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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5년 10월 9일 – 조선 첫 국세조사 마무리, 남자보다 51만 명 적었던 여자들

[100년 전 오늘] 1925년 10월 9일 - 조선 첫 국세조사 마무리, 남자보다 51만 명 적었던 여자들

기사입력 기사번호 54171
오전판 · OCT 9, 1925 (금)

100년 전 오늘

🕙 오전 10시 10분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전 10시 10분의 경성

1925년 10월 9일 금요일, 경성 하늘은 늦가을답게 높고 맑았다. 열흘 가까이 이어진 인구조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며 조사원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그런데 며칠 앞서 잠정 집계된 숫자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총인구 1,952만 2,945명 가운데 여자는 남자보다 51만 명 넘게 적었다. 조선 팔도를 훑은 첫 국세조사가 남긴 것은 숫자만이 아니었다.

그날의 경성

이달 초 실시된 간이국세조사는 본디 1920년에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그해 삼일운동의 여파로 다섯 해나 미뤄졌다. 10월 1일 자정을 기준으로 조선 팔도의 집집을 헤아린 이 조사는 성명, 성별, 태어난 해와 달, 배우자 관계, 본적과 국적, 이렇게 다섯 항목만을 물었다. 잠정 집계로는 총인구 1,952만 2,945명, 이 가운데 남자가 1,002만 943명, 여자가 950만 2,002명으로 나왔다. 남자가 여자보다 51만 8,941명 많은 셈이니, 여자 100명당 남자가 약 105명꼴이었다. 근접한 날짜의 보도들은 이 집계가 아흐레, 열흘째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조사표를 들고 집집을 도는 조사원은 대개 면서기나 순사 같은 관공리였고, 이들을 맞아 답하는 이는 흔히 집안의 남자 호주였다. 조사지 위에서 여자의 이름은 있어도, 여자의 목소리는 좀처럼 실리지 않았다. 성비가 왜 이렇게 벌어졌는지 당대 신문에서 명확한 설명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산모와 갓난아이의 높은 사망률, 조사 과정에서 누락되기 쉬웠던 여자들의 처지가 자주 거론되던 시절이었다는 점만은 짚어둘 만하다. 이날 지면의 구체적인 원문은 확인이 어려워 이 글에서는 소개하지 않는다.

경성과 한반도

인구조사의 물결은 경성에만 머물지 않았다. 바로 어제, 원산 부두에서는 노동자들이 새 노동회 깃발을 내걸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편 지난여름 한강을 넘치게 했던 을축년 물난리의 상처는 가을이 깊어가도록 아물지 않았다. 용산 제방을 더 높이 쌓고 이촌동 거주를 금하는 등의 복구 공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조선수해이재자구제회가 모금한 돈으로 겨우 살림을 잇는 이재민이 적지 않았다. 국경 너머 간도에서는 심상찮은 공기가 감돌았다. 일본군이 이른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작전’이라는 대규모 군사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고, 용정과 국자가를 중심으로 한 작전은 불과 엿새 뒤인 10월 15일 시작될 참이었다. 국세조사의 숫자 뒤에서, 조선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홍수의 잔해와 총칼의 그림자를 함께 짊어지고 있었다.

그날의 세계

같은 날 유럽에서는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독일, 프랑스, 영국, 벨기에, 이탈리아 대표들이 닷새째 국경 안전보장을 둘러싼 회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독일 총리 한스 루터와 외무장관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프랑스 외무장관 아리스티드 브리앙이 마주 앉은 이 협상은 10월 16일까지 계속되어 훗날 로카르노 조약으로 이어진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날, 지난해 사회당 의원 자코모 마테오티를 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 두미니, 볼피 등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가 검찰 쪽에서 청구되었다. 무솔리니 파쇼 정권의 폭력성을 상징한 이 사건은 이듬해 봄 재판에서 가벼운 형과 사면으로 마무리되며, 파시즘이 사법을 어떻게 무력화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는다. 상해에서는 지난 5월 30일 사건 이후 벌어진 총파업의 열기가 가라앉고, 노동 현장이 차츰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경성 24시

이 무렵 조선 안팎에서는 여자들의 하루가 다른 결로 흘렀다. 압록강 건너 안동현에서는 화가 나혜석이 부영사 부인이라는 신분으로 1922년부터 열어온 ‘안동현 여자야학’에서 조선 여자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해 봄에는 소설 ‘원한’을 문예지에 실으며 붓을 놓지 않았다. 경성에서는 조선일보사가 앞장서 봄가을로 조직해 온 부인견학단이 여자들에게 집 밖 세상을 보여주는 자리를 이어갔다. 그러나 대개의 여자들에게 하루는 여전히 부엌과 우물가, 저잣거리 사이를 오가는 일이었다. 아침이면 물을 긷고 밥을 짓고, 한낮에는 삯바느질이나 행상으로 살림을 보탰으며, 저물녘이면 교회나 절을 찾아 마음을 달래는 이도 있었다. 국세조사표의 이름 한 줄 뒤에는 이렇듯 저마다의 고단한 하루가 있었다.

100년의 거울

그로부터 백 년, 2025년 대한민국의 인구주택총조사는 훨씬 많은 것을 묻는다. 조사는 여전히 이어지지만, 항목은 수십 가지로 늘었고 응답자는 굳이 집안의 남자 어른일 필요가 없다. 한때 집집의 대표 자리를 독차지했던 호주제는 2008년 폐지되어, 이제 국가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센다.

항목 1925년 2025년
조사 항목 수 5개 수십 개
성비(여자 100명당 남자) 약 105명 거의 균형(100명 안팎)
가구 대표 대개 남성 호주 호주제 폐지(2008년)
여자의 목소리 조사표에 잘 담기지 않음 개인 단위 응답

내일을 기다리며

인구조사의 정식 발표를 앞두고, 로카르노의 회담장에는 아직 이레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내일, 1925년 10월 10일에는 또 어떤 사람들의 하루가 기록될까. 내일 아침 🕙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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