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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9월 18일 – 마이애미를 삼킨 대허리케인, 경성 신청사는 완공 열사흘 전이었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8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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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오늘 · 오전판
1926년 9월 18일 토요일 · 오전 10시 10분
1926년 9월 18일 토요일, 경성은 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초가을 문턱에 서 있었다. 광화문 안쪽 신청사 공사장엔 여전히 벽돌과 발판이 쌓여 있었고, 낙성식까지는 이제 열사흘. 그런데 같은 날 새벽, 태평양 건너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사상 손꼽히는 폭풍 하나가 마이애미를 덮치고 있었다. 🕙 10시 10분,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오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날의 경성

광화문 안쪽, 총독부 신청사 공사장은 이날도 분주했다. 지난해 12월 골조를 다 올리고 올 1월 4일 시무식까지 마쳤지만, 정작 완공을 알리는 낙성식은 10월 1일로 잡혀 있었다. 그러니 9월 18일은 딱 열사흘 전. 석조 외벽에 마지막 손질을 하는 인부들의 망치질 소리가 근정전 뒤편까지 울렸다.

같은 시각, 성북 안암동 산기슭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이 제작비 1,200원을 대어 찍고 있는 영화, 훗날 조선 영화의 전설이 될 ‘아리랑’이었다. 넉 달째 이어지는 촬영 현장에서 나운규는 각본을 쓰고 연기를 하고 연출까지 도맡았지만, 정작 감독 자리에는 일본인 스모리 슈이치의 이름을 내걸어야 했다. 검열의 눈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개봉은 신청사 낙성식과 같은 날인 10월 1일, 종로 단성사로 잡혀 있었다.

한편 열흘 전인 9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는 조선일보 필화사건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달 22일 자 칼럼 ‘횡설수설’이 문제가 되어 글쓴이 최원순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편집 겸 발행인 김철중은 신문지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붓 한 자루 놀린 대가치고는 무거웠다.

경성과 한반도

경성 밖 소식도 무거웠다. 목포에서는 부두 노동자들의 파업이 여덟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임금을 올려 달라는 요구는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하루하루를 버티며 싸움을 이어갔다.

경성지방법원 예심정에서는 지난 6월 만세를 부르다 붙잡힌 학생들의 조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6월 25일 열한 명이 기소된 뒤 석 달 가까이 예심이 이어졌고, 정식 공판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이병립, 박하균 같은 학생들은 훗날 법정에서 “이 일의 뜻은 세 자짜리 어린아이도 안다”고 당당히 말하게 된다. 하지만 9월 18일 그날은 아직, 차가운 취조실 안에서 조용히 버티는 시간이었다. 노동과 저항, 두 가지 무게가 그해 가을 한반도를 여전히 짓누르고 있었다.

그날의 세계

이날 세계에서 가장 큰 소식은 단연 미국 플로리다였다. 9월 18일 새벽, 손꼽히는 허리케인이 마이애미 해안을 덮쳤다. 오전 6시 무렵 폭풍의 눈이 도심을 지나가며 35분 남짓 하늘이 잠잠해지자, 폭풍이 끝난 줄 알고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7시가 되자 반대편에서 더 거센 바람과 함께 파도가 밀려들었다. 오키초비 호수 제방까지 무너지면서 미국 적십자는 사망자 372명, 부상자 6천 명 이상, 집을 잃은 사람이 2만 5천 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유럽에서는 사흘 전인 9월 14일 로카르노 조약이 정식으로 발효됐고, 독일은 그보다 앞선 9월 8일 국제연맹 상임이사국 자리를 얻었다. 바로 전날인 17일에는 프랑스의 브리앙과 독일의 슈트레제만이 스위스 트와리에서 손을 맞잡았다. 전쟁을 겪은 두 나라가 조금씩 화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의 북벌이 한창이었다. 이미 9월 6일 한양을, 다음 날인 7일엔 한커우를 손에 넣었고, 남은 우창성만 여전히 포위망 안에 있었다.

경성 24시

토요일 저녁, 광화문 공사장의 인부들은 품삯을 받아 들고 하나둘 흩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돌을 깎고 벽돌을 나르던 손끝은 갈라지고 부르텄지만, 열사흘 뒤면 그 자리에서 낙성식이 열린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안암동 촬영장에서는 해 질 무렵까지 카메라가 돌았다. 산기슭에 세운 세트 앞에서 나운규는 몇 번이고 같은 장면을 다시 찍었다. 필름이 귀하던 시절, 한 컷 한 컷이 아까웠지만 완성될 작품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종로 거리 서점가와 극장 앞에는 토요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오갔다. 신문팔이 소년들은 조간에 이어 석간까지 목청껏 외치며 골목을 누볐고, 카페에서는 축음기 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전차가 종을 울리며 지나가는 사이, 하루의 노동을 마친 사람들은 저마다의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100년의 거울

100년이 지난 오늘과 견줘 보면 어떨까. 1926년 광화문 뒤편에 올라가던 석조 건물은 훗날 정부 청사로, 다시 박물관으로 쓰이다 1995년 철거됐다. 반면 나운규가 안암동에서 찍던 무성영화 한 편은 100년 뒤 K-무비, K-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스크린과 안방을 채우고 있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날 필름 위에 새긴 이야기의 힘은 오히려 자라났다.

구분 1926년 2026년(오늘)
영상 콘텐츠 무성영화, 필름 한 컷도 귀함 K-드라마·K-무비, 전 세계 동시 스트리밍
도심 랜드마크 건립 중인 총독부 신청사 복원된 경복궁·광화문 일대
재해 대응 허리케인 경보, 반나절 전 발령 위성으로 며칠 전 경로 예측
내일 9월 19일 일요일, 경성은 또 다른 하루를 맞는다. 신청사 낙성식까지 남은 날은 이제 열이틀, 안암동 촬영장의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갈 것이다. 🕙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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