정에서는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경성 거리의 단속 소식은 없는지 함께 들여다볼 참이다. 내일 아침 🕙,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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