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전체기사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中文 日本語 Tiếng Việt

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4권 · 제7장 · 할머니의 떨리는 손끝에서 본 것은 사기가 아니라 외로움이었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5058

실버 브릿지 · 제4권 제7장 (hero)

지난겨울, 서울 구로구의 한 경로당에서 저는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에는 낯선 번호로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나 찍혀 있었습니다. “손자 목소리였어요. 다급하게 돈을 보내달라고 하는데, 진짜 걔 목소리였다니까요.”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손끝을 떨었습니다. 다행히 옆자리 친구분이 “요즘 그런 전화 많다더라”며 말려서 송금은 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그날 이후로도 한동안 전화벨 소리에 몸을 움찔거리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 순간, 제 책 「디지털 실버」 7장을 쓰며 마주했던 숫자들이 더 이상 통계가 아니라 얼굴을 가진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같은 지점을 짚었습니다. 2025년 상반기, 한국에서 보이스피싱으로 피해를 입은 60대 이상 노인은 5,131명으로 전체 피해자의 30.6%를 차지했습니다. 모든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수법마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중국에서는 단 10분간의 영상통화로 43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8억 원이 송금된 사례가 보도되었을 정도입니다. AI 음성 합성으로 만들어진 자식의 목소리, 가족사진을 학습해 만든 영상통화 앞에서는 더 이상 “노인이라 속는다”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AI 사기 피해자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7%로, 젊은 층과 거의 같은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숫자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흐름이 얼마나 가팔라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023년 4,472억 원에서 2024년 8,545억 원으로 일 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되었고, 2025년에는 8월까지만 이미 8,856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1인당 평균 피해액도 1,700만 원으로 전년보다 1.5배 늘었습니다. 특히 검찰이나 경찰, 금융감독원을 사칭하는 ‘기관사칭형’ 사기는 2025년 13,323건으로 2016년 대비 네 배 가까이 폭증했다고 합니다. 취재 노트에 이 숫자를 옮겨 적으면서, 저는 왜 유독 이 수법이 이렇게까지 늘어나는지 한동안 생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상하이 외곽의 사구(社區) 노인대학에서 만난 그분은 ‘공검법(公檢法) 사칭’ 전화를 받고 사흘간 잠을 설쳤다고 하셨습니다. “경찰이라는 사람이 내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면서, 안전계좌로 옮기라고 했어요. 처음엔 진짜인 줄 알았죠.” 중국에서는 이런 공검법 사칭 사기 피해자의 70% 이상이 노인이라고 합니다. 2024년 한 해에만 213만 건의 통신사기로 970억 위안, 한화로 약 18조 원이 사라졌습니다. 한국과 중국, 언어도 제도도 다른 두 나라에서 사기범들이 파고드는 지점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권위에 대한 신뢰, 가족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이 두 만남을 통해 한 가지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노인이 사기에 취약한 것은 기술을 몰라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 60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97.7%, 인터넷 이용률은 97.4%로 거의 전 국민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중국에서도 60세 이상 인터넷 사용자가 1억 1,900만 명에 달합니다. 기기는 손에 쥐어졌지만, 그 기기를 쥔 사람 옆에는 정작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신장대학교 법학원의 류닝 교수가 자신의 논문에서 남긴 말이 취재 내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노인 사기 피해의 본질은 디지털 문맹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이다. 기술 교육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매일 한 번 안부를 묻는 가족과 이웃의 전화다.”

두 나라가 걸어온 초고령화의 속도를 보면 이 문제가 왜 이렇게 커졌는지 이해가 됩니다.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1,051만 명으로 전체의 20.3%를 넘어서며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중국은 60세 이상 인구가 3억 1,000만 명, 전체의 22.0%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노인 인구를 품고 있습니다. 자녀와 떨어져 홀로 지내는 노인 가구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사기범들이 파고들 틈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두 나라 정부가 24시간 자금 동결 제도나 국가반사기센터 앱 같은 기술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그런 장치가 아무리 촘촘해져도, 정작 전화를 받는 순간 노인 곁에 아무도 없다면 그 틈은 결코 메워지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오늘 부모님이나 홀로 지내시는 이웃 어르신께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것이 언제였나요. 구로 경로당에서 만난 할머니가 위기를 넘긴 것은 최신 보안 앱 덕분이 아니라,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분의 말 한마디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거창한 캠페인이나 정교한 시스템보다 먼저, 송금 버튼을 누르기 직전 한 번 더 망설이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익숙한 목소리로 걸려오는 전화 한 통이라는 것을 그날 다시 배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7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노인 인터넷 사기 실태와 두 나라가 마련한 대응책, 그리고 그 안에서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풀어놓았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위아북 도서 소개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에서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THE KOREAN TODAY × WIA CODE

이 기사의 WIA Code

WIA Code — 이 기사 인증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사실과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기본 카메라로 찍으면 스캐너 안내 페이지가 열립니다 — 기사 바로 열기

WIA Code 스트림 — 이 기사 전체가 담겨 있습니다

움직이는 코드는 스트림입니다 — WIA Code 스캐너로 약 10초 비추면 기사 전문(사진 포함)이 폰에 저장되어 인터넷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 Stream.mp4 다운로드

WIA Code · 코리안투데이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박수진 칼럼니스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