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 네 시쯤, 저는 강화 남쪽 갯벌 초입에 서 있었습니다. 물이 막 빠져나가는 참이라 뻘은 아직 젖은 빛이었고, 바람은 여름 끝자락처럼 미지근했습니다. 멀리서 허리를 굽힌 할머니 한 분이 호미로 뻘을 긁고 계셨습니다. 제가 다가가 인사를 드리자 할머니는 고개도 들지 않고 “오늘은 두 시간밖에 못 해” 하셨습니다. 왜 그러시냐 여쭈니 “물이 일찍 들어와” 하시며 손목을 털어 뻘을 떨어내셨습니다. 저는 그 짧은 대답 앞에서, 오늘 쓰려던 글의 첫 문장을 그만 잊어버렸습니다.
![]() [코리안투데이] 물 빠진 강화 갯벌과 호미 자국 © 장형임 칼럼니스트 |
원래 저는 인공지능이 바닷가를 얼마나 잘 살피게 되었는지 쓰려고 했습니다. 물때를 미리 알려주는 앱, 수온을 재는 장치, 어디에 무엇이 사는지 자동으로 가려내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 말입니다. 실제로 제 휴대전화에도 물때를 알려주는 화면이 하나 깔려 있고, 저는 그것을 꽤 신뢰하는 편입니다. 기계가 사람보다 바다를 먼저 읽는다는 이야기가 저는 내심 반가웠고, 칼럼 제목까지 정해 두고 강화 남단으로 내려간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할머니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동안, 제가 믿고 있던 것이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앱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뻘에 남은 물자국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까지 젖었으면 오늘은 저쪽이 무르다” 하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아시느냐고 여쭈니 “사십 년을 봤으니까” 하고 웃으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수첩에 옮겨 적으면서, 이건 예측이 아니라 기억이구나 싶었습니다. 기계는 내일을 계산하지만, 할머니는 지나온 날들을 겹쳐서 오늘을 보고 계셨습니다.
며칠 뒤 마을 이장님을 만나 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장님은 “예보는 요새 잘 맞아요” 하시더니 곧 덧붙이셨습니다. “그런데 뻘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져요. 그건 아무 데도 안 적혀 있지.” 마을 앞 물길이 예전과 다르게 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몇 마디가 오래 걸렸습니다.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여기 계시는데, 그 앎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제가 아는 한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는 일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는 것입니다. 바둑에서 사람을 앞질렀다는 이야기는 이제 오래된 소식이 되었지만, 저에게 더 쓸모 있어 보이는 쪽은 사람이 흘려보내는 말과 장면을 성실하게 받아 적는 능력입니다. 누가 어느 계절에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해에는 어느 자리가 무르고 어느 자리가 단단했는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 것은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 아무도 적어 두지 않고, 적히지 않아서 조용히 사라집니다. 저는 이 능력이 자랑거리로는 좀처럼 쓰이지 않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제가 묵었던 민박 주인은 저녁상을 놓으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전엔 저 앞에 새가 새까맣게 앉았어요. 요즘은 그만큼은 아니고.” 그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국그릇을 제 쪽으로 밀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어디에 적어야 할지 몰라 휴대전화 메모장에 옮겨 두었습니다. 그날 밤, 이런 문장을 받아 두는 일이야말로 제가 기술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작은 일을 하나 시작했습니다. 강화에서 만난 분들의 말을 녹음하고, 풀어서 날짜와 장소를 붙여 두는 일입니다. 어르신들은 처음엔 녹음기를 어색해하시다가, 이내 제 쪽은 보지도 않고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인공지능은 제가 놓친 말을 문장으로 정리해 주고, 비슷한 이야기끼리 조용히 묶어 줍니다. 거창한 연구도 아니고 누가 시킨 일도 아닙니다. 다만 먼 훗날 누군가 이 갯벌을 궁금해할 때, 숫자 말고 목소리가 남아 있었으면 해서입니다.
기술이 자연을 이기는 이야기는 언제나 더 재미있습니다. 저는 요즘 그 재미를 조금 미뤄 두고 있습니다. 오래 남는 쪽은, 누군가의 사십 년을 조심스럽게 옮겨 적은 한 문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곁에도 아직 아무도 받아 적지 않은 이야기가 있지 않으신가요? 그 이야기는 누가, 언제쯤 남겨 두면 좋을까요?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허리를 펴고 바구니를 챙기셨습니다. 바구니 안에는 조개가 절반쯤 차 있었습니다. 돌아서며 “낼도 두 시간이야”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도 받아 적었습니다. 그리고 뻘에 찍힌 발자국이 밀려온 물에 천천히 지워지는 것을 한참 보고 서 있었습니다. 이기지는 못해도 괜찮으니, 오래 남기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기록은 제가 강화에서 쓰고 만든 책과 서비스에도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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