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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2권 · 제11장 · 관문을 앞당기는 두 나라, 동네의원과 사구를 걷다

한중 만성질환 관리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실버 브릿지」 제2권 제11장

기사입력 기사번호 52465

저는 취재 노트에 ‘관문 전이’라는 단어를 적어두고 한동안 그 뜻을 곱씹었습니다. 병이 깊어진 뒤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병의 문턱 앞에서 미리 막아선다는 뜻이었습니다. 서울의 한 동네의원 대기실에서 혈압 수첩을 손에 쥔 어르신을 만났을 때, 저는 그 말이 통계표 안의 문구가 아니라 실제로 한 사람의 하루를 바꾸는 약속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오늘은 한국과 중국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관문’을 지키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만난 그 어르신은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본사업’에 등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이 사업은 2019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4년여의 검증을 거쳐 2024년 8월 전국 본사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동네의원에서 통합관리 서비스를 신청하면 검사, 교육, 주기적 관리를 한 곳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체감되는 것은 숫자였습니다. 의원 외래 법정본인부담률이 30%에서 20%로 낮아지고, 건강생활을 꾸준히 실천하면 연간 최대 8만 원의 건강생활실천지원금까지 받을 수 있다는 설명에, 그 어르신은 수첩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이제야 주치의가 생긴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이 작은 만남 뒤에는 결코 작지 않은 숫자들이 있었습니다. 2023년 한국의 만성질환 진료비는 90조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84.5%를 차지했고, 같은 해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27만 5,183명, 전체 사망의 78.1%에 달했습니다. 19세 이상 성인 고혈압 유병률은 20.0%, 인지율 71.2%, 치료율 66.9%였습니다. 단일 질환 진료비로는 본태성 고혈압이 4.4조 원, 2형 당뇨병이 3.1조 원으로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습니다. 65세 이상 어르신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551만 원으로 전체 평균의 2.4배에 이릅니다. 숫자로만 보면 무겁지만, 저는 이 통계 안에 그 어르신처럼 수첩을 들고 병원 문턱을 넘는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같은 질문을 들고 중국을 취재했을 때, 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중국은 2016년부터 ‘가정의생 서명 서비스’를 전국적으로 추진해왔습니다. 사구위생서비스중심, 그러니까 한국의 보건소에 해당하는 기관을 중심으로 주민이 가정의생 팀과 계약을 맺고 만성질환 관리와 건강 상담을 받는 구조입니다. 2024년 기준 기층 의료기관에서 관리되는 고혈압 환자는 1억 1,537만 명, 당뇨병 환자는 4,087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현지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저는 ‘签而不约(서명은 했지만 약속은 없다)’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습니다. 서명은 했지만 실제 서비스는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이었습니다. 가정의생 인력 부족과 주민의 낮은 제도 인식이 겹친 결과였습니다. 반면 선전에서는 5,130개 가정의생 팀이 약 700만 명의 주민을 담당하며 고혈압 환자의 85.5%, 당뇨병 환자의 79%가 사구기관에서 진료를 받고 있었으니, 같은 제도 안에서도 도시와 농촌의 거리는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저는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서야 비로소 각 나라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규모는 작아도 촘촘한 ‘동네의원 주치의’ 모델로 관리의 질을 끌어올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중국은 14억 인구를 감당해야 하는 만큼 사구 기반의 대규모 관리와 디지털 혁신이라는 두 바퀴를 동시에 굴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고혈압 조절률에서 한국은 50.4%로 중국의 16.8%를 크게 앞섰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만성질환 관리 시장은 2019년 1,102억 위안에서 2023년 4,763억 위안으로 4배 넘게 성장했고, 알리건강이나 핑안하오이생 같은 플랫폼이 AI 모니터링과 원격 처방, 약물 배송을 하나로 묶어내는 속도는 한국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누가 더 낫다고 말하기보다,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결핍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메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버 브릿지 데이터 그래프

이 흐름의 배경에는 두 나라 모두를 짓누르는 인구 구조가 있습니다. 한국은 2025년 고령인구 비율이 20.3%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고, 중국 역시 60세 이상 인구가 약 2.97억 명, 전체의 21.1%에 이릅니다. 중국 65세 이상 노인의 66.3%가 하나 이상의 만성질환을 지니고 있다는 조사 결과 앞에서, 저는 이것이 더 이상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 두 나라 모두의 재정과 노동력, 가족 돌봄 구조를 흔드는 공통 과제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2025년 11월 중국 국가위건위가 ‘기층 만성질환 건강관리 서비스 능력 건설 지침’을 발표하며 디지털 기술과 기층 의료의 융합을 공식 정책 방향으로 못 박은 것도 같은 절박함에서 나온 결정이었을 겁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병이 깊어지기 전에 문턱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부모님의 혈압 수첩을, 혹은 나 자신의 건강검진 결과지를 마지막으로 들여다본 것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동네의원이 되었든 사구위생서비스중심이 되었든, 그 문턱을 함께 넘어줄 사람 한 명을 곁에 두는 일이 노후를 준비하는 가장 조용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그들의 하루」 제11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양국의 통계와 현장의 목소리를 더 깊이 만나고 싶으신 분은 위아북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2-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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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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