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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전체기사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中文 日本語 Tiếng Việt

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2권 · 제2장 · 베이징 후통에서 만난 노년, 두유 한 잔의 온기

300년 골목이 지켜온 3억 노인의 돌봄, 서울은 무엇을 배울까

기사입력 기사번호 52461

새벽 다섯 시, 베이징 둥청구의 좁은 골목에서 저는 태극권을 하는 노인들과 마주쳤습니다. 취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길을 잃어 들어선 골목이었습니다. 찐빵과 두유를 나누던 할머니 한 분이 낯선 동양인 여자를 보고는 손짓으로 저를 불러 세우셨습니다. “아침 안 먹었으면 이거라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 손짓 하나로 저는 이 골목의 온도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골목의 이름은 후통(胡同), 원나라 때부터 이어져 온 300년 넘은 커뮤니티였습니다. 오늘은 그 골목에서 만난 노년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사합원(四合院)이라 불리는 전통 가옥들이 늘어선 그 골목에서 노인들은 이웃과 체스를 두고, 새장을 들고 공원을 산책하며, 골목 어귀의 작은 식당에서 아침 두유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제가 만난 할머니의 손짓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평균 폭 3~5미터의 좁은 골목과 안뜰을 공유하는 사합원의 구조는 주민 간 접촉을 강제하다시피 합니다. 며칠째 보이지 않는 이웃이 있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문을 두드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후통의 비공식 돌봄 네트워크입니다.

2024년 말 기준 중국의 60세 이상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3억 명을 넘어섰습니다. 전체 인구의 22%, 3억 1,031만 명이라는 숫자입니다. 베이징만 놓고 보면 60세 이상 상주 인구가 514만 명, 23.5%에 달하고 전년보다 19만 2천 명이 늘었습니다. 80세 이상 초고령 인구도 68만 7천 명, 3.1%를 차지하며, 2035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4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 거대한 숫자를 지탱하는 것이 9073 양로 모델입니다. 노인의 90%는 재택, 7%는 커뮤니티, 3%만 시설에서 돌봄을 받는 구조로, 후통은 이 모델이 가장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실험장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실버 브릿지 데이터 그래프

서울 종로구 북촌이나 서촌의 옛 골목도 한때는 후통과 닮아 있었습니다. 낮은 담장, 좁은 길, 자연스럽게 겹치는 이웃의 삶. 하지만 재개발과 관광지화를 거치며 실제 거주 노인은 크게 줄었고, 남은 어르신들은 전국 약 6만 7천 곳의 경로당으로 모여드는 형태로 커뮤니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후통과 경로당의 차이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경로당은 모이는 공간이지만, 후통은 살아가는 공간 그 자체입니다. 저는 이 차이가 두 나라 노인 돌봄의 본질적인 격차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베이징시는 2024년 한 해에만 구역양로서비스센터 100곳을 새로 세워 476개 양로서비스역참(养老服务驿站)과 연계시켰습니다. 이 역참들이 후통 골목 구석구석에 배치되어 식사 배달, 건강 모니터링, 일상 돌봄을 원스톱으로 제공합니다. 2024년 한 해 155만 명의 노인과 32만 명의 초고령 노인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고, 재택 양로 침상도 2만 8천 장이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제가 인터뷰한 리웨이(李伟) 베이징사범대 중국공익연구원 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후통은 단순한 골목이 아니라 수백 년간 축적된 사회적 자본입니다. 이웃이 곧 돌봄이고, 골목이 곧 요양원인 셈이지요.” 저는 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그 새벽 골목에서 직접 확인했습니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3%를 넘어서며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고령자 가구 618만 7천 가구 가운데 1인 가구가 37.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다시 말해 한국 노인의 상당수는 혼자 늙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서울 구도심에서도 젊은 세대의 유출로 자연 발생적인 노인 밀집 지역이 늘고 있지만, 후통과 같은 커뮤니티 기반 돌봄 인프라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돌봄은 시설 중심과 방문 요양이라는 두 축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일상적인 교류와 정서적 돌봄 사이에 빈틈이 남습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골목 단위의 촘촘한 실행 모델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고 저는 느낍니다.

시청구의 부모식당(父母食堂)처럼 스마트폰 하나로 메뉴를 고르고 결제하고 배달까지 받는 식사 지원 플랫폼이 15개 가도, 263개 커뮤니티에서 259곳이나 운영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자꾸 서울의 무료 급식소를 떠올렸습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로 가야만 밥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와, 집에서 5분 거리에서 돌봄을 받는 구조는 거동이 불편한 초고령 노인에게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우리는 노인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까요. 독자 여러분의 동네에는, 며칠째 보이지 않는 이웃의 문을 두드려 줄 사람이 있습니까.

베이징 후통의 노년 생활은 결코 첨단이 아닙니다. 냉난방이 불편한 오래된 집, 공동 화장실, 좁은 골목.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 수백 년간 쌓인 커뮤니티 돌봄의 원형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 원형을 파괴하는 대신 양로역참이라는 현대적 장치를 이식하는 길을 택했고, 그 골목에서 저에게 두유를 건네주시던 할머니의 손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그들의 하루」 제2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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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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