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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3권 · 제15장 · 구로동 공원 벤치에서 만난 고독, 한중 노인이 함께 앓는 통병

기사입력 기사번호 54522

실버 브릿지 · 제3권 제15장 (hero)

지난가을, 구로동의 작은 근린공원을 지나다가 벤치 하나에 오래 눈이 머문 적이 있습니다. 한 어르신이 해가 다 기울도록 혼자 앉아 계셨는데, 곁에 아무도 없이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말을 걸어볼까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옆에 앉아 인사를 건넸던 그 순간이, 제가 「실버 브릿지」 제15장 ‘고독감: 현대노인의 통병’을 쓰게 된 계기였습니다. 오늘은 그날의 벤치에서 시작해, 한국과 중국 두 나라 노인들이 똑같이 앓고 있는 이 ‘보이지 않는 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어르신은 자식들과 왕래가 뜸해진 지 오래라고 하시면서도, “짐이 되기 싫어서 먼저 연락은 안 한다”고 담담히 말씀하셨습니다. 챕터에 적었듯 “체면 문화가 도움 요청을 가로막는다”는 문장은 바로 그 대화에서 나온 것입니다. 수십 년 부양자였던 사람이 어느 순간 도움을 청하는 쪽이 되는 일을, 저는 그 어르신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은퇴가 곧 사회적 죽음처럼 느껴진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젊어서는 공장에서, 나이 들어서는 경비원으로 평생을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그분에게, 더 이상 아무도 출근을 기다리지 않는 하루하루는 낯선 형벌과도 같았습니다.

취재를 이어가며 숫자를 들여다볼수록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2024년 한국의 65세 이상 독거노인 비율은 23.7%, 시니어 네 명 중 한 명이 혼자 삽니다. 같은 해 고독사 사망자는 3,924명으로 전년보다 7.2% 늘었고, 60세 이상의 사회적 고립도는 39.4%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습니다. 독거노인이 스스로 ‘건강하다’고 답한 비율은 34.2%로, 노인 부부 가구의 48.6%보다 14.4%포인트나 낮았습니다. 혼자 산다는 사실 자체가 몸까지 갉아먹고 있다는 뜻이어서, 이 숫자를 자료로만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만난 풍경은 조금 달랐습니다. 안후이성의 한 농촌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는 자녀 셋이 모두 상하이와 선전으로 떠났고, 명절에만 얼굴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런 처지를 ‘공소노인(空巢老人)’, 즉 빈 둥지에 남겨진 노인이라 부릅니다. 2023년 기준 1.2억 명, 전체 노인의 40.4%가 이 공소노인이고 그중 3,800만 명은 완전히 혼자 삽니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 할머니가 손자와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표정이 확 밝아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중국노령과학연구센터 조사에서 인터넷을 자주 쓰는 노인의 84.7%가 고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고, 자주 고독하다는 응답은 2.8%에 그쳤습니다. 물리적 거리를 디지털 연결이 메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그 할머니의 웃음에서 직접 확인한 셈입니다.

같은 병이지만 뿌리는 다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핵가족화와 은퇴 후 관계망의 단절이 문제였고, 중국은 대규모 인구 이동이 부모 세대를 문자 그대로 빈 둥지에 남겨놓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도 결과는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배우자를 잃은 독거노인일수록 고독감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점, 그리고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느낀다는 점입니다. 중국노령과학연구센터의 《중국 노령발전보고 2024》는 전체 노인의 약 25%, 인구로 환산하면 약 7,000만 명이 고독감을 느낀다고 밝혔고, 공소노인의 우울 증상 검출률은 27.8%에 달했습니다. 저는 이 두 나라를 오가며, 고독감이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책적으로도 두 나라는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한국은 2024년 고독사예방법 시행 이후 지자체별 돌봄 서비스와 AI 스피커 안부 확인 같은 기술 기반 대응을 넓혀가고 있고, 중국은 ‘9073 양로모델’—거택 90%, 커뮤니티 7%, 시설 3%—아래 스마트 양로 정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80세 이상 한국 노인의 자살률이 10만 명당 59.4명으로 전 연령대 중 압도적 1위라는 사실, 중국 농촌 노인의 고독감이 도시보다 8.7%포인트 높다는 사실은, 정책의 속도가 아직 현장의 고통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공원 벤치의 어르신께 다음에 또 오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부모 세대의 안부를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묻고 있을까요. 전화 한 통, 영상통화 한 번이 대단한 해법은 아니지만, 그 작은 연결이 하루의 고독을 얼마나 덜어주는지는 이번 취재에서 거듭 확인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도, 오랜만에 부모님이나 근처에 홀로 계신 어르신께 안부 전화 한 통, 혹은 짧은 영상통화 한 번 건네보시면 어떨까요. 대단한 해결책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감각 하나만으로도, 그날 하루의 무게는 분명 달라집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돈과 관계」 제15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양국의 데이터와 현장의 목소리를 더 깊이 만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책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3-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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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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