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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8월 18일 – 현해탄 미스터리 보름째, 그래도 학생들은 공을 던졌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5161

현해탄 미스터리 보름째, 그래도 학생들은 공을 던졌다

1926년 8월 18일 수요일, 경성. 늦여름 볕이 따갑게 내리쬐었다. 종로 거리엔 부채를 든 사람들이 오갔고, 신문팔이 소년의 외침이 골목마다 울렸다. 현해탄 저편에서 두 남녀가 사라진 지 어느덧 보름. 그래도 하루는 여느 날처럼 흘렀다. 학교 운동장에선 공을 던지는 학생들의 함성이 담을 넘었다.

그날의 경성

현해탄의 안개는 보름이 지나도 걷히지 않았다. 지난 8월 5일자 동아일보는 “현해탄 격랑 중에 청년 남녀의 정사(情死). 남자는 김우진, 여자는 윤심덕”이라는 제목으로, 관부연락선이 대마도 곁을 지나던 새벽 네 시 무렵 양장을 한 여자와 중년 신사가 서로 껴안고 갑판에서 바다로 몸을 던졌다고 전했다. 매일신보도 같은 날 사회면을 온통 이 소식으로 채웠다. 조선 첫 소프라노로 불리던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 두 사람의 이름이 그날부터 장안을 떠나지 않았다.

보름이 지난 오늘까지도 두 사람의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수색은 계속됐지만 이렇다 할 소식은 없었고, 대신 소문만 자꾸 부풀었다. 어디선가 살아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는 이야기, 정사가 아니라 도피였다는 이야기가 저잣거리를 떠돌았다. 이달 안에 윤심덕이 부른 노래가 음반으로 나온다는 말도 돌았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일 뿐이지만, 사람들은 그 노래 제목 하나로도 술렁였다. “사의 찬미”.

경성과 한반도

현해탄 이야기만 조선을 채운 건 아니었다. 사흘 전인 8월 15일, 충청도 대전에서는 형평사의 남북 두 파가 한자리에 모였다. 백정 출신들이 신분 차별을 없애자며 세운 형평사가 그동안 갈라져 있던 것을 하나로 합치는 자리였다. 오랫동안 조직을 이끌어온 장지필과 강상호 두 사람이 물러나기로 하고, 이름도 ‘조선형평사중앙총본부’로 새로 정했다. 그 소식이 이날 각 지방으로 퍼지면서, 지역마다 흩어져 있던 형평사원들 사이에서도 앞으로의 방향을 두고 이야기가 오갔다.

한편 지난 1일에는 잡지 개벽이 일흔두 번째 호를 내놓자마자 총독부로부터 발매를 금지당하고 문을 닫아야 했다. 사회주의를 다룬 글 한 편이 “안녕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였다. 신문과 잡지가 서고 넘어지는 여름, 조선의 활자들은 그렇게 하루하루 검열의 눈치를 보며 버텨야 했다.

그날의 세계

바다 건너 중국에서는 국민혁명군이 북쪽으로 계속 밀고 올라가고 있었다. 지난달 초 광저우를 떠난 장제스의 군대는 후난을 지나 후베이로 향했고, 군벌 쑨촨팡에게 귀순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목표는 우한, 그 관문인 무창이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이날 워싱턴 인근 알링턴에서 기상도 한 장이 처음으로 전파를 타고 워싱턴 기상청으로 전송됐다. 그림을 소리 대신 전파로 보내는 새로운 기술이었다. 한편 영국 켄트 지방에서는 에어유니언 소속 여객기 한 대가 궂은 날씨 속에 불시착을 시도하다 헛간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승객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조종사도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경성 24시

이런 뒤숭숭한 여름에도 학교 운동장은 조용하지 않았다. 동아일보가 마련한 배재·중앙·휘문·경신, 네 학교의 야구연맹전이 경성운동장에서 한창이었다. 재학생과 졸업생이 뒤섞여 팀을 이루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관중석에서 목이 터지도록 응원했다. 방망이 소리와 함성이 여름 한낮의 더위를 밀어냈다.

운동장 밖에서는 또 다른 젊은이들이 다른 방식으로 여름을 났다.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간 학생들 가운데 몇몇은 마을 아이들과 어른들을 모아놓고 한글을 가르치고 농사일을 돕는 계몽 활동에 나섰다. 도시에서 배운 것을 시골 마을에 나눠주자는 움직임이었다. 시장 골목에서는 참외와 옥수수를 파는 소리가 여전했고, 아이들은 그 사이를 뛰어다니며 여름을 즐겼다.

100년의 거울

백 년 전 학생들은 신문사가 마련한 대회 하나에 온 학교가 들썩였다. 지금 학생들은 전국 단위 리그와 방송 중계, 온라인 응원으로 그 열기를 잇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름날 운동장의 함성만은 변하지 않았다.

구분 1926년 2026년
학생 스포츠 4개교 연맹전, 신문사 주최 전국 리그, 방송·온라인 중계
여름 계몽활동 귀향 학생의 한글 보급 대학생 농촌봉사·재능기부
여름 간식 참외·옥수수 노점 편의점 아이스크림·배달 간식

교육의 형태는 달라졌어도, 배운 것을 나누고 싶어하는 젊음의 마음은 백 년을 건너 그대로 남아 있다.

내일을 기다리며

현해탄의 안개는 내일도 쉬이 걷히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종로의 아침은 다시 밝아올 것이고, 누군가는 또 공을 던지고 누군가는 책을 펼칠 것이다. 내일, 1926년 8월 19일.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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