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8월 25일 수요일 · 오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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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처서 지난 바람이 슬쩍 스며들던 수요일 아침, 경성 사람들은 조간 신문을 펼쳐 들었다. 1면 맨 위엔 「군벌의 중국과 인민의 중국」이라는 큼직한 제목이 박혀 있었다[1]. 사흘 전엔 신문사 논설위원이 붙잡혀갔고, 태평양 건너 뉴욕에서는 한 배우의 관 앞에 밤새 줄이 늘어섰다는 소식도 함께 실렸다. 세상은 저마다의 이유로 술렁이고 있었다.

그날의 경성
이날 동아일보 1면은 「군벌의 중국과 인민의 중국」이라는 논설로 시작했다[1]. 총을 든 군벌과 그 총부리 앞에 선 사람들 — 신문은 중국 정세를 이렇게 갈라 보여주며, 힘으로 다스리는 세상과 사람이 다스리는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 에둘러 물었다. 조선 독자들이 이 글에서 무엇을 읽어냈을지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짐작할 만했다.
이 논설이 실리기 사흘 전인 8월 22일, 같은 신문 한구석의 짧은 칼럼 〈횡설수설〉 한 줄이 화근이 되었다. 집필자 최원순은 〈보안법〉 위반으로, 편집 겸 발행인 김철중은 〈신문지법〉 위반으로 붙잡혀갔다[2]. 두 사람은 이날도 여전히 재판을 기다리는 몸이었다. 훗날 9월 8일 경성지방법원 법정에 서게 될 그들을, 이 수요일의 신문은 말없이 대신 말하고 있었다. 같은 해 3월에도 이 신문은 국제농민조합이 보낸 삼일절 기념 전보를 실었다는 이유로 무기정간을 당한 적이 있었다[2]. 붓 하나로 먹고사는 이들에게, 1926년의 여름은 유난히 가시밭길이었다.

경성과 한반도
필화는 경성 한 곳의 일로 끝나지 않았다. 석 달이 채 안 된 6월 10일, 순종의 인산 행렬이 종로를 지날 때 중앙고보 학생 300여 명이 만세를 부르며 격문을 뿌렸고[3], 그날 하루에만 전국에서 천여 명이 경찰에 붙들려갔다. 조선총독부는 서울에만 경찰과 군인 7천여 명을 풀어 이를 막아섰다[3]. 두 달 넘게 지난 이 수요일에도 취조와 구금은 이어지고 있었고, 신문 지면에 실리는 글 한 줄까지 감시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말을 삼가야 하는 시절, 사람들은 행간을 읽는 법을 익혀가고 있었다.

그날의 세계
같은 시각 뉴욕에서는 전혀 다른 이유로 인파가 밀려들고 있었다. 이틀 전 세상을 떠난 은막의 스타 루돌프 발렌티노의 관이 캠벨 장례식장에 놓였고, 조문객이 한꺼번에 몰려 유리창이 깨지는 소동까지 벌어졌다[4]. 바로 이 수요일, 장례식장 측은 줄을 더 원활히 관리하려고 시신을 2층에서 1층으로 옮겼다[4]. 무솔리니가 보냈다고 소문난 파시스트 의장대 넷이 관 옆을 지켰지만, 실은 장례식장의 홍보 담당자가 고용한 이들이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사흘 전 웨저우의 양쯔강 항구를 점령하며 후난성 전체를 손에 넣었다[5]. 우창으로 가는 길이 열린 셈이었다. 그리스에서도 사흘 전 무혈 쿠데타로 독재자 팡갈로스가 쫓겨나 군함에 실려 갔다[6]. 총과 관과 배 — 이 수요일, 세계 각지에서는 저마다 다른 무게의 사건이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경성 24시
새벽녘, 종로 인쇄소에서는 이날치 신문을 찍어내느라 기계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아침나절엔 신문팔이 소년들이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며 「군벌의 중국」이 실린 조간을 돌렸다. 한낮, 경성지방법원 앞을 지나던 이들은 걸음을 늦추고 게시판을 살폈다 — 혹시나 필화사건 소식이 붙어 있을까 해서였다. 저물녘엔 극장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무성영화 간판 아래, 변사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검열을 통과한 필름만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어두운 극장 안에서만큼은 잠시 다른 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법정 근처 다방에서는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목소리를 낮췄다. 신문 한 줄에 사람이 잡혀가는 시절, 말을 아끼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100년의 거울
| 1926년 8월 25일 | 2026년 오늘 | |
|---|---|---|
| 법제도 | 보안법·신문지법으로 칼럼 한 줄도 기소 대상[2] | 언론·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 |
| 문화생활 | 변사가 목소리를 입히는 무성영화, 검열 통과 필름만 상영 |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전 세계 콘텐츠 실시간 시청 |
| 대중의 애도 | 바다 건너 스타의 부고가 신문 한 귀퉁이로 전해지기까지 며칠 | 사망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동시 전파 |
글 한 줄에 사람이 잡혀가던 시절과, 누구나 마음껏 글을 쓰는 지금 사이에는 딱 100년이 놓여 있다. 그 100년은 저절로 온 것이 아니라, 이 수요일의 최원순과 김철중 같은 이들이 몸으로 값을 치르며 벌어낸 시간이었다.

내일, 1926년 8월 26일 목요일의 경성에서는 또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요.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1] 동아일보 1926.8.25. 1면 「軍閥의 中國과 人民의 中國」(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근대사료DB, db.history.go.kr) · [2] 동아일보 필화사건, 1926.8.22 「횡설수설」 관련 최원순·김철중 기소(우리역사넷 「사법처분」) · [3] 6·10만세운동(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역사넷) · [4] Campbell’s Funeral Church 발렌티노 조문 소동, 1926.8.24-25(History.com 외 당대 보도) · [5] 국민혁명군 북벌, 1926.8.22 웨저우 점령(위키백과 「북벌(국민당)」) · [6] 그리스 팡갈로스 실각, 1926.8.22(위키백과 「August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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