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의 어느 이른 아침, 저는 텃밭에서 상추를 뜯고 계신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103세 김순임(가명) 할머니였습니다. 허리를 굽혀 흙을 만지시는 손끝이 어찌나 야무지던지, 저는 인사도 잊고 한참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오늘은 그날 제가 만난 한국과 중국의 백세 어르신들 이야기를, 그리고 그분들이 아무렇지 않게 건넨 말 속에 담겨 있던 장수의 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할머니께 장수의 비결을 여쭙자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단순했습니다. “특별한 게 뭐 있어. 아침마다 된장국 끓이고, 나물 무쳐 먹고, 밭에 나가 일하는 거지.” 새벽 5시에 일어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신 뒤 텃밭으로 나가 손수 기른 채소로 세 끼를 차리는 것, 그것이 할머니 하루의 전부였습니다. 그 단순함 앞에서 저는 오히려 말문이 막혔습니다. 백 년을 살아낸 비결이 정말 이렇게 소박해도 되는 걸까 싶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자료를 들여다보니, 할머니의 밥상은 결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한남대 이미숙 교수 연구팀이 한국 100세인 71명을 조사한 결과, 92%가 전통 한식을 하루 세 끼 빠짐없이 챙겼고, 가장 즐겨 먹는 국물 1위는 된장국(47%)이었습니다. 보약도 건강보조식품도 없이 나물과 된장국과 잡곡밥만으로 백 년을 건너온 것입니다. 2025년 현재 한국의 100세 이상 인구는 약 8,900명, 기대수명은 83.5세로 OECD 평균을 웃돌고 있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담담하지만, 그 뒤에 김순임 할머니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아침이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같은 질문을 저는 바다 건너 하이난성 청마이현에서도 던져 보았습니다. 102세 왕위란(가명) 할머니는 매일 아침 진한 녹차를 우려 마시고, 마을 광장에서 태극권을 하십니다. “차 한 잔이면 하루가 상쾌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녹이 슬지.” 광시좡족자치구 바마현의 104세 황정(가명) 할아버지는 옥수수죽과 고구마를 주식으로 삼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산에서 나는 걸 먹고, 강에서 나는 걸 먹어. 공장에서 만든 건 안 먹어.” 중국은 2025년 백세노인 12만 명을 넘어서며 세계 최다 보유국이 되었지만, 기대수명은 79세로 한국보다 낮습니다. 도농 격차와 의료 접근성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중국 백세노인의 75%는 농촌에 거주하고, 90세가 넘어서도 밭일을 하는 비율이 37%에 이릅니다. 된장국이든 농차이든, 텃밭이든 광장무든 — 두 나라 어르신들의 하루는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이 두 만남이 제게 의미 있었던 이유는, 두 분 모두 자신의 장수를 조금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으셨다는 데 있습니다. 김 할머니도, 왕 할머니도 ‘건강을 위해’ 무언가를 하신 게 아니라, 그냥 매일 하던 일을 계속하셨을 뿐이었습니다. 경북 의성의 101세 박종호(가명) 할아버지가 마늘 한 쪽을 씹으며 하신 말씀도 오래 남았습니다. “마늘이 만병통치야. 그리고 화내지 않는 거. 세상에 화낼 일이 뭐가 있어.”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우울이 몸속 염증을 키워 노화를 앞당긴다는 것은 이제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할아버지의 그 심드렁한 태도가, 실은 가장 정교한 건강관리였던 셈입니다.

저는 이 취재를 하며 한중 양국이 나란히 초고령사회의 길목에 서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3%에 달해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중국 역시 14.9%까지 빠르게 따라오고 있습니다. 유엔은 2050년이면 중국 백세노인이 5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두 나라 모두 연금 제도와 의료 체계, 돌봄 인력을 서둘러 재설계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정작 백세를 넘긴 어르신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제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마을회관에 모여 나물을 다듬는 손, 광장에서 함께 부채춤을 추는 발걸음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루를 짜는 것, 그것이 두 나라 장수 마을의 공통된 얼굴이었습니다.
취재노트를 다시 넘기다 보니, 두 나라의 제도가 그 공통된 얼굴을 어떻게 뒷받침하고 있는지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은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한 뒤 지금은 100만 명이 넘는 어르신이 그 혜택을 받고 있고, 중국은 ‘거가양로(居家养老)’라는 이름으로 재택 돌봄 인프라를 도시마다 빠르게 늘려가는 중입니다. 전남 곡성에서 만난 98세 이복순(가명) 할머니는 “요양보호사가 일주일에 세 번 오는데, 그날은 꼭 목욕도 하고 말동무도 되어줘서 기다려진다”고 하셨습니다. 윈난성 리장에서 만난 100세 리슈전(가명) 할머니는 손녀와 한집에 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손녀가 매일 아침 문안을 온다, 그게 내 하루의 시작이야.” 제도의 이름은 달라도, 결국 누군가 매일 문을 두드려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이 두 분의 공통점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장수를 다루는 기사는 흔히 식단과 유전자, 의료 인프라를 조명하지만, 정작 백 년을 살아낸 분들이 먼저 떠올리는 건 밥을 같이 먹어줄 사람, 안부를 물어줄 손길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초고령사회를 준비하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도를 촘촘히 짜는 일 못지않게, 이웃과 가족이 서로의 문을 두드리는 습관을 잃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여러분은 오늘, 누군가의 안부를 물으셨습니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여쭙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식탁에 무엇을 올리셨는지, 그리고 오늘 화를 낼 뻔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흘려보내셨는지. 김순임 할머니의 된장국과 왕위란 할머니의 녹차 사이에는 국경이 있지만, 화내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이웃과 말을 섞는 하루 사이에는 국경이 없었습니다. 유전자가 수명의 20~30%를 결정한다면, 나머지는 결국 우리가 오늘 어떻게 하루를 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저는 그 텃밭과 그 광장에서 배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그들의 하루」 제16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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