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미희 칼럼니스트

숨이 얕아진 줄도 모르고 지나온 날들
마음이 바쁘고 긴장이 이어지면 몸이 먼저 그 사실을 압니다. 어깨가 조금씩 귀 쪽으로 올라가고, 턱에 힘이 들어가고, 숨은 가슴 위쪽에서만 짧게 오가기 쉽습니다. 무언가에 대비하며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사람의 몸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움츠러듭니다. 그래서 돌보는 사람은 자신이 숨을 얕게 쉬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병원 대기실에서 번호표를 쥐고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던 시간, 새벽에 부모님 방에서 들려온 작은 기척에 벌떡 일어나던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그때 내 몸은 어땠는지 기억나시나요. 저 역시 부모님을 돌보던 시절, 하루를 마치고 의자에 앉았을 때에야 비로소 어깨가 돌처럼 굳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곤 했습니다. 긴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올 때, 그제야 내가 하루 종일 숨을 참듯 살았구나 싶었지요.
그래서 이완호흡의 첫걸음은 무언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지금 내 숨이 어디쯤에서 오가는지, 어깨가 올라가 있지는 않은지 잠깐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입니다. 고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아, 내가 지금 이렇게 숨 쉬고 있구나’ 하고 바라봐 주는 것, 그것이 나를 돌보는 일의 문을 여는 순간입니다.
왜 하필 5분일까요
돌봄을 하는 분들께 ‘자기 자신을 돌보세요’라는 말은 때로 부담이 됩니다. 한 시간씩 운동을 하거나 따로 시간을 내어 어딘가를 다녀오는 일은 마음은 있어도 현실에서는 쉽지 않으니까요.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나는 느낌이 들면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늘 ‘짧게, 그러나 자주’를 권합니다.
5분은 생각보다 많은 틈에 숨어 있습니다. 주전자에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부모님이 낮잠에 드신 뒤 설거지를 시작하기 전, 아침에 커튼을 걷고 창가에 잠시 서 있는 시간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대신 숨에 마음을 두어 보는 것입니다. 거창한 준비 없이도 지금 앉은 자리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호흡의 가장 큰 장점이지요.
요령은 이미 하고 있는 일에 살며시 붙여 두는 것입니다. ‘아침 약을 챙겨 드린 다음’, ‘커피 물을 올린 다음’처럼 하루의 정해진 순간 뒤에 숨 쉬는 시간을 이어 두면 따로 기억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1분만 해도 좋습니다. 하다 보면 그 짧은 시간이 하루를 버티게 하는 작은 쉼표가 되어 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내쉬는 숨을 조금 더 길게
이완호흡이라고 하면 무언가 어려운 기술이 필요할 것 같지만, 핵심은 단순합니다. 들이쉬는 숨보다 내쉬는 숨을 조금 더 길고 느리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숨을 천천히 길게 내쉴 때 몸에서 힘이 빠지고 마음이 한결 느긋해지는 느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지쳤을 때 저도 모르게 ‘후우’ 하고 긴 한숨을 쉬는 것도 어쩌면 몸이 스스로 찾아가는 쉼의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부모님과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다 결국 목소리가 높아지고, 방을 나와 부엌에 섰을 때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끝이 떨리는 순간 말입니다. 미안함과 서운함이 한꺼번에 밀려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때가 바로 숨을 쉬어야 할 때입니다. 다시 방에 들어가기 전, 내쉬는 숨 몇 번이 나와 부모님 사이에 작은 완충지대를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코로 넷을 세며 편안하게 들이쉬고, 입을 살짝 오므려 여섯을 세며 천천히 내쉽니다. 숫자는 정답이 아니니 나에게 편한 길이로 바꾸어도 됩니다. 중요한 건 숨을 억지로 크게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내쉬는 숨을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마치 촛불을 끄지 않을 만큼 살살 부는 느낌으로요.
창가의 방석 하나, 나만의 자리
숨 쉬는 시간을 오래 이어 가려면 마음이 쉬어 갈 자리가 있으면 좋습니다. 꼭 넓은 공간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아침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방석 하나, 그 곁에 작은 화분 하나면 충분합니다. 몸은 익숙한 자리에 앉으면 ‘이제 쉬어도 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조금씩 기억하게 됩니다.
돌봄을 하다 보면 집 안의 모든 공간이 ‘일하는 곳’이 되기 쉽습니다. 부엌은 식사를 준비하는 곳, 거실은 부모님 곁을 지키는 곳, 안방조차 언제든 깨어야 하는 곳이 되지요. 그래서 단 한 뼘이라도 오롯이 나를 위한 자리를 정해 두는 일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방석 위에 앉는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보호자가 아니라 그저 숨 쉬는 한 사람으로 머무르는 겁니다.
좋아하는 향이 있다면 함께해도 좋습니다. 손수건이나 티슈에 라벤더나 오렌지처럼 평소 편안하게 느껴지는 에센셜 오일을 한 방울 떨어뜨려 곁에 두고, 숨을 들이쉴 때 은은하게 맡아 보세요. 향은 기분을 다독이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도록 도와주는 작은 신호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오일을 피부에 직접 바르거나 코에 너무 가까이 대지 말고, 향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날엔 과감히 빼도 괜찮습니다.
잘 안 되는 날에도 괜찮습니다
막상 앉아서 숨에 집중하려 하면 오히려 온갖 생각이 밀려듭니다. 오늘 병원 예약이 몇 시였더라, 반찬은 뭘 하지, 형제들에게 연락은 언제 하지. 그러다 보면 ‘나는 이것도 제대로 못 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이 떠오르는 건 실패가 아니라 그만큼 마음이 바빴다는 뜻일 뿐입니다.
어떤 날은 방석에 앉자마자 부모님이 부르실 수도 있고, 어떤 날은 5분은커녕 1분도 낼 수 없을 만큼 정신없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돌봄의 하루는 원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요. 그런 날에는 부모님 방으로 걸어가는 몇 걸음 동안 숨 한 번만 길게 내쉬어도 충분합니다. 한 번의 숨도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생각이 흩어질 때는 그 생각을 붙잡으려 하지 말고, 구름이 지나가듯 바라본 뒤 다시 숨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돌아오는 그 순간이 바로 연습입니다. 잘하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수록 숨은 더 편안해집니다. 나를 돌보는 일에서까지 나를 채점하지 않기로, 오늘 함께 약속해 보면 어떨까요.
오늘의 마음돌봄 실천
★☆☆【오늘 바로 · 앉은 자리에서 숨 세 번】 ① 의자나 방석에 편하게 앉아 두 발을 바닥에 붙입니다. ② 두 손을 무릎 위에 가볍게 올려놓고, 어깨를 귀 쪽으로 한 번 끌어올렸다가 ‘툭’ 하고 내려놓습니다. ③ 코로 넷을 세며 천천히 들이쉽니다. ④ 입을 살짝 오므리고 여섯을 세며 길게 내쉽니다. ⑤ 이렇게 세 번만 반복합니다. 내쉬는 숨을 길게 하면 몸에 들어간 힘을 알아차리고 풀어 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한 걸음 더 · 배에 손을 얹고 5분】 ① 아침에 창가 방석에 앉거나 등받이 있는 의자에 기대어 앉습니다. ② 한 손은 가슴에, 다른 한 손은 배꼽 위에 올립니다. ③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배 위의 손이 살며시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껴 봅니다. ④ 입으로 길게 내쉬며 배가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느낍니다. ⑤ 이것을 5분 동안, 휴대전화 타이머를 맞춰 두고 편안히 반복합니다. 손으로 숨의 움직임을 느끼면 흩어진 마음이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여유가 될 때 · 향과 함께하는 나만의 아침 의식】 ① 창가에 방석과 작은 화분을 두어 ‘나의 자리’를 만듭니다. ② 티슈에 좋아하는 에센셜 오일을 한 방울 떨어뜨려 손이 닿는 곳에 둡니다(피부에 직접 바르지 않아요). ③ 자리에 앉아 창밖의 빛이나 화분의 잎을 잠시 바라봅니다. ④ 들이쉬는 숨에 은은한 향을 느끼고, 내쉬는 숨에 ‘괜찮아’ 하고 속으로 말해 봅니다. ⑤ 5분이 지나면 두 손을 비벼 따뜻하게 한 뒤 얼굴을 감싸고, 천천히 눈을 뜹니다. 매일 같은 자리, 같은 순서로 하면 몸이 그 시간을 쉼의 신호로 기억하게 되어 하루를 여는 작은 버팀목이 될 수 있어요.
숨을 쉬다가 어지럽거나 답답한 느낌이 들면 숫자 세기를 멈추고 평소대로 편하게 숨 쉬어 주세요. 호흡이나 심장, 폐 쪽으로 불편함이 계속된다면 혼자 견디지 마시고 꼭 전문가와 상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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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테라피스트·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병원동행매니저 자격을 가진 김미희 칼럼니스트는 부모님을 직접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돌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글을 씁니다. 코리안투데이 인천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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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희 기자: incheonsouth@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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