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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8월 12일 –

기사입력 기사번호 5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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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판 · 1926년 8월 12일 목요일

‘옥중사진’ 파문에 흔들리는 도쿄 정계, 현해탄은 아흐레째 안개 속

10:10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926년 8월 12일, 목요일. 경성은 늦더위 속에서도 두 가지 소식으로 어수선했다. 도쿄에서는 하루 전 사표가 받아들여진 판사를 둘러싸고 의회가 술렁였고, 현해탄에서는 아흐레 전 사라진 두 남녀를 두고 온갖 소문이 그치지 않았다. 아침 신문을 펼쳐 든 사람들의 손끝이 바빠졌다.

그날의 경성

지난 8월 9일, 도쿄지방재판소 예심판사 다테마쓰 가이세이가 사직서를 냈다.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가 감옥 안에서 나란히 앉아 책을 보는 사진이 밖으로 새어 나간 탓이었다. 두 사람은 일왕을 겨눈 대역사건의 피고였다. 그런 이들을 판사가 손수 찍어 회유하려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정우회와 정우본당 등 야당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와카쓰키 내각이 대역범죄인을 우대했다는 공격이 이어졌고, 의회는 사흘이나 문을 닫아야 했다. 사표는 8월 11일 받아들여졌고, 12일 경성 안팎에서도 이 소식이 무겁게 오갔다.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판사의 자리부터 흔들린 셈이라, 법정을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재판이 재판다우려면 무엇이 먼저 서야 하는가”라는 말이 오갔다.

한편 현해탄 쪽 소식도 가라앉지 않았다.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관부연락선 갑판에서 사라진 지 아흐레째, 시신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이 사실은 죽지 않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잡화상을 차렸다는 소문까지 나돌았고, 자살 미수로 붙잡힌 열여덟 살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했다. 근거 없는 억측에 윤심덕의 여동생이 시달린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 8월 12일 당일 지면의 정확한 문구는 확인되지 않으며, 위 내용은 사건 전개에 대한 당대 및 후대 기록을 종합한 것이다.

경성과 한반도

다테마쓰 사건은 경성에서도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 박열은 조선 사람이었고, 그가 받은 재판이 공정한지는 조선인 전체의 문제로 다가왔다. 식민지 법정에서 조선인 피고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 경성의 법조계와 언론은 이 사건을 통해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는 오히려 죽음 이후 더 널리 퍼졌다. 죽기 전 오사카 닛토레코드에서 취입해 둔 음반이 뒤늦게 팔려나가며 조선 대중가요의 첫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슬픈 소식이 유행가로 남는 아이러니를 두고 경성 곳곳에서 말들이 오갔다.

지방에서는 산미증식갱신계획이 막 걸음을 뗀 참이었다. 쌀 생산을 늘려 일본으로 보내겠다는 총독부의 계획은 조선 농촌의 살림살이와 곧바로 맞물리는 문제였고, 그해 조선 전역에서 벌어진 여든 건이 넘는 노동쟁의 상당수가 함경도와 평안도의 공장과 광산에서 일어났다.

그날의 세계

중국에서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북벌을 이어가고 있었다. 후난성 창사를 손에 넣은 군대는 후베이 쪽으로 발을 옮기며 우페이푸의 군벌 세력을 밀어붙이던 참이었다. 조선의 독립운동가 상당수가 중국 관내에서 이 흐름을 지켜보며 자신들의 길을 가늠하던 때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 건국백오십주년 박람회가 골머리를 앓았다. 일요일에도 문을 열었다는 이유로 법원이 옛 펜실베이니아 주법 위반이라 판단하면서, 박람회 측은 다시 엿새짜리 운영으로 돌아갈 처지에 놓였다. 그날 미국 대통령은 캘빈 쿨리지였고, 워싱턴의 그날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목요일이었다.

경성 24시

새벽, 경성역 인근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면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걸음이 바빠졌다. 방직공장과 정미소로 향하는 이들 가운데는 열두 시간 넘게 기계 앞에 서야 하는 이도 많았다. 한낮, 종로 서점가와 레코드 가게에는 ‘사의 찬미’ 음반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기웃거렸고, 다방에서는 다테마쓰 사건을 두고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저물녘, 일을 마친 노동자들은 그날 삯을 세어보며 쌀값과 셈을 맞췄다. 밤이 깊으면 신문사 편집국의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내일 아침 지면에 무엇을 실을지, 기자들의 펜이 바빴다.

100년의 거울

100년이 흐른 오늘, 노동 현장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1926년 조선의 공장 노동자는 하루 열두 시간 넘게 일하고도 최저임금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노동조합을 만들려 하면 곧바로 감시와 탄압이 따랐다. 지금은 법으로 하루 여덟 시간이 정해져 있고, 최저임금이 해마다 정해지며,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도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그리고 다테마쓰 사건이 던진 물음, 곧 사법부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무겁게 남아 있다.

항목 1926년 조선 2026년 오늘
하루 노동시간 12시간 이상, 제한 없음 법정 8시간
최저임금 개념 자체가 없음 해마다 고시
노동조합 결성 감시·탄압 대상 헌법상 단결권 보장
산업재해 보상 사업주 재량 산재보험 의무가입

내일, 1926년 8월 13일에는 또 어떤 소식이 신문 1면을 채울까. 현해탄의 안개는 걷힐 기미가 없고, 도쿄의 정국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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