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8월 20일 금요일.
오전 10시 10분, 경성 거리엔 늦여름 더위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열이레 전 현해탄에서 사라진 두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8월 4일 새벽,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오던 관부연락선 갑판에서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서로 껴안은 채 바다로 몸을 던졌다. 배는 즉시 멈춰 섰지만 찾지 못했다. 오늘로 열일곱째 날, 시신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이날 경성의 정확한 기온과 강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한여름 더위가 이어지던 시기라는 점은 여러 신문 지면에서 공통으로 드러난다.

📰 그날의 경성
현해탄 미스터리, 열이레째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8월 4일 새벽 관부연락선에서 함께 투신한 뒤, 오늘로 열이레가 지났다. 두 사람은 배표에 김수산(金水山)·윤수선(尹水仙)이라는 가짜 이름을 적어 냈다.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윤심덕은 몸을 던지기 사흘 전인 8월 1일, 오사카의 한 축음기 회사에서 예정에 없던 곡 하나를 더 녹음했다. 이바노비치의 선율에 자신이 직접 노랫말을 붙인 ‘사의찬미’였다.
※ 이날 두 신문의 정확한 지면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다. 사건의 경과는 이후 여러 언론의 후속 보도를 통해 정리된 내용이다.
🏛️ 총독부 관보
이날 관보의 구체적인 고시·인사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날 관보 발행 없음”으로 명시한다.
✊ 기록된 저항
한 달 전인 7월 23일, 일본 우쓰노미야형무소에서 가네코 후미코가 옥중에서 숨졌다. 박열과 함께 대역죄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지 넉 달 만이었다.
예심 당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사진이 괴문서와 함께 신문에 실리면서 사법부가 뒤흔들렸고, 담당 예심판사 다테마쓰는 8월 9일 사표를 냈다. 11일 수리됐다. 그 여진이 이달 하순까지 이어지고 있다.
👩 금요일 – 신여성의 삶
윤심덕은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돌아온, 조선 최초의 서양음악 소프라노였다. 무대에 서는 여성, 자기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는 여성은 그 자체로 낯설고 위태로운 존재였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그가 부른 노래 한 곡뿐이다.
💰 신문 광고로 본 물가
당일 물가 정보 확인 안 됨. 추정 가격은 싣지 않는다.

🗾 경성과 한반도
김우진의 고향은 전라남도 목포다. 지역의 큰 지주 집안 아들이었고, 이미 혼인한 몸이었다. 현해탄 사건은 경성뿐 아니라 목포에서도 파문을 일으켰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날 목포 쪽 반응을 다룬 구체적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다.
• 경성 밖 소식: 평양·부산·대구 등 지역별 8월 20일자 상세 보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 해외 한인사회: 만주·상해·미주 한인신문의 이날 논조는 확인하지 못했다.
• 6·10만세운동 관련자들은 이해 6월 25일 기소된 뒤 예심이 진행 중이었고, 공판은 11월로 예정돼 있었다.

🌏 그날의 세계
🇨🇳 중국 – 북벌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7월 북벌을 선언한 뒤, 8월 후베이성에서 군벌 우페이푸의 군대와 맞붙어 팅쓰차오·허성차오 전투에서 잇달아 승리했다. 이 기세는 두 달 뒤 우창 함락으로 이어진다.
🇯🇵 일본
다이쇼 천황은 1921년부터 병으로 정무를 보지 못했고, 황태자 히로히토가 5년째 섭정을 맡고 있었다. 이해 12월, 천황은 세상을 떠나고 연호는 쇼와로 바뀐다.
🇪🇸 스페인
이달 초 바르셀로나에서 독재자 프리모 데 리베라를 향해 단검이 날아들었다. 빗나갔고, 34세의 카탈루냐 출신 아나키스트가 붙잡혔다.
🇺🇸 미국
금주법과 재즈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날짜 뉴욕타임스 지면의 구체적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 경성 24시 – 일상의 기록
🌅 아침
종로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남대문 시장이 문을 연다. 인력거꾼의 하루도 시작된다.
☀️ 낮
경성역엔 만주행 급행열차가 오가고, 총독부 청사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 밤
명동 카페 축음기에서 ‘사의찬미’가 흘러나온다. 손님들은 말없이 잔만 비운다.
👩🎤 어느 카페 축음기 앞에서
그가 부른 노래는 8월 초 음반으로 나와 그 달 안에 조선 전역에서 팔려나갔다고 전해진다. 노래는 남았고, 노래를 부른 사람은 없다.
🔄 100년의 거울
| 구분 | 1926년 | 2026년 |
|---|---|---|
| 여성의 사회 진출 | 무대에 서는 여성 자체가 스캔들이 됐다 | 여성 음악가·배우가 산업의 중심에 있다 |
| 사랑과 이혼 | 유부남과의 관계는 죽음으로만 끝날 수 있었다 | 이혼과 재혼이 법적으로 자유롭다 |
| 음악의 유통 | 축음기 음반 한 장이 도시 곳곳에 퍼지는 데 몇 주가 걸렸다 | 음원 하나가 발매 즉시 전 세계에 퍼진다 |
💡 역사의 교훈
윤심덕과 김우진의 죽음은 스캔들로 소비됐지만, 그 밑에는 식민지 조선에서 ‘자기 이름으로 살고 싶었던’ 한 여성의 자리가 얼마나 좁았는지가 깔려 있다. 노래는 백 년이 지나도록 불리고, 정작 그 노래를 만든 사람의 마지막 순간은 지금도 확인되지 않는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 이 시간, 10시 10분
1926년 8월 21일을 만납니다.
“내일도 1926년의 하루를 함께 걷겠습니다.”
어제의 이야기
1926년 8월 19일
10:10
내일의 이야기
1926년 8월 21일
The Korean Today
global@thekoreantoday.com
매일 오전 10시 10분, 100년 전 오늘을 전합니다
코리안투데이 “100년 전 오늘” 시리즈
매일 오전 10시 10분 발행
© 2026 The Korean Today. All rights reserved.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THE KOREAN TODAY × WIA CODE
이 기사의 WIA Code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사실과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기본 카메라로 찍으면 스캐너 안내 페이지가 열립니다 — 기사 바로 열기
움직이는 코드는 스트림입니다 — WIA Code 스캐너로 약 135초 비추면 기사 전문(사진 포함)이 폰에 저장되어 인터넷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WIA Code · 코리안투데이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