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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3권 · 제4장 · 제가 만난 칠순 어르신의 떨림, 한중 노년을 노리는 그림자

기사입력 기사번호 53733

실버 브릿지 · 제3권 제4장 (hero)

지난달 구로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칠순의 어르신 한 분을 저는 오늘까지도 잊지 못합니다. 그분은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한참을 망설이시다가, “검찰이라고 하는데 제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대요”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습니다. 다행히 그날은 옆자리 친구분이 “그거 사기야, 끊어”라고 단호하게 말려주신 덕분에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의 어르신 눈빛 —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그 표정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었습니다. 오늘은 그 만남에서 시작된, 한국과 중국의 실버세대를 겨냥한 금융사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 어르신께 걸려온 전화는 결코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부터 검찰·경찰·금융감독원을 사칭하는 ‘기관 사칭형’ 사기가 전체의 51%를 차지하며 최대 유형으로 올라섰다고 합니다. 어르신들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높기에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말에 쉽게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날 경로당에서 제가 느낀 것은, 이것이 단순한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성실하게 법과 질서를 믿고 살아오신 세대의 선의가 오히려 약점이 되어버린 현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상황은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2024년 한국의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8,545억 원으로, 전년(4,472억 원) 대비 91%나 급증했습니다. 60대 이상 피해자 비율은 2020년 16%에서 2024년 25%, 그리고 2025년 상반기에는 30.6%까지 치솟아 피해자 세 명 중 한 명이 어르신인 셈이 되었습니다. 건당 평균 피해금액도 2024년 2,813만 원에서 2025년 1분기 5,301만 원으로 거의 두 배 뛰었습니다. 한 건의 전화가 한 사람의 평생 노후자금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저는 이 숫자들 앞에서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중국에서 만난 사례들은 규모 면에서 저를 더 크게 놀라게 했습니다. 2024년 중국 전역에서 전신사기 사건은 213만 건 이상 발생했고, 직접적인 경제 손실만 970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8조 원에 이릅니다. 특히 ‘양로사기(养老诈骗)’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범죄는 양로산업 투자, 수집품 판매, 건강식품, 노인 진료 서비스를 내세워 어르신들의 ‘양로전(养老钱)’과 ‘치병전(治病钱)’을 노립니다. 대련의 산하이그룹 사건은 무려 18년에 걸쳐 60만 명에게서 244억 위안, 약 4.6조 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고, 후베이성의 한 사건은 3,000명 이상의 피해자 중 80%가 노인이었습니다. 한국의 어르신이 전화 한 통에 무너진다면, 중국의 어르신은 ‘노후를 보장해준다’는 오랜 신뢰의 이름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던 중, 산둥성의 한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78세 할머니의 말씀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습니다. 그분은 “养老钱是我们最后的尊严(양로전은 우리의 마지막 존엄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평생 모은 돈을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그 마음이, 오히려 사기범들의 표적이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저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챕터를 쓰면서 저는 “신뢰가 무기가 되는 순간, 가장 선량한 사람이 가장 먼저 다친다”고 적었는데, 그 문장을 다시 읽을 때마다 그 할머니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저는 두 나라의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서, 이 범죄의 본질이 결국 같은 곳을 겨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디지털 환경에 적응이 느린 세대의 정보 격차를 파고들고, 권위에 대한 신뢰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무기로 삼는다는 점입니다. 그 어르신께서 그날 저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예방이라는 것이 결국 제도보다 먼저 ‘말할 수 있는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저는 그 만남을 통해 배웠습니다.

고령화 속도로 보면 두 나라는 이미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중국 역시 60세 이상 인구가 2024년 기준 3억 1,000만 명을 돌파해 전체 인구의 22%를 차지합니다. 한국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으로 노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 애쓰는 동안, 중국은 여전히 ‘养老靠儿女(노후는 자식에게 의지한다)’는 전통적 효 문화와 급속히 붕괴하는 대가족 구조 사이에서 균열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이 균열이야말로 사기범들이 파고드는 틈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도가 못 채운 자리를 ‘내가 알아서 해결하겠다’는 어르신들의 조용한 결심이 메우고, 그 결심이 다시 범죄의 표적이 되는 악순환 말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노후 자금을 누구와 상의하고 계신가요. 혹시 그 상의 상대가, 통장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는 낯선 목소리는 아닌지 한 번쯤 여쭤봐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적 대응도 조금씩 촘촘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100만 원 이상 현금 인출 시 30분을 지연시키는 ‘지연인출제도’를 시행해, 그 짧은 시간 동안 가족에게 연락하거나 냉정을 되찾을 여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반사기센터를 중심으로 2024년 한 해 사기 전화 46.9억 건, 문자 33.7억 건을 차단하고 1.09억 명의 국민에게 사전 경고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피해금 환급률은 여전히 48% 수준에 머물고, 중국 역시 14억 인구와 광활한 국토 앞에서 지역별 편차를 완전히 메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두 나라 모두가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 부모님이나 가까운 어르신께 전화를 걸어 “요즘 이상한 전화 오신 거 없으세요?”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AI 음성 합성으로 자녀 목소리까지 흉내 내는 시대에,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함께 알아가야 합니다. 그날 경로당에서 제가 배운 것도 결국 그것이었습니다 — 어르신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는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라, 매일 건네는 안부 한마디라는 사실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돈과 관계」 제4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양국의 금융사기 실태와 예방 전략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3-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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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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