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0] 서량의 말발굽
4월 · 다 버린 밤 | 약 3분 읽기

허도(許都)에 닿은 이튿날 아침, 한 장의 전갈이 서쪽에서 올라왔다. 동쪽 창에서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시각이었다. 승상부 뜰의 참새 두어 마리가 어제 떨어진 배롱나무 꽃잎을 번갈아 쪼고 있었다.
올라온 사람은 서량(西涼)의 장안(長安) 변계에서 왔다. 말의 네 다리가 먼지에 덮여 있었다. 전갈의 내용은 짧았다. 서량 태수 마등(馬騰)이 지난 한 달 동안 병사를 두 차례 새로 모으고, 두 아들 마초(馬超)·마휴(馬休)와 조카 마대(馬岱)를 각기 세 군(郡)에 나누어 세웠다.
“천자께 반기를 든 것은 아닙니다.” 전령이 두 손을 모았다. “다만, 말을 다시 고르고 있사옵니다.”
조조(曹操)는 한참 동안 서쪽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이 막 뜰의 배롱나무 꽃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그 붉은 꽃 위에, 곽가(郭嘉)의 관이 어제까지 놓여 있었다. 오늘 새벽, 관은 이미 서쪽 능으로 옮겨졌다.
조조는 순욱(荀彧)을 본영에 불렀다.
두루마리를 책상 위에 다시 폈다. 어제 붓으로 동그라미를 둘러 둔 네 이름이 그대로 있었다. 오른쪽 두 번째에, 서량(西涼)·마등(馬騰) 네 글자가 있었다.
“문약(文若). 봉효가 이 이름을 내게 말했네.”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자기 자리에 두지 말라 하였네. 자기 자리에서는 호랑이이지만, 허도의 자리에 불러 앉히면 한 자루의 마른 장작이 된다고.”
순욱이 두 손을 모았다.
“승상, 그 말을 오늘 다시 무겁게 받아두시옵소서. 지금은 아직, 서량 마등이 자기 자리에서 말을 고르고 있을 뿐입니다. 고삐를 쥔 손끝이 어느 방향을 향할지, 본인도 모르는 자리입니다.”
“그를 허도로 부르는 박자를, 오늘은 미루자는 것이로군.”
“그러하옵니다. 그 박자는, 두 해 뒤에 더 크게 필요한 자리가 있을 것이옵니다.”
조조는 오래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붓을 들어, 두루마리 위의 “마등” 두 글자 아래에 작게 한 줄을 덧썼다.
待時(때를 기다리다)
그 두 글자를 읽고, 다시 읽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소리가 들릴 만큼 작게 낭독했다. 순욱도 그 두 글자를 따라 읽었다.
“봉효의 박자 안쪽에, 그 두 글자가 이미 들어 있었을 것이옵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오 무렵, 서량 쪽의 풍문 한 자락이 다시 승상부에 들어왔다.
마등의 맏아들 마초(馬超)가, 스물둘 나이에 이미 아버지의 선봉을 맡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키가 아홉 자 가까이 된다고 했다. 얼굴이 흰 옥과 같고, 입술이 붉게 물들어, 서량의 병사들이 그를 “면옥장군(面玉將軍)”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말을 타면 말과 한몸이 된다고도 했다.
순욱이 그 풍문을 조조에게 전했다.
“얼굴이 흰 옥 같다라…”
조조가 짧게 웃었다. 그 웃음 안쪽에는 감탄과 경계가 반씩 섞여 있었다.
“봉효가 살아 있었다면, 이 이름도 동그라미 안에 넣었을 것이야.”
조조는 그날 오후, 두루마리의 “마등” 옆에 “마초(馬超)” 세 글자를 더 적어 넣었다. 아래에는 한 줄을 덧붙였다.
待面(얼굴을 보기를 기다리다)
그 세 글자를 다시 읽었다. 두루마리 위에는 이제 다섯 이름이 있었다. 유비(劉備)·유표(劉表)·손권(孫權)·마등(馬騰)·마초(馬超).
승상부의 서쪽 창 너머, 오후의 빛이 길게 누웠다. 마당의 배롱나무 꽃 한 송이가 바람에 떨어졌다. 조조는 그 떨어진 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봉효의 자리는 아직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그 자리 곁에, 오늘은 다섯 이름이 나란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서쪽 하늘 끝에서, 서량의 아침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마등(馬騰)은 그의 마구간 안쪽에서, 네 살 먹은 어린 말 한 마리의 앞다리를 손수 천천히 쓸어 주고 있었다. 말은 아직 이름이 없었다. 아들 마초(馬超)는 그 마구간의 문턱에 서서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물둘 마초의 눈 안쪽에는, 아버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 자락의 먼 하늘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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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
떠난 사람이 남긴 한 줄의 이름 아래에, 자기 손으로 “때를 기다린다(待時)”고 덧써 두는 날이 있지요. 그 두 글자 안쪽에서, 급하게 치달리지 않는 한 결이 길러집니다. 우리도 때때로, 내 곁의 중요한 이름 아래에 “오늘은 아직 아니다”를 써 두어야 하는 자리가 있지 않을까요. 그 “아직 아니다”가, 먼 훗날을 더 깊게 만들어 주는 자리이옵니다. “아직 아니다”와 “영영 아니다” 사이에, 사람의 대부분의 결의가 살지요. 오늘 당신이 고르시는 자리는, 그 둘 사이의 어느 쪽에 가깝사옵니까. 고르시는 일 자체가, 이미 한 결의이기도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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