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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미희

향으로 닫는 하루 — 저녁 창가의 작은 마무리 의식

끝이 보이지 않던 돌봄의 하루에, 스스로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해 주는 시간

기사입력 기사번호 59031
위아쌤 마음돌봄 신호 · 제 19회

글 김미희 칼럼니스트

위아쌤 마음돌봄 신호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약 봉투를 정리하고, 내일 병원 가는 시간까지 확인하고 나면 창밖은 어느새 어둑해져 있습니다. 몸은 겨우 앉았는데 마음은 여전히 부엌과 안방 사이를 오가고 있지요. 오늘은 그렇게 끝날 줄 모르는 하루에 향 한 줄기로 조용히 마침표를 찍는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합니다.

돌보는 사람의 하루에는 ‘퇴근’이 없습니다

직장에는 퇴근 시간이 있고 가게에는 문 닫는 시간이 있지만, 가족을 돌보는 일에는 정해진 끝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잠드신 뒤에도 기침 소리 한 번에 귀가 먼저 반응하고, 휴대전화는 늘 손 닿는 곳에 둡니다.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 한쪽은 언제든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게 긴장을 켜 둔 채 하루가 다음 날로 그대로 이어지니, 아무리 자도 개운하지 않은 날이 늘어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아마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겨우 이불 속에 들어갔는데 ‘저녁 약은 드렸던가’ 하는 생각에 다시 일어나 약통을 확인합니다. 누워서는 내일 아침 반찬, 다음 주 검진 예약, 형제들에게 보낼 연락을 머릿속으로 되짚지요. 그러다 보면 하루가 끝났다기보다 그냥 끊겼다는 느낌으로 잠이 듭니다.

그래서 돌보는 사람에게는 하루의 끝을 스스로 만들어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누가 대신 ‘이제 쉬어도 된다’고 말해 주지 않으니, 내가 나에게 그 신호를 보내야 하는 것이지요. 제가 ‘의식’이라는 조금 거창한 말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순서로 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문장을 대신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향’일까요

향은 설명이 필요 없는 감각입니다. 어떤 냄새를 맡는 순간, 생각보다 먼저 기분이 움직이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셨을 거예요. 비 온 뒤 흙냄새에 어린 시절 골목이 떠오르고, 어머니가 쓰시던 분 냄새에 문득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하지요. 이렇게 향은 머리로 따지기 전에 마음에 먼저 닿기 때문에, 복잡한 하루를 정리하는 신호로 삼기에 잘 어울립니다.

저 역시 부모님을 돌보던 시절에는 하루를 어떻게 닫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로마테라피스트로 일하면서 다른 분들께는 향을 권하면서도, 정작 저 자신에게는 오일 한 방울 건넬 여유를 내지 못한 날이 많았지요. 그러다 저녁마다 같은 향을 한 번씩 맡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대단한 변화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향이 나면 ‘아, 이제 내 시간이구나’ 하고 어깨가 조금 내려가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향을 고를 때 ‘어디에 좋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잠시 내려놓으셔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코에 편안하고, 맡았을 때 얼굴이 살짝 풀리는 향이면 된다는 점입니다. 라벤더처럼 부드러운 꽃향이 맞는 분도 있고, 오렌지 같은 산뜻한 과일 향이나 나무 향이 더 편한 분도 있습니다. 한 가지를 정해 매일 저녁 같은 향을 쓰다 보면, 그 향 자체가 하루를 닫는 약속처럼 자리 잡을 수 있어요.

창가, 작은 불빛, 오일 한 병

의식이라고 해서 따로 공간을 꾸미거나 물건을 많이 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단순할수록 오래 이어갈 수 있지요. 핵심은 ‘매번 같은 자리, 같은 순서’입니다. 몸이 그 순서를 기억하게 되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그 시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저녁의 창가를 떠올려 보세요. 거실 큰 불을 끄고 창가에 작은 불빛 하나만 남기면, 방 안의 소리도 한결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창밖으로 어스름이 내려앉는 걸 보고 있으면, 바쁘게 흘러간 하루가 조금 멀리 물러나는 느낌이 들지요. 그 옆에 늘 쓰는 오일 한 병을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는 ‘나를 위한 자리’가 됩니다.

방법은 이렇게 해 보셔도 좋습니다. 먼저 창가에 앉을 자리를 정하고, 촛불이나 은은한 스탠드를 켭니다. 손수건이나 화장솜에 오일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 가슴 가까이 들고, 천천히 세 번 숨을 쉬어 봅니다. 촛불을 쓰신다면 곁을 떠날 때 꼭 끄시고, 불이 걱정되는 댁이라면 촛불 모양의 전등으로도 충분합니다.

향을 맡으며 건네는 세 개의 문장

돌보는 사람은 하루를 돌아볼 때 대개 못한 것부터 셉니다. 오늘 또 목소리를 높였다, 산책을 못 시켜 드렸다, 반찬이 부실했다 하면서요. 그렇게 하루의 끝이 자책으로 채워지면, 그 무게를 그대로 안고 내일을 맞게 됩니다. 향을 맡는 시간은 그 셈법을 잠시 바꿔 보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저녁, 부모님께 괜히 짜증을 내고 방으로 들어와 혼자 마음이 무거웠던 날을 떠올려 보세요. 그런 날일수록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하는 생각이 쉽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하루를 조금만 다시 들여다보면, 아침상을 차렸고, 약을 챙겼고, 불편한 몸을 부축해 드린 내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잘못한 한 장면이 하루 전체를 덮어 버리지 않도록, 스스로 균형을 잡아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향을 맡으며 마음속으로 세 문장만 떠올려 보시길 권합니다. 첫째는 ‘오늘 내가 해낸 일 하나’, 둘째는 ‘오늘 고마웠던 순간 하나’, 셋째는 ‘내일의 나에게 건네는 한마디’입니다. 소리 내어 말해도 좋고, 작은 수첩에 한 줄씩 적어도 좋습니다. 이 세 문장이 쌓이면, 돌아보는 하루가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나 혼자의 의식에서, 함께하는 저녁으로

처음에는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돌보는 사람이 먼저 숨을 고를 수 있어야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여유가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의 의식이 조금 익숙해지면, 가끔은 그 시간을 부모님과 나누어 보셔도 좋습니다. 향은 말이 줄어든 관계 사이에 조용히 다리를 놓아 주기도 하니까요.

부모님과 나란히 앉아 할 말을 찾지 못해 텔레비전 소리만 흐르던 저녁이 있으셨을 겁니다. 그럴 때 오일 한 방울 떨어뜨린 손수건을 건네며 ‘이 냄새 어떠세요?’ 하고 여쭤보면,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귤 향에 옛날 겨울 아랫목 이야기를, 나무 향에 고향 뒷산 이야기를 꺼내시기도 하지요. 향을 매개로 함께 기억을 떠올리는 이 시간은, 부모님께도 저에게도 반가운 인지 자극이자 따뜻한 대화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무향 로션에 오일을 아주 조금 섞어 부모님 손등을 천천히 쓸어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이때는 효과를 기대하기보다,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어르신 피부는 얇고 예민할 수 있으니 처음에는 손등 작은 부위에 먼저 발라 보고, 불편해하시면 바로 멈추세요. 향이 싫다고 하시면 억지로 권하지 않는 것도 함께하는 의식의 중요한 약속입니다.

오늘의 마음돌봄 실천

★☆☆[오늘 바로 — 세 번의 숨] ① 저녁 일을 마치면 창가나 좋아하는 의자에 앉습니다. ② 손수건이나 화장솜에 좋아하는 오일을 한 방울만 떨어뜨립니다. ③ 두 손으로 감싸 가슴 앞에 들고, 코로 천천히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쉬기를 세 번 합니다. ④ 마지막 숨에 마음속으로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합니다. 같은 향과 같은 말을 반복하면, 그것이 하루를 닫는 신호로 자리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한 걸음 더 — 불빛과 세 문장] ① 거실 큰 불을 끄고 촛불이나 작은 스탠드 하나만 켭니다. ② 향을 맡으며 어깨를 귀 쪽으로 크게 올렸다가 ‘툭’ 내려놓기를 세 번 합니다. ③ 수첩을 펴고 ‘오늘 해낸 일 하나, 고마웠던 순간 하나, 내일의 나에게 한마디’를 한 줄씩 적습니다. ④ 다 쓰면 수첩을 덮고 불을 끕니다. 못한 일 대신 해낸 일을 헤아리다 보면, 하루를 조금 더 너그럽게 마무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여유가 될 때 — 함께하는 향 시간] ① 무향 로션 한 스푼 정도에 오일을 한 방울만 섞습니다. ② 부모님 손등 작은 부위에 먼저 조금 발라 보고 괜찮으신지 여쭙습니다. ③ 괜찮으시면 손등에서 손가락 끝 방향으로 천천히 다섯 번 쓸어 드립니다. ④ 그러면서 ‘이 냄새 맡으니 뭐가 생각나세요?’ 하고 가볍게 여쭤봅니다. 향과 손길을 함께 나누는 시간은 말없이도 마음을 전하고, 함께 기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살며시 당부
에센셜 오일은 원액을 피부에 바로 바르거나 먹지 마시고, 희석해서 소량부터 써 보세요. 피부가 예민하거나 향이 불편하게 느껴지면 바로 멈추시고, 촛불은 켜 둔 채 자리를 비우지 않도록 해 주세요. 이 글에서 말하는 향 돌봄은 생활 속 자기돌봄일 뿐, 의약품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돌봄의 하루는 내일도 비슷하게 시작될 것입니다. 그래도 하루의 끝만큼은 내 손으로 조용히 닫을 수 있다는 것, 그 작은 주도권이 생각보다 큰 버팀목이 되어 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저녁 창가에 작은 불빛 하나를 켜고 좋아하는 향을 한 번 깊이 맡아 보세요. 그리고 오늘도 애쓴 나에게 ‘수고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예요’라고 말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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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미희 칼럼니스트
아로마테라피스트·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병원동행매니저 자격을 가진 김미희 칼럼니스트는 부모님을 직접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돌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글을 씁니다. 코리안투데이 인천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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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희 기자: incheonsouth@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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