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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 명작선-11] 여름 몰래 받아 든 가을의 연서

문창진 시인의 「밀회」

기사입력 기사번호 56579

온통 초록인 나무 사이에 노란 잎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계절 전체가 아직 여름의 편에 서 있는데, 이 작은 잎만 슬쩍 다른 소식을 품고 있다. 문창진 시인은 그 미세한 변화를 가을이 보내온 ‘연서’로 받아 읽는다.

[코리안투데이] 문창진 시인의 「밀회」  © 장시백 기자

“가을이 보내온 연서 / 등 뒤에 감추었다”

사진 속 노란 잎 하나가 이 두 행을 만나면서 사랑의 편지가 된다. 초록 잎들이 가득한 가운데 홀로 색을 바꾼 잎은 다가올 계절을 알리는 징표이면서, 아직 아무에게도 들켜서는 안 될 비밀처럼 보인다. 굵은 나무줄기를 사람의 등으로 바꿔 읽은 “등 뒤에 감추었다”는 표현도 사진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이어지는 “심술보 여름에겐 / 시치미 떼야겠다”에서 작품의 표정이 확 살아난다. 여름과 가을이라는 계절에 질투와 연애의 감정을 입히면서 한 장의 노란 잎을 둘러싼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여름은 아직 물러날 생각이 없고, 가을은 벌써 몰래 연서를 보내왔다. 그 사이에서 나무는 편지를 감춰 둔 연인이 된다.

특히 ‘심술보’와 ‘시치미 떼다’라는 익숙한 우리말이 작품에 능청스러운 말맛을 더한다. 자칫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가을의 이미지를 유머로 받아내면서 시가 가볍고 생생해졌다. 짧은 네 행 안에서 계절의 변화가 한 편의 연애담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제목 「밀회」는 이 작품을 완성하는 마지막 장치다. 노란 잎 하나를 발견했을 때는 단순한 계절의 징후에 불과하지만, 제목을 읽고 다시 사진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름의 눈을 피해 가을과 나무가 몰래 주고받는 마음, 바로 그 은밀한 만남이 사진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사진에서 발견한 작은 변화를 언어로 설명하지 않고 ‘연서’와 ‘밀회’라는 새로운 서사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 이 작품의 힘이다. 아직 초록이 가득한 날, 남들보다 먼저 도착한 노란 잎 한 장. 문창진 시인의 「밀회」는 계절이 바뀌는 찰나를 사랑의 비밀처럼 재치 있게 붙잡아낸 디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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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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