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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 토요일 전체기사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中文 日本語 Tiếng Việt

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5권 · 제31장 · 두 나라의 노인이 나란히 선 그림 앞에서, 저는 오래 서 있었습니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9351

책의 한 장을 마무리하고 나면, 저는 늘 맨 앞에 놓을 그림 한 장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이번 장의 그림은 서울과 베이징을 닮은 두 도시 앞에 나란히 선 두 노인의 실루엣입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어깨 높이만 비슷합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모습이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알 수 없게 그려져 있습니다. 오늘은 이 그림에서 출발해, 두 나라가 함께 늙어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제가 이 장을 쓰게 된 계기는 뉴스 한 줄이었습니다. 2025년 11월 1일, 경주에서 열린 APEC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이 ‘실버산업 협력 MOU’를 공식 교환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두 나라가 노인 문제를 두고 이렇게 공식 문서를 주고받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한한령과 사드, 코로나 봉쇄를 지나 온 이웃이 가장 먼저 같은 탁자에 올린 안건이 ‘늙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이 저에게는 조금 뜻밖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늙음은 국경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숫자부터 차분히 적어 두겠습니다. 통계청이 2025년 10월 29일 발표한 ‘2025년 고령자 통계’에서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1,051만 4천 명이었습니다. 전체 인구의 20.3%로, 유엔 기준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것입니다. 2000년 고령화사회가 된 뒤 25년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고령자 가구만 618만 7천 가구에 이릅니다. 중국은 규모가 다릅니다. 2024년 말 60세 이상 인구가 3억 명을 넘어 전체의 약 23%를 차지했습니다. 2035년에는 4억 명을 넘어 인구의 30%를 웃돌 것으로 내다봅니다. 3억이라는 숫자는 쓸 때마다 저도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2026년 1월 5일 베이징 정상회담에서는 저출산·고령화 공동대응을 포함해 14건의 협력 양해각서가 체결되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버경제는 한국과 중국이 글로벌 시장의 다른 영역에서 경쟁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협력 가능성을 가진 분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경쟁 관계에 있음에도’라는 대목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습니다. 경쟁하는 사이에서도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곳은 아마 노년이라는 자리일 것입니다.

두 나라를 나란히 놓고 보면 서로 다른 것을 쥐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은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해 올해로 18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치매국가책임제와 주야간보호, 방문요양 같은 세분화된 돌봄의 결을 나이테처럼 쌓아 왔습니다. 중국은 2025년 1월 ‘양로 서비스 개혁과 발전 심화에 관한 의견’을 내놓고 2035년까지 전 국민 기초 양로 서비스 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장기요양 성격의 보험은 2016년부터 49개 도시에서 시범으로 운영 중입니다. 한쪽은 ‘먼저 걸어 본 경험’을, 다른 쪽은 ‘아직 아무도 걸어 보지 못한 규모’를 안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먼저 부자가 되고 늙는 ‘先富後老’가 아니라 부자가 되기도 전에 늙는 ‘未富先老’를 걱정한다고 합니다. 이 걱정을 한국은 이미 겪어 보았습니다.

시장의 숫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한국의 실버경제는 2020년 72조 원에서 2030년 168조 원으로 커질 것으로 추산됩니다. 중국은 2023년 7.1조 위안, 곧 GDP의 6% 수준에서 2035년 30조 위안, 약 10%까지 오를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숫자들을 돈의 크기로만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는 아침마다 약을 챙겨 먹고,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계단을 오르는 수억 명의 하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장을 쓰면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대목은 오히려 조심해야 할 점들이었습니다. 중국 도시 노인의 평균 연금은 월 3천 위안, 한국 돈으로 57만 원 안팎입니다. 한국식 프리미엄 서비스를 그대로 가져가면 문턱이 너무 높습니다. 건강·의료 데이터는 현지 서버에 저장해야 하고, 지방정부마다 보조금과 정책이 천차만별입니다. 무엇보다 ‘효(孝)’를 중히 여기는 사회에서 시설 입소를 불효로 보는 정서를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책에서는 가정 방문형에 지역사회 거점을 더한 방식이 더 어울린다고 적었습니다. 제도를 수출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의 결을 맞추는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만남이 저에게 무엇이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한국의 노년을 설명할 때 자주 ‘너무 빨랐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장을 쓰며 그 빠름이 반드시 상처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겪은 시행착오가 이웃에게는 지도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이 가진 넓은 현장은 한국의 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숨 쉬는지 다시 확인해 볼 시험장이 되기도 합니다. 누가 가르치고 누가 배운다는 구도는 어느 쪽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마주한 돌봄의 빈자리를, 국경 건너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어떨까요. 기업과 정부가 문서에 서명하는 일과는 별개로, 저는 이웃 나라의 노인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해하는 마음이 먼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림 속 두 노인처럼, 어느 쪽이 앞서는지 따지지 않고 보폭만 맞춰 걸어 보면 좋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31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협력의 구체적인 길목과 주의할 점까지 적어 두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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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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