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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선] 같은 꽃, 다른 시선

원서정 시인의 「꿈꾸는 나팔꽃」과 김우영 시인의 「놓는 법」

기사입력 기사번호 58402

나팔꽃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꽃입니다. 여름이면 담장이나 울타리를 타고 오르고, 이른 아침 활짝 피었다가 한낮이 가까워지면 서서히 꽃잎을 오므립니다. 화려한 꽃밭 한가운데서 주목받기보다 담벼락이나 철망, 나무줄기 같은 것에 몸을 기대고 자라는 모습도 친숙합니다.

가느다란 줄기로 무엇인가를 꼭 붙잡고 위로 오르는 꽃. 아침이면 어김없이 얼굴을 내미는 꽃. 그래서 나팔꽃을 바라보면 밝고 부지런한 아침이 떠오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같은 꽃을 보더라도 무엇을 먼저 바라보느냐에 따라 시는 전혀 다른 곳으로 갑니다. 원서정 시인의 「꿈꾸는 나팔꽃」과 김우영 시인의 사진시 「놓는 법」이 그렇습니다.

원서정 시인의 「꿈꾸는 나팔꽃」 속 나팔꽃은 가만히 피어 있는 꽃이 아닙니다.

[코리안투데이] 원서정 시인의 「꿈꾸는 나팔꽃」  © 장시백 기자

“보라색 주름치마 입고

바람 손 꼭 잡고 빙그르르”

꽃잎은 ‘보라색 주름치마’가 되고, 바람은 손을 잡고 함께 춤추는 친구가 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의 움직임을 ‘빙그르르’라는 말 하나로 살려 놓으니 눈앞에 작은 무대가 펼쳐지는 듯합니다.

“풍경소리에 발맞춰

한발 두발 앞으로 다시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바람에 흔들리는 나팔꽃과 나뭇잎의 모습을 춤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재미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꽃이 흔들리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러나 그 흔들림에서 치맛자락을 입은 아이의 춤을 발견하는 순간 평범한 풍경은 한 편의 동화가 됩니다.

특히 이 시의 매력은 마지막에 있습니다.

“잠에서 깬 나팔꽃

화들짝 놀랐어요

지각이에요

늦었지만 괜찮아요

참 재미있었거든요”

늦게 피어난 나팔꽃을 두고 시인은 서두르거나 나무라지 않습니다. ‘늦었지만 괜찮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즐거운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조금 늦었다고 해서 그 시간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듯합니다.

우리는 늘 제시간에 도착해야 하고, 남보다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괜찮아요”라는 짧은 말이 오히려 다정하게 다가옵니다. 조금 늦게 피어도 꽃은 꽃입니다. 자기 시간이 왔을 때 피어나면 됩니다.

김우영 시인의 사진시 「놓는 법」은 같은 나팔꽃을 전혀 다른 자리에서 바라봅니다.

[코리안투데이] 김우영 시인의 「놓는 법」  © 장시백 기자

사진 속 나팔꽃은 철제 구조물을 단단히 감고 올라가 있습니다. 시인은 그 모습을 꽃의 생태로만 보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연결합니다.

“말아 올린 가느다란 손가락

쉽게 믿는 법을 배운 덕분에

혼자서는 어디에도 설 수 없다”

덩굴손처럼 무엇인가를 감고 올라가는 나팔꽃의 모습이 ‘가느다란 손가락’이 됩니다. 나팔꽃은 무엇인가에 기대야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기대는 것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익숙한 모습을 한 번 뒤집어 봅니다.

“한번 기대는 법을 익힌 뒤로

제 몸을 세우기보다

붙드는 일이 먼저다”

여기서부터 꽃의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로 가까워집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도움이 필요해서 손을 잡습니다. 누군가를 믿고, 기대고, 의지하면서 힘든 시간을 건너기도 합니다. 그렇게 서로 기대는 것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붙잡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없으면 서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너무 오래 믿어온 탓에

놓는 법을 잊었다”

라는 구절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붙잡는 법을 배우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힘들 때 내미는 손 하나를 잡으면 되니까요. 그러나 한때 나를 지탱해 주었던 것을 놓는 일은 훨씬 어렵습니다. 사람일 수도 있고, 지난 기억일 수도 있으며, 익숙한 생활이나 미련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더 조용합니다.

“오늘도

감긴 몸을 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아침을 기다린다”

꽃은 분명 살아 있고 아침도 다시 옵니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무엇인가에 감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기대지 말라’고 말하는 시라기보다, 지금 내가 너무 오래 붙들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하는 시에 가깝습니다.

한 송이 나팔꽃을 두고 원서정 시인은 ‘늦게 피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김우영 시인은 ‘때로는 놓는 법도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한쪽에서는 바람과 손을 잡고 신나게 춤을 추고, 다른 한쪽에서는 무엇인가를 꼭 감은 채 아침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삶에도 두 나팔꽃이 모두 있을 것입니다.

남들보다 늦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한 날에는 “늦었지만 괜찮아요”라고 자신에게 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오래 무엇인가를 붙들고 있어 마음까지 꼼짝하지 못하는 날에는 꼭 쥐고 있던 손에 조금 힘을 빼보아도 좋겠습니다.

늦게 피는 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이고, 붙잡았던 것을 놓는 것도 다시 살아가기 위한 한 방법일 테니까요.

같은 나팔꽃 한 송이도 바라보는 눈에 따라 이렇게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어쩌면 시를 읽는다는 것은 꽃을 새롭게 보는 일이 아니라, 그 꽃을 통해 지금의 나를 다시 한번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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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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