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겨울, 서울 어느 노인복지관의 디지털배움터 강의실에서 저는 한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 강사를 따라 손가락으로 노트를 짚어가며, “여기를 누르면 되는 거죠?” 하고 몇 번이고 되묻던 그분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문득, 배움이란 것이 나이와 상관없이 얼마나 사람을 다시 설레게 하는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오늘은 그날의 만남에서 시작된, 한국과 중국 노년 세대의 ‘새 교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날 강의실 풍경은 제가 쓴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5장에도 그대로 담았습니다. 책에서 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카카오톡 화상 강의, 위챗 단톡방, 도우인 라이브, K-MOOC 시니어 트랙 — 디지털 격차를 메우려던 정책은 어느새 ‘노년기 평생학습’이라는 새로운 산업으로 바뀌었다.” 그 문장을 쓰면서 저는, 정부가 마련해준 배움터가 어르신들에게 단순한 기술 습득의 자리가 아니라 다시 사회 속에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제가 취재하며 정리한 숫자들도 그 변화를 말해줍니다. 2024년 한국 70대 이상 스마트폰 보유율은 73.0%로 1년 만에 6.5%p나 뛰었습니다. 60대는 이미 96.9%까지 올라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숫자 뒤에 숨은 간극도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71.4%에 머물러 있었으니까요. 기기를 손에 쥐는 일은 거의 끝났지만, 그것을 배움으로 이어가는 일은 이제 막 시작된 셈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 제가 마주한 풍경은 규모부터 달랐습니다. 60세 이상 인구가 3.1억 명, 그중 인터넷을 쓰는 이가 1.6억 명을 넘었습니다. 2023년 문을 연 국가노인대학은 1년여 만에 전국 5만 5천 개 학습거점, 누적 학습자 2,214만 명, 강좌 43.6만 개를 모아 세계 최대 시니어 학습 플랫폼이 되어 있었습니다. 상장사 양자즈거의 ‘천척학당’은 피아노·서예·건강 취미반으로 1.21억 명의 누적 등록자를 모았는데, 그중 64%가 여성이었고 월 평균 가처분소득은 5,119위안이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정리하며, 중국의 어르신들이 배움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새로운 소비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만남과 통계를 나란히 놓고 오래 들여다본 이유는, 두 나라가 같은 질문 앞에서 서로 다른 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디지털을 잃지 않기 위한 학습’을 정부가 무료로 떠받치는 단계에 있었고, 중국은 그 위에 ‘기꺼이 돈을 내고 흥미를 사는 단계’가 이미 얹혀 있었습니다. 취재하며 읽은 인민일보 칼럼의 한 구절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노년기의 학습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자기효능감’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온라인 강의실은 노인이 사회로부터 ‘배제된 존재’가 아니라 ‘참여하는 존재’로 자리를 옮기게 하는 가장 빠른 다리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제가 그날 강의실에서 본 어르신의 떨리던 손끝이 바로 그 다리를 건너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책을 쓰는 동안 제가 유독 오래 붙잡고 있던 장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상하이의 한 커뮤니티 학습실에서 스무 살 남짓한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일흔의 어르신께 위챗 결제 화면을 짚어드리던 모습이었습니다.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에는 이렇게 썼습니다. “손주뻘 강사가 화면을 짚어주는 순간, 배움은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세대가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이는 일이 된다.” 저는 그 문장을 쓰며, 한국의 디지털배움터 강의실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떠올렸습니다. 대학생 서포터즈가 스마트폰을 짚어드리는 손끝에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 어떤 다정함이 있었습니다.
이 흐름은 단순한 기술 보급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전체의 재배치와 맞닿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1,024만 명으로 전체의 19.2%에 이르렀고, 65~79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23.5%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정부는 2025년부터 2029년까지 367.5억 원 규모의 고령자 디지털 리터러시 사업을 추진하며, ‘배우는 노인’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노인’으로 정책의 방향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카카오임팩트의 ‘찾아가는 시니어 디지털 스쿨’, 시니어 유튜브 크리에이터 양성 과정 같은 민간의 움직임도 함께 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흐름이 결국 노년을 ‘배려의 대상’에서 ‘참여의 주체’로 바꾸는 조용한 전환이라고 느꼈습니다.
규모로 보면 이 흐름은 이미 산업의 언어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중국은 ‘은발경제’ 시장이 2035년까지 30조 위안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고, 한국 역시 고령친화산업 시장이 2030년 16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숫자들을 나란히 놓고, 두 나라가 결국 같은 목적지—노년을 소비와 학습의 주체로 인정하는 사회—를 향해 다른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그 속도의 차이가 누구를 배제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혹시 여러분 곁에는, 아직 그 다리를 건너지 못한 채 화면 앞에서 머뭇거리는 분이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저는 이 책을 쓰며 독자 여러분께 한 가지를 묻고 싶었습니다. 우리 곁의 부모님, 혹은 이웃 어르신에게 화상 강의 하나를 함께 켜드린 적이 있으신가요. 화면 너머로 이름을 불러주고 손가락 하나 짚어드리는 그 작은 동행이, 어쩌면 가장 확실한 다리일지도 모릅니다. 학습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저는 그 겨울 강의실에서 다시 배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5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위아북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