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 저녁, 강화도 길상면의 한 민박집 마당에 저는 앉아 있었습니다. 평상 위에 놓인 낡은 노트북 화면에는 같은 문장이 사흘째 떠 있었습니다. 민박 주인은 손님방 소개 글 한 줄을 쓰다 지우다 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게 뭐가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사진은 예쁘게 찍었는데 말로 옮기려니까 자꾸 막혀요.” 마당 한켠에서는 감나무 이파리가 가로등 불빛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 [코리안투데이] 노트북 앞에서 소개글 고치는 민박 주인 © 장형임 칼럼니스트 |
주인은 그 소개 글을 벌써 여러 번 고쳤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방”이라고 썼다가 너무 흔한 것 같아 지웠고, 다음에는 집 마당에서 키우는 상추와 아침에 우는 닭 이야기를 써 봤지만 이번에는 너무 장황한 것 같아 다시 지웠습니다. 노트북 옆에는 다른 민박집들의 소개 페이지를 인쇄한 종이가 몇 장 놓여 있었습니다. 좋은 문장이다 싶으면 옮겨 적어 보았지만, 자기 집 이야기가 아니니 읽을수록 겉도는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몇 마디 거들어 보았습니다. 마당에서 자는 고양이 이름, 손님이 물었던 질문, 저녁에 마루에 앉아 있으면 들리는 소리 같은 것들을 물었습니다. 주인은 그제야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습니다. 정작 어려운 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말을 화면 위의 몇 줄로 옮기는 그 짧은 구간이었던 셈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글쓰기를 도와주는 기계,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먼저 이 섬에 와야 하는 이유를 생각했습니다. 그 기계가 할 일은 주인을 대신해 근사한 문장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주인이 이미 하고 있는 말, 마당의 고양이와 상추와 닭 울음소리를 옆에서 받아 적고 다듬어 주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낯선 손님 앞에 처음으로 그 목소리를 꺼내 놓을 수 있도록 거들어 주는 것입니다.
강화도의 작은 가게나 민박집 주인들을 만나 보면 비슷한 벽 앞에서 멈춰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맛도 있고 자랑할 이야기도 많은데, 그것을 낯선 사람이 읽을 온라인 화면 위의 문장으로 바꾸는 순간부터 며칠씩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이 섬에 정말 먼저 필요한 것은 빠른 인터넷 회선보다, 이런 순간에 곁에서 말을 거들어 줄 조용한 도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뒤 다시 그 민박집에 들렀을 때, 주인은 마당 평상에서 웃으며 저를 맞았습니다. 결국 소개 글은 고양이 이야기로 시작해서 닭 울음소리로 끝나는, 처음 저에게 들려주었던 그 말 그대로였습니다. “손님이 방을 보고 왔는데, 여기 마당 이야기가 좋아서 왔대요.” 주인은 그 말을 전하며 조금 겸연쩍은 듯 웃었습니다.
저는 그 웃음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자주 이런 순간을 그냥 지나쳐 왔는지 생각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옮길 몇 줄 앞에서 며칠씩 머뭇거린 적, 여러분에게도 있으신가요.
거창한 기계가 아니어도 됩니다. 마당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 주고 그 말을 몇 줄로 옮겨 주는 도구 하나가, 소개 글 한 줄을 쓰지 못해 손님을 놓치던 섬의 작은 방들을 조금씩 열어 줄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다음에 그 민박집을 지날 때는 마당의 고양이도 한번 만나 보려 합니다.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기록은 제가 강화에서 쓰고 만든 책과 서비스에도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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