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아파트 단지에서 해 질 무렵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스피커 음악이 흘러나오고, 광장이 천천히 사람들로 채워집니다. 같은 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이웃들이 줄을 서는데, 누가 왔고 누가 빠졌는지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그 풍경 옆에 탑골공원의 바둑판을 나란히 놓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두 장면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광장무 대열에는 ‘무리 대장’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춤을 가르치는 자원봉사자인데, 그분이 있어서 처음 온 사람도 두 번째 줄 끝에 슬그머니 설 수 있습니다. 입장료도 회비도 없습니다. 제가 가장 오래 눈여겨본 것은 춤 동작이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약속을 따로 잡을 필요가 없으니 빠져도 부담이 없습니다. 이 모임을 지키는 것은 돈이 아니라 루틴이었고, 광장무 인구는 1억 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숫자를 먼저 놓고 보겠습니다. 중국 민정부의 제5차 도시농촌 노인실태조사에서 60세 이상 노인의 81.4%가 “생활이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도시 거주자는 83.8%, 농촌 거주자도 78.6%였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 통계청의 2025 고령자통계에서 60세 이상의 여가생활 만족도는 30.1%로 전 연령대 최하위였습니다. 질문이 완전히 같지는 않으니 단순 비교는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두 숫자 사이의 거리는 쉽게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한국 노인이 가난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65세 이상 고용률은 38.2%로 OECD 1위이고, 의료보험은 촘촘하며 지하철은 무료입니다. 그런데 통계청의 「국민 삶의 질 2025」를 보면 60세 이상의 소득 만족도는 23.1%, 소비생활 만족도는 19.9%로 모두 전 연령대 최저였습니다. 66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은 39.8%로 전체 인구 14.9%의 2.6배입니다. 독거노인은 23.7%, 네 분 중 한 분이 혼자 지냅니다. 2024년 말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나라의 얼굴이 이렇습니다.
중국에는 광장무 말고도 오후를 채우는 판이 있습니다. 마작은 네 사람이 모여야 성립하는 놀이입니다. 베이징대·란셋 공동 보고서는 마작 참여 빈도와 우울증 감소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전합니다.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사람을 만나는 세 가지가 한 판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로당 화투도 본질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거기에 ‘도박’의 그림자를 먼저 드리웁니다. 그래서 어르신들도 당당하게 즐기지 못합니다. 중국에는 ‘노년대학’도 7만 곳 넘게 있습니다. 한 학기 학비가 100~300위안, 우리 돈 2~6만 원이고, 서예·합창·태극권·스마트폰 촬영까지 과목이 수백 종입니다. 경쟁률이 수십 대 일인 곳도 있다고 합니다. 은퇴하고서야 학생이 된다는 역설이 거기서는 자연스러운 문화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한참 멈추었습니다. 노년대학에서 얻어 가는 것은 서예 실력보다 ‘매주 같은 교실에서 만나는 친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여대 정재훈 교수는 “지금 이 순간을 기쁘게 살 줄 아는 것이, 돈을 모으는 것보다 더 큰 재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 세대가 오래 일해 돈을 번 대신 하루를 즐기는 연습을 건너뛰었다고 짚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아프게 맞다고 느꼈습니다. 한국 노인이 행복하지 않은 까닭은 내일을 준비하느라 오늘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회 흐름도 이 생각을 거듭니다. 중국의 60세 이상 인구는 2024년 말 기준 3억 1,031만 명으로 한국의 30배가 넘습니다. 1인당 GDP는 한국의 3분의 1 수준인데도 행복하다고 답하는 노인이 81.4%입니다. 한국에서는 자녀의 결혼과 주택을 돕다가 노후 현금흐름이 꺾이는 일이 흔합니다. 자산은 있는데 쓰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자기검열도 큽니다. 댄스스포츠나 배낭여행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벽은 경제력보다 남의 시선입니다. 중국의 광장무는 모두가 함께 추는 것으로 그 벽을 낮췄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동네 도서관 신문 코너로 나가 보십시오. 한 달에 한 번 옛 동료와 점심을 먹고, 올해 안에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어 보십시오. 한국 노인의 1인당 연간 여행일수는 4.09일입니다. 못 가는 것이 아니라 미루는 것의 결과일지 모릅니다. 부모님께 오늘 전화하신다면 첫 인사를 “식사 드셨어요”에서 “오늘은 뭐 하고 재미있게 지내셨어요”로 바꿔 보시면 어떨까요. 그 질문에 답할 거리가 있는 삶을 만들어 드리는 일이 우리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부모님 달력에는 이번 주 약속이 몇 개나 적혀 있습니까?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30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노년을 나란히 놓고 ‘현재를 즐기는 법’을 다룬 장입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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