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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 명작선-2] 적도와 오호츠크해를 건너온 인연, 포구에서 만나다

정홍근 시인의 디카시 「연緣」

기사입력 기사번호 54706

포구의 방파제 끝에 두 개의 조형물이 마주 서 있다. 하나는 뒤쪽 조금 떨어진 자리에, 하나는 앞쪽에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두 존재. 정홍근 시인은 이 평범한 포구의 풍경에서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길어 올린다. 디카시 「연緣」이다.

▲ [코리안투데이] 정홍근 시인의 「연緣」  © 장시백 기자

시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당신은 적도를 돌아서 왔나요 / 나는 오호츠크해를 거쳐서 왔어요.” 하나는 뜨거운 남쪽 바다를, 하나는 차가운 북쪽 바다를 돌아왔다. 지구의 양쪽 끝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온 두 존재가 마침내 이 작은 포구에서 만난 것이다.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이루어진 필연처럼 읽힌다.

다음 연에서 시는 신화의 세계로 건너간다. “은하수의 물 냄새와 윤슬 / 까막까치들의 노랫소리 따라 / 우린 다시 만날 운명이었어요.” 칠월칠석, 일 년에 단 하루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지내던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가 놓아준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만난다는 옛이야기다. 시인은 포구의 두 조형물을 이 견우직녀의 자리에 놓는다. 바닷물에 부서지는 햇살은 은하수의 윤슬이 되고, 방파제는 두 존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평범한 어촌의 한 장면이 시 한 편으로 인해 신화의 무대가 되는 순간이다.

제목 ‘연緣’은 이 모든 이야기를 한 글자에 담는다. 적도와 오호츠크해라는 먼 지리적 거리, 은하수라는 아득한 신화적 거리. 그 모든 거리를 건너 결국 만나고야 마는 사이를 우리는 ‘인연’이라 부른다. 시인은 어려운 말을 쓰지 않는다. 다만 방파제 위에 조용히 서 있는 두 조형물의 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 조용한 응시가 이토록 깊은 이야기를 끌어냈다.

한 장의 사진과 몇 줄의 문장이 만나 이토록 큰 시공간을 열어 보인다는 것, 그것이 디카시의 힘이다. 「연緣」을 읽고 나면 사진 속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바다와 하늘 사이, 조용히 마주 선 두 형상이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물음이 이 시를 읽은 뒤에도 오래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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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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