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의 경성
사건을 맡았던 예심판사 다테마쓰는 지난 8월 9일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이날, 8월 11일, 그 사표가 마침내 수리됐다. 발단은 1925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심 조사실에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앞뒤로 밀착해 앉은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 찍혔다. 그 사진과 이를 문제 삼는 괴문서가 지난달 신문에 실리면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아일보는 8월 1일자에서 도쿄발 전보를 받아 ‘박열과 문자에 관계된 괴문서’, ‘박열과 문자에 관계된 사진과 문서 극비밀리에 경시청에서 활동 개시’라는 제목을 달았다. 정우회와 정우본당은 이 사진을 ‘국체 관념의 결여’라며 물고 늘어졌고, 사법대신 에기 다스쿠 등을 향해 화살을 쐈다. 겐세이카이(헌정회) 내각은 궁지에 몰렸다. 의회는 사흘이나 문을 닫아야 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이 파문이 한창이던 지난 7월 23일,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스물세 살이었다. 사인은 자살로 발표됐으나, 조선 신문들은 의문을 거두지 않았다. 다테마쓰 판사의 사임은 이 길고 어두운 여름의 한 매듭이지, 끝은 아니라고 경성의 법조가에서는 입을 모았다.

경성과 한반도
박열은 문경 출신이다. 조선 청년들에게 그의 이름은 단순한 사건 피고인의 이름이 아니었다. 함흥에서도, 대구에서도, 이 소식을 전하는 신문을 돌려 읽는 학생들이 있었다. 지난 6월 10일, 순종의 국장 행렬을 따라 종로 일대에서 터져 나왔던 만세 소리가 채 가라앉기도 전이었다. 그날 이후 전국 각지 학교에서는 동맹휴학이 잇달았다. 조선어 교육을 요구하고, 학생회 자치를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박열 사건은 그 물결과 나란히 흘렀다. 경성의 청년들은 도쿄의 법정에서 벌어진 일과 종로의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총독부 경무국은 이 사건이 조선 안에서 퍼지는 것을 예의주시했다. 신문 검열은 여전히 엄혹했지만, 사람들 사이의 말은 검열할 수 없었다.

그날의 세계
발칸 반도에서는 이날, 유고슬라비아·루마니아·그리스 세 나라가 불가리아에 공동 각서를 보냈다. 마케도니아 무장 단체들의 국경 습격을 즉각 멈추라는 요구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여덟 해가 지났지만, 발칸의 국경은 여전히 조용할 날이 없었다.
중국에서는 이 무렵 국민혁명군이 북벌 길에 올라 있었다. 지난달 광저우에서 출병한 장제스의 군대는 후난과 후베이 방면으로 진격하며 우페이푸의 군벌 세력과 맞서고 있었다. 상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이 여전히 발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창간 7년째, 조선 독립의 목소리는 국경 너머에서도 꺼지지 않았다.

경성 24시
방학을 맞은 학교들은 문을 반쯤 닫아걸었지만, 거리는 오히려 청년들로 붐볐다. 하기강습회를 연다는 벽보가 골목 어귀에 붙었고, YMCA 강당에서는 저녁마다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서점가에는 도쿄에서 갓 들어온 잡지를 들춰보는 학생들이 줄을 섰다. 늦더위 속에서도 신문 한 장을 놓고 둘러앉아 목소리를 높이는 청년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해거름이 되자 종로 거리엔 인력거가 늘어섰고, 상점들은 하나둘 등을 밝혔다. 이날 경성의 정확한 기온과 쌀값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8월 초순 내내 이어진 늦더위가 이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100년의 거울
| 1926년 | 2026년 |
|---|---|
| 예심판사가 피고인 대우를 사사로이 정하고, 사표 하나로 책임을 매듭짓던 시절 | 재판 절차와 판사 징계가 별도 기관의 감시를 받는 시대 |
| 옥중 사망의 진상을 신문이 의문으로만 남겨야 했던 검열의 시대 | 구금시설 사망 사건에 진상조사가 제도화된 시대 |
| 학생들이 동맹휴학으로 조선어 교육을 요구해야 했던 현실 | 모어 교육이 당연한 권리로 자리잡은 오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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