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미희 칼럼니스트

왜 하필 향기일까 — 마음보다 먼저 반응하는 감각
돌봄의 하루는 대개 소리와 손끝으로 채워집니다. 부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약봉지를 뜯고, 식은 국을 다시 데우고, 흘린 물을 닦습니다. 그렇게 눈과 귀와 손은 온종일 바쁜데, 정작 ‘나’라는 사람의 기분을 챙길 틈은 좀처럼 나지 않지요. 마음을 다독이자고 다짐해도, 그 다짐마저 또 하나의 숙제처럼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향기가 반가운 건 그래서입니다. 향은 머리로 애써 생각하기 전에 먼저 코끝에 닿습니다. 라벤더 다발을 스칠 때, 갓 자른 레몬 껍질을 만질 때, 우리는 ‘이제부터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지’ 하고 결심하지 않아도 어느새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게 되지요. 오래전 어느 부엌 냄새나 여름 저녁의 풀 내음이 문득 떠오르기도 합니다. 향은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마음을 살짝 건드려 주는, 가장 수고가 적게 드는 자기돌봄의 통로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고 싶습니다. 아로마는 약이 아니고, 무언가를 낫게 하거나 병을 막아 주는 것도 아닙니다. 향기가 하는 일은 그보다 소박합니다. 지친 하루의 한복판에서 잠깐 숨을 고르게 하고, ‘지금 이 순간의 나’로 돌아오도록 곁을 지켜 주는 것. 그 작은 역할만으로도 향기는 충분히 소중합니다.
거창한 준비는 필요 없습니다 — 작은 병 하나로 충분해요
아로마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복잡한 준비물과 어려운 이름들이 떠올라 지레 물러서게 됩니다. 향들의 이름을 다 외워야 할 것 같고, 값비싼 도구를 갖춰야 할 것 같아 시작 전부터 피곤해지지요. 하지만 저는 거꾸로 권하고 싶습니다. 딱 하나, 마음에 드는 향 한 병에서 시작하시라고요. 여러 개를 늘어놓고 헤매느니, 오래 곁에 둘 향 하나를 정성껏 고르는 편이 훨씬 다정한 시작입니다.
향을 고를 땐 효능표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습니다. 매장이나 시장에서 뚜껑을 열고 코끝에 가만히 대 보세요. 맡는 순간 어깨가 살짝 내려가는 향,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놓이는 향이면 그걸로 된 겁니다. 흔히 라벤더는 포근하고, 레몬이나 오렌지 같은 감귤 향은 산뜻하며, 페퍼민트는 코가 시원하게 트이는 느낌을 준다고들 하지요. 무엇이 맞고 틀린 게 아니라, 오늘의 내 코가 반기는 향이 정답입니다.
향을 즐기는 방법도 어렵지 않습니다. 화장지나 손수건에 한 방울 떨어뜨려 머리맡에 두어도 좋고, 따뜻한 물을 담은 그릇에 한두 방울 떨어뜨려 김과 함께 향이 퍼지게 해도 좋습니다. 다만 원액을 피부에 곧바로 바르는 일은 피하시고, 어르신이나 어린아이, 반려동물이 함께 지내는 공간이라면 향을 아주 옅게 쓰는 편이 안심됩니다. 향은 진할수록 좋은 게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할 때 가장 오래 곁에 머무릅니다.
하루의 문을 여는 세 번의 향기
같은 향이라도 언제 맡느냐에 따라 마음에 남기는 결이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를 세 번의 향기로 나눠 두기를 좋아합니다. 아침, 한낮, 그리고 밤. 정해진 규칙은 아니지만, 이렇게 매듭을 지어 두면 종일 흘러가 버리기 쉬운 하루 속에 나만의 쉼표가 생깁니다.
아침에는 눈뜨자마자 커튼을 걷고, 감귤처럼 산뜻한 향을 한 번 들이쉬어 보세요. 밤사이 무거웠던 머릿속이 조금 가벼워지고, ‘자, 오늘도 시작이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시간이 됩니다. 한낮, 돌봄이 유난히 고단한 순간에는 손수건에 밴 향을 잠깐 코에 대고 숨을 세 번만 천천히 쉬어 보세요. 부모님이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물으실 때, 약 시간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질 때, 그 짧은 세 번의 호흡이 올라오던 감정을 한 뼘쯤 가라앉혀 줍니다.
그리고 밤. 하루 중 가장 나를 위해 쓰고 싶은 시간이지요.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거나 불을 조금 낮춘 방에서 라벤더처럼 포근한 향을 곁에 두면, 온종일 팽팽했던 마음이 서서히 풀립니다. 이 밤의 향은 ‘오늘도 참 애썼다’고 나에게 건네는 조용한 인사입니다. 향이 대단한 걸 해 주어서가 아니라, 그 향을 맡는 잠깐 동안만큼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냈다는 사실이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향기는 함께 나눌 때 더 깊어집니다
돌봄은 혼자 짊어지기 쉬운 일입니다. 그래서 자기돌봄이라 하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떠올리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향기는 나눌 때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곁에서 돌보는 부모님과 함께 향을 맡으며 이야기를 건네다 보면, 돌봄이 잠시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바뀌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를테면 감귤 향을 맡으며 ‘어머니, 예전에 겨울마다 귤 까 드시던 그 방 기억나세요?’ 하고 물어보는 겁니다. 향은 오래된 기억을 살며시 불러오는 열쇠가 되곤 하지요. 정확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함께 코를 대고 웃고, 옛 이야기를 떠올려 보는 그 시간 자체가 두 사람 모두에게 따뜻한 자극이 됩니다. 애써 무언가를 기억해 내게 하려는 시험이 아니라, 그저 나란히 앉아 기억을 더듬어 보는 다정한 시간으로요.
이런 순간이 반가운 이유는,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잠시 같은 자리에 서기 때문입니다. 늘 챙겨 드리기만 하던 관계에서, 향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함께 웃는 대등한 시간이 생기는 것이지요. 향기가 특별한 효능을 주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함께 숨을 고르고, 같은 것을 느끼며 마주 보는 그 짧은 시간이 서로의 마음에 온기를 남깁니다.
오늘의 마음돌봄 실천
★☆☆오늘 밤, 화장지 한 장에 좋아하는 향을 딱 한 방울 떨어뜨려 머리맡에 두세요. 잠들기 전 코로 천천히 세 번 숨을 쉬면 됩니다. 팽팽하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는 걸 느끼실 수 있어요.
★★☆작은 손수건에 향을 한 방울 묻혀 주머니에 넣고 다니세요. 돌봄이 고단해지는 순간, 손수건을 코에 대고 ‘들이쉬고—내쉬고’를 세 번 반복합니다. 올라오던 감정을 잠시 가라앉히는 나만의 쉼표가 되어 줍니다.
★★★여유가 되는 저녁, 따뜻한 물 한 그릇에 향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 두고 부모님과 나란히 앉아 향을 맡아 보세요. ‘이 냄새 뭐 같아요?’ 하고 옛 이야기를 나누면, 돌봄이 함께 기억을 더듬는 다정한 시간으로 바뀝니다.
향은 진할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은은할 때 가장 편안합니다. 원액을 피부에 바로 바르는 것은 피하시고, 어르신·아이·반려동물이 함께 지내는 공간에서는 아주 옅게 사용하시길 권합니다. 몸에 맞지 않는 느낌이 들면 사용을 멈추시고 창을 열어 환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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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테라피스트이자 한국셀프힐링협회에서 활동하는 김미희 칼럼니스트는 부모님 돌봄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돌보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다독이는 글을 씁니다. 코리안투데이 인천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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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희 기자: incheonsouth@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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