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10월 13일 화요일, 경성. 완연한 가을 햇살 아래 남대문통과 경성역 둘레가 아침부터 술렁였다. 이틀 뒤 남산에서 조선신궁 진좌제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고, 이세신궁에서 온 칙사가 바로 이날 경성역에 닿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마다 순사가 늘어섰고, 문을 닫아건 가게도 눈에 띄었다.
그날의 경성
이날 경성역에 도착한 이는 이세신궁에서 파견된 칙사, 소노이케 사네야스 자작이었다. 그는 메이지 천황이 쓰던 거울과 검, 그리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신체를 모시고 왔다. 이틀 뒤인 15일, 남산 중턱에 새로 지은 조선신궁에서 이 신체를 모시는 진좌제가 거행될 예정이었다.
경기도 경찰부는 이미 이달 초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각 경찰서장을 불러 모아 구역을 나누고, 사복 경찰까지 곳곳에 심어두었다. 그리고 칙사가 경성역에 내리는 이날과 진좌제가 열리는 15일에는 경성의 경찰관을 남김없이 거리로 내보내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수상해 보이면 누구든 붙잡아들이라는 지침이었다.
당시 신문은 “조선신궁에 봉축하는 뜻을 표하고자” 시장 상인들이 이날 하루 가게 문을 닫기로 했다고 전했다. 자발적인 결정이라 적혔지만, 총출동한 경찰과 삼엄한 경계 한복판에서 나온 “자발”이었다.
경성과 한반도
조선신궁은 경성 한 곳만의 일이 아니었다. 총독부는 이보다 앞서 조선 곳곳에 크고 작은 신사를 세워왔고, 관공서와 학교에는 참배를 독려하는 지침이 잇따라 내려가던 참이었다. 남산의 조선신궁은 그 정점에 놓인 상징이었다.
한편 지방에서는 여전히 다른 걱정이 컸다. 지난 7월 한강을 덮친 을축년 물난리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았다. 전국에서 죽은 사람만 647명, 무너지거나 떠내려간 집이 2만 3천여 호, 물에 잠긴 집도 4만 6천여 호에 이르렀다. 피해액은 1억 300만 원, 총독부 한 해 예산의 절반을 훌쩍 넘는 액수였다. 관보다 신문사와 청년회의 의연금 모금이 구호의 큰 몫을 떠안고 있던 그 무렵, 경성은 신궁 봉축 채비에 경찰력을 쏟고 있었다.
그날의 세계
같은 날 유럽 스위스 로카르노에서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대표들이 모여 국경 불가침을 다짐하는 조약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5일부터 시작된 이 회담은 사흘 뒤인 16일에 마무리될 참이었고, 독일의 슈트레제만과 프랑스의 브리앙, 영국의 체임벌린이 밤낮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큰 전쟁을 겪은 나라들이 서로 손을 잡아보려는 자리였다.
사흘 전인 10일에는 베이징에서 명·청 두 왕조가 쓰던 자금성이 ‘고궁박물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문을 열었다. 황제의 궁궐이 백성의 박물관이 되는 순간이었다. 같은 시각 경성에서는 다른 나라 황실의 상징을 모셔 들이는 채비가 한창이었으니, 세 도시의 풍경은 서로 사뭇 달랐다.

경성 24시
새벽, 경성 시내 경찰서마다 순사들이 소집됐다. 배치받은 구역으로 흩어지는 발걸음이 분주했다. 한낮, 경성역 둘레에서는 사복 경찰이 오가는 사람 하나하나를 눈여겨보았고, 종로 거리 가게 몇몇은 오늘 하루만큼은 문을 걸어 잠갔다. 우미관 앞을 오가던 인파도 여느 때보다 줄어든 하루였다.
저물녘이 되어도 경계는 풀리지 않았다. 밤이 깊도록 순찰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삼엄한 거리 분위기 속에서 이틀 뒤 열릴 진좌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누군가에게는 낯선 신을 모시는 낯선 하루였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조심해서 지나가야 할 하루였다.
100년의 거울
| 항목 | 1925년 | 2025년 |
|---|---|---|
| 치안 동원 | 경성 경찰 전원 총출동, 사복경찰 매복 | 필요 인력만 선별 배치 |
| 상점 영업 | 당국 뜻에 맞춘 “자율” 휴업 권유 | 영업 여부는 전적으로 상인 자율 |
| 국가 상징 | 타국 황실의 신체를 강제로 봉안 | 국가 상징은 국민 합의로 정함 |
| 경계의 명분 | “봉축”이라는 이름의 감시 | 시민 안전을 위한 협조 요청 |
100년 전 경성의 화요일은 낯선 신을 모시기 위해 도시 전체가 감시망 아래 놓인 하루였다. 오늘의 화요일, 도심의 경찰은 시민을 지키기 위해 선다. 같은 ‘경비’라는 낱말이 가리키는 방향이 이렇게 달라졌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 10월 14일은 진좌제를 하루 앞둔 날이다. 남산의 신궁 마당은 마지막 채비로 분주할 것이고, 경성 거리의 긴장도 한층 더할 것이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