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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 토요일 전체기사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中文 日本語 Tiếng Việt

칼럼 장형임

[섬에서 온 인공지능] 제2권 · 제12장 · 일을 대신 해 주는 기계 앞에서 마지막 단추만큼은 내 손으로 누르는 법

기사입력 기사번호 60161

추석이 지나고 맞은 지난주 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양도면 마을회관 앞 평상에서 벼 베기를 앞둔 할머니 한 분이 제게 휴대전화를 내미셨습니다. 서울 사는 손주가 명절에 다녀가면서 “이제 할머니가 말만 하면 알아서 다 해 준다”며 무언가를 깔아 주고 갔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화면을 가리키며 “읍내 병원 예약을 해 달라고 했더니 혼자 날짜를 잡아 버렸는데, 그날이 하필 고구마 캐는 날이야” 하고 웃으셨습니다. 저는 그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기계는 시킨 일을 분명히 해냈지만, 할머니의 가을 달력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코리안투데이] 마을회관 평상에서 휴대전화를 보는 할머니 © 장형임 칼럼니스트

제가 이 연재에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인공지능은 대개 묻는 말에 답하는 기계였습니다. 모르는 약 이름을 물으면 풀어서 알려 주고, 손주에게 보낼 편지를 다듬어 주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요즘 들려오는 이야기는 결이 다릅니다. 기계가 대답에서 그치지 않고 예약을 잡고, 물건을 주문하고, 서류를 채워 보내는 일까지 대신 해 준다고 합니다. 듣기만 해도 편리한 일입니다. 버스 한 번 타려 해도 시간표부터 맞춰야 하는 섬 어르신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날 할머니와 함께 예약을 고치면서 저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계가 틀렸다기보다는 기계에게 다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할머니에게 고구마 캐는 날은 너무 당연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계는 우리에게 당연한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대신 해 주는 기계 앞에서 어르신이 가장 먼저 지키셔야 할 것이 일을 마치기 전에 “잠깐, 보여 줘 봐” 하고 한 번 멈추는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돈과 관련된 일입니다. 강화 장터에서 오래 장사하신 사장님 한 분은 제게 “물건값은 내 손으로 세어 봐야 마음이 놓인다”고 하셨습니다. 기계가 결제까지 대신 해 준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그 말씀이 떠오릅니다. 돈이 나가는 일, 이름과 주민번호가 들어가는 일,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무게를 지닌 일이라면 마지막 단추만큼은 어르신 손으로 누르셔야 합니다. 수고로운 과정은 기계에 맡기더라도 결정만큼은 사람 몫으로 남겨 두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세 번째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웃 마을 이장님은 기계가 안부 문자도 대신 보내 준다는 말을 듣고 껄껄 웃으셨습니다. “그럼 그게 내가 보낸 거야, 기계가 보낸 거야?” 그 물음이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섬마을은 서로의 안부로 버텨 온 곳입니다. 비 오는 날 건넛집 할아버지가 밭에 나오셨는지 살피고, 김장철이면 누구네 일손이 모자란지 먼저 알아채는 마음은 기계에 맡길 수 없습니다.

네 번째로, 기계에게 맡길 일이라도 한 번쯤은 직접 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할머니는 그날 저와 함께 병원 예약 화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눌러 보셨습니다. 시간은 훨씬 더 걸렸지만, 다 마치고 나서 “이제 이게 뭘 하는 건지는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기계가 엉뚱한 일을 할 때 금세 알아챕니다. 모르는 채로 맡기면 일이 잘못되어도 잘못된 줄을 모릅니다. 기계가 무언가를 했을 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되묻는 일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대신 해 주는 기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몸이 무거운 날, 읍내까지 나가기 어려운 날에 이 기계는 분명 든든한 일손이 되어 줄 것입니다. 다만 일손을 들이는 집주인이라면 일꾼에게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남겨 둘지 먼저 정해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오늘 휴대전화에게 맡긴 일 가운데 마음 놓고 맡겨도 되었던 일은 무엇이었고, 내 손으로 했어야 할 일은 무엇이었는지 한번 꼽아 보시겠습니까.

그날 오후 할머니는 병원 예약을 고구마 캐는 날 다음 주로 옮기셨습니다. 저녁에는 손주에게 전화를 걸어 “기계가 말은 잘 듣는데, 내 사정은 내가 말해 줘야 하더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 한마디에 오늘 드리고 싶었던 이야기가 다 들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기계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대신 해 줄 것입니다. 그래도 내 삶의 사정을 아는 사람, 마지막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끝까지 우리 자신이어야 합니다. 섬의 가을걷이가 그렇듯 거두는 손은 빌릴 수 있어도, 무엇을 언제 거둘지는 주인이 정하는 법입니다.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기록은 제가 강화에서 쓰고 만든 책과 서비스에도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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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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