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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9월 15일 – 총독부 신청사 완공 열엿새 전, 조선공산당 사건 공판이 계속되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7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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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오늘] 1926년 9월 15일

총독부 신청사 완공 열엿새 전, 조선공산당 사건 공판이 계속되다
10:10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926년 9월 15일 수요일

1926년 9월 15일, 수요일. 경성은 초가을 볕 아래 분주했다. 광화문 옆 총독부 신청사 공사장에서는 인부들의 손길이 바빴다. 완공까지 남은 날은 열엿새. 한편 경성지방법원 공판정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흘 전 시작된 조선공산당 사건 공판을 보려는 발걸음이었다. 법정 안팎이 술렁였다.

그날의 경성

경성지방법원 공판정은 사흘째 문을 열었다. 조선공산당 사건, 이름하여 제1·2차 조선공산당 사건의 공판이었다. 지난 6월, 순종의 인산일에 맞춰 일어난 6·10 만세운동 뒤로 화요회 계열의 조선공산당원들이 무더기로 잡혀갔다. 그 수가 백 명에 이르렀다. 이날도 방청석은 가득 찼다. 가족과 동무들이 이른 아침부터 법정 문 앞에 줄을 섰다. 경찰은 방청권을 나눠 주며 사람들을 통제했다. 변호인들은 치안유지법 적용의 부당함을 짚었지만, 재판은 예정대로 이어졌다.

같은 시각, 광화문 옆에서는 총독부 신청사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완공까지 남은 날은 열엿새. 10월 1일 낙성식을 앞두고 인부들은 하루하루를 서둘렀다.

언론에도 그늘이 짙었다. 지난달 22일 조선일보의 칼럼 한 줄이 문제가 되어, 필자 최원순은 보안법으로, 발행인 김철중은 신문지법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달 8일 열린 공판에서 검사는 각각 징역 8개월과 금고 6개월을 구형했다. 두 사람 모두 선고를 기다리는 처지였다.

경성과 한반도

공산당 사건은 경성만의 일이 아니었다. 화요회 계열 조직원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었고, 검거 열풍은 지방까지 번졌다. 특히 전남 목포에서는 제유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싸움이었으니, 어느덧 여덟 달을 훌쩍 넘긴 셈이었다. 회사 쪽의 회유와 경찰의 압박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버텼다.

지방 신문가에서도 술렁임이 있었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시대일보의 판권을 둘러싸고 물밑에서 이야기가 오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언론과 노동, 사상 운동 모두가 한 해 내내 총독부의 감시망 아래 놓여 있었다. 경성의 법정과 목포의 공장, 두 곳 모두 같은 시대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그날의 세계

같은 날, 대서양 건너에서는 거대한 폭풍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훗날 ‘그레이트 마이애미 허리케인’이라 불리게 될 이 태풍은 9월 15일 푸에르토리코 앞바다를 지나 바하마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흘 뒤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를 정면으로 덮쳐,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참사로 이어진다.

유럽에서는 나흘 전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암살 미수 사건이 있었다는 소식이 뒤늦게 신문 지면을 오갔다. 또 한 주 전에는 독일이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으로 받아들여지며 유럽 질서 재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참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하늘 아래서도, 세계는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경성 24시

수요일 아침, 경성의 학교들은 여느 때처럼 문을 열었다. 그러나 교문 안팎의 공기는 사뭇 달랐다. 법정에 선 피고인 가운데는 얼마 전까지 교실에 앉아 있던 이들도 섞여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공판 소식이 낮은 목소리로 오갔다.

한낮, 종로 거리의 서점가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신문을 사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공판 기사를 읽으려는 사람들이었다. 해거름 무렵에는 법정을 나선 변호인과 가족들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밤이 되자 경성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고요 밑에는, 다음 날 다시 열릴 공판을 기다리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100년의 거울

100년 전 오늘, 조선 사람들은 신문지법과 치안유지법이라는 이름의 그물 아래 살았다. 칼럼 한 줄에도 재판을 받았고, 사상을 이유로 백 명 가까이가 한꺼번에 잡혀갔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항목 1926년 조선 2026년 오늘
언론 자유 신문지법·보안법으로 검열, 정간·구속 다반사 헌법상 언론·출판의 자유 보장
집회·결사 치안유지법으로 사상단체 활동 자체가 처벌 대상 평화적 집회·결사 자유 원칙 보장
재판 방청 방청권 배부, 경찰이 인원 통제 공개재판 원칙, 누구나 방청 가능
청년·학생 사상운동 참여만으로 검거·퇴학 위험 표현의 자유, 정치 참여 자유

법정 문턱을 넘던 100년 전 그 발걸음들이, 오늘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자유의 밑거름이 되었다.

내일, 9월 16일에도 경성지방법원의 공판은 계속될 예정이다. 총독부 신청사 완공까지는 이제 열닷새.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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