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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5권 · 제16장 · 자리를 권받은 어르신의 47.3%가

기사입력 기사번호 58120

지하철 경로석 앞에서 어르신이 자리를 권유받고 손사래를 치는 장면을 여러분도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저는 이번 장을 정리하며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서울노인복지센터가 2024년에 65세 이상 어르신들께 물었더니 47.3%가 “자리를 양보받을 때도 부담스럽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숫자 앞에서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양보받는 일이 왜 부담일까요. 자리를 내미는 마음은 분명 공경일 텐데, 받는 쪽에서는 “이제 앉아 계셔야 할 사람”이라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책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한국의 연령편견은 경로사상(敬老思想)의 이면에 숨어 있어서, 겉으로는 노인을 공경하면서 실제로는 ‘은퇴하고 조용히 계셔야 할 존재’로 역할을 고정시킨다고요. 정중한 경어 속에 ‘당신은 이미 뒷방 세대’라는 메시지가 함께 실려 간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쓰면서 제 마음도 조금 찔렸습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오늘은 「실버 브릿지」 제5권의 ‘함께 성장: 연령편견 깨기’ 장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숫자부터 옮깁니다. 통계청의 2025 고령자 통계에서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1,051만 4천 명, 전체의 20.3%로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2050년에는 40%에 이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같은 해 성인 11.7%는 인권침해를 가장 많이 받는 집단으로 노인을 꼽았습니다. 세대갈등 인식 지수는 2.7점으로 전년보다 0.1점 올랐고, 고령층 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인 40%대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노인의 수는 늘어나는데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만큼 넓어지지 않았습니다. 책에는 이것을 양적 증가와 사회적 인식이 반비례한다고 적었습니다.

바다 건너 중국의 풍경은 결이 달랐습니다. 중국은 2024년 인구가 3년 연속 줄었지만 60세 이상 인구는 2.97억 명으로 가파르게 늘고 있고, 2050년에는 4억 명, 전체의 약 30%에 이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먼저 사회 문제가 된 것은 노인 차별이 아니라 중년 차별이었습니다. 채용공고에 ’35세 이하’가 공공연히 적히는 ’35세 현상(35岁现象)’입니다. 중국청년보 사회조사센터가 화이트칼라 약 2,000명에게 물었을 때 86%가 “여성은 30세를 넘으면 커리어 기회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답했습니다. 공무원 공채에도 35세 상한이 있고, IT 대기업에서는 ’35세 정리해고’가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한국은 ‘존경’의 이름으로 어르신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중국은 ‘효율’의 이름으로 중년을 내몹니다. 방향은 반대인데 뿌리는 같다고 저는 봅니다. 사람의 값을 생산성으로 재던 산업사회의 관성입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중국이 고령화로 일손이 모자라면서도 35세 넘은 사람들을 채용 시장 밖으로 밀어낸다는 점입니다.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이를 ‘인적자본의 막대한 낭비’라고 지적했습니다. 법의 빈자리도 눈에 띕니다. 한국에는 2009년부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이 있지만 50대 이후 재취업의 문턱은 여전히 높고, 중국에는 연령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없어 2013년 노인권익법만 있습니다.

그래서 쑤저우의 이야기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2024년 10월 인민일보가 소개한 ‘세대통합 양로(代际融合养老)’ 시범사업입니다. 청년 자원봉사자가 요양시설에 입주해 어르신과 함께 살면서 문화·건강·심리 지원을 하고, 그 대신 저렴한 주거를 얻습니다. 쑤저우에서만 140명이 넘는 어르신이 이 혜택을 받았고 상하이·항저우·청두로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청년이 어르신께 스마트폰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는 동안, 어르신은 청년에게 마흔 해 인생 경험을 건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복지’라는 말이 잠깐 낯설어졌습니다.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교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업의 본질을 호혜(互惠)라고 이해했습니다. 어르신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두면 어르신은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되고 청년은 주기만 하는 사람이 됩니다. 쑤저우에서는 양쪽 모두 얻는 것이 있습니다. 위챗이나 카카오톡 같은 디지털 도구가 세대 사이의 접촉면을 넓히면 오프라인의 고정관념도 조금씩 풀린다는 점도 책에 적었습니다. 말도 조심해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老人’ 대신 ‘银发族’나 ‘新中年’을 쓰고, 한국식 ‘어르신’을 그대로 옮기면 오히려 거부감을 줄 수 있습니다. 한국식 효도의 틀은 중국 MZ세대에게 가족의 압박으로 읽히기도 해서 ‘효’보다 ‘동반·교류’로 다시 옮겨야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에이지즘을 “나이를 근거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고정관념에 기반한 판단과 차별을 가하는 모든 행위”로 정의합니다. 2023년 WHO 글로벌 에이지즘 보고서는 이것이 제도뿐 아니라 언어와 일상의 습관까지 바꿔야 풀린다고 말합니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중국은 60세 이상이 4억 명으로 늘어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한국에는 50+재단의 세대통합 사업이, 중국에는 쑤저우의 시도가 있습니다. 두 나라가 서로의 시행착오를 미리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은 작지 않은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나이를 이유로 누군가를 조금 일찍 ‘그럴 만한 사람’으로 분류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저 역시 자리를 권하면서 그런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고 자신하지 못합니다. 다음에 경로석 앞에서 망설이게 되면 자리를 권하는 데 더해 “어디까지 가세요?” 하고 말을 한마디 건네 보면 어떨까요. 양보가 배제로 흐르지 않으려면 대화가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자리 쪽으로 걸어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음 세대에 물려줄 가장 귀한 유산은 재산이 아니라, 나이를 벽이 아닌 자원으로 여기는 문화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16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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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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