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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선] 기억에도 주소가 있다면

김우영 시인의 「21」

기사입력 기사번호 57942

“평생 식구들 밥을 짓던 어머니”

시의 첫 문장은 한 사람의 긴 세월을 짧게 품고 있습니다.

밥을 짓는다는 것은 끼니를 마련하는 일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누가 일찍 나가는지, 누가 늦게 들어오는지, 누가 아픈지, 누가 밥을 거르는지 살피는 일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밥상도 달라졌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그 몫의 밥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오랫동안 식구들의 하루를 챙겨 왔습니다.

[코리안투데이] 김우영 시인의 「21」  © 장시백 기자

그런 어머니가 이제

“계절을 모르고

밥때를 잊으셨다”

고 합니다.

평생 식구들의 밥때를 챙기며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밥때를 놓칩니다. 철마다 달라지는 밥상을 마련하던 사람이 계절을 잊습니다.

삶의 순서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팔에도

허벅지에도

수첩에도”

어머니는 숫자를 적습니다.

시인은 그 숫자를

“돌아오려고 적어 둔 숫자”

라고 말합니다.

이 한 구절 앞에서 어머니의 지난 시간이 겹쳐 보입니다.

누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늘 어머니의 몫이었을 것입니다. 늦는 식구의 밥을 남겨 두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다 돌아와야 비로소 하루를 내려놓았을 사람.

그런 어머니가 이제는 자신이 돌아오기 위해 숫자를 적습니다.

기다리던 사람이 돌아와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집 안의 풍경도 달라집니다.

“서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동안

식탁은 자주 비었다”

시인은 왜 목소리가 높아졌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시간 동안 식탁이 비었다고 적습니다.

그 빈 식탁이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어머니가 평생 채워 온 것은 밥그릇만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서운한 날에도 한자리에 앉게 하고, 말이 없어도 같은 밥을 먹게 하며, 흩어진 식구들을 다시 모이게 하던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가 이제 비어 갑니다.

목소리는 높아졌는데 함께 앉는 사람은 줄어들고, 어머니의 기억이 하나씩 흐려지는 동안 식탁의 온기도 조금씩 식어 갑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을 떠올리게 됩니다.

때가 되면 밥을 차리던 사람.

먹었느냐고 묻던 사람.

늦으면 기다리던 사람.

서먹해진 식구들 사이에서도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하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있을 때는 그 일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모릅니다. 늘 있던 밥상이고, 늘 듣던 말이고, 늘 기다려 주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자리가 조금씩 비기 시작하면, 비로소 알게 됩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어 주고 있었는지를.

“어머니는 자꾸 잊었고

자꾸 적었다”

잊는 일과 적는 일이 나란히 놓입니다.

기억은 자꾸 빠져나가는데 어머니는 그만큼 더 붙잡으려 합니다.

그리고 끝에는

“21층”

이 남습니다.

한때 어머니의 기억 속에는 식구들의 수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얼굴과 이름, 생일과 전화번호, 좋아하는 음식과 돌아오는 시간까지.

그 많던 것들 사이에서 이제 어머니가 놓치지 않으려 붙드는 것은 돌아갈 집의 숫자입니다.

평생 식구들이 돌아올 곳을 지켜 온 사람이,

이제 자신이 돌아갈 곳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한때 우리는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밥 냄새가 나고, 내 자리가 남아 있고, 늦어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는 곳. 그래서 집은 주소보다 먼저 어머니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21’을 적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는 뒤늦게 깨닫습니다.

어머니가 조금씩 잊어 가는 동안,

우리는 어머니가 평생 지켜 온 자리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는 것을.

기억에도 주소가 있다면 어머니에게는 21층이겠지만,

우리에게 어머니의 주소는 어쩌면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 식구들의 자리가 모두 차 있고,

어머니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밥그릇을 바라보던

그 식탁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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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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