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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100년 전 오늘

[100년 전 오늘] 1926년 8월 10일 – 6·10 만세 취조 두 달째, 경성 법원 앞은 오늘도 뜨겁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4609

🕙 1926년 8월 10일, 화요일 아침. 경성 거리엔 늦여름 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종로 조간 가판대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두 달 전 창덕궁 앞에서 터진 만세 소리, 그 뒷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성지방법원 앞 골목은 오늘도 붐빈다.

그날의 경성

6월 10일, 순종의 국장 행렬을 따라 학생들이 만세를 불렀다. 그날 붙잡힌 사람이 전국에서 천여 명, 그 가운데 중앙고보생 58명, 연희전문생 42명, 세브란스의전생 8명, 보성고보생 7명을 비롯해 이백여 명이 재판에 넘겨질 처지에 놓였다. 여름 내내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은 이들을 불러 캐물었다. 아침이면 법원 앞으로 가족들이 몰려와 자식의 이름이 오늘 불리는지 서성이며 살폈다.

총독부는 이 사건을 크게 벌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말이 돈다. 천여 명을 다 잡아다 재판에 세우면 식민 통치가 얼마나 무리한지 드러난다는 계산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취조는 길게, 기소는 좁게 끌고 갔다. 늦더위 속에 이어지는 이 조용한 줄다리기를, 경성 사람들은 신문 사회면에서 매일 확인했다. (※ 8월 10일 당일 지면 원문은 미확인, 여름 내내 이어진 취조 정황을 종합함)

경성과 한반도

만세의 여진은 서울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방 학교에서도 뒤늦게 가담자가 드러나 조사를 받았고, 총독부는 올해 산미증식계획의 두 번째 십 개년 계획을 밀어붙이며 논과 밭을 더 갈아엎게 했다. 쌀은 늘었으나 그 쌀이 조선 사람 밥상으로 돌아오는 몫은 오히려 줄었다는 말이 저잣거리에 돌았다.

바다 건너 상해에서는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지난달부터 새 청사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안창호가 꾸린 경제후원회의 도움으로 마련한 살림집이었다. 형편은 여전히 곤궁했지만, 국망 열여섯 해가 지나도록 정부의 이름은 꺼지지 않았다.

그날의 세계

중국에서는 총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북벌 길에 올라 우창을 에워쌌다. 장제스는 맞선 군벌 쑨촨팡에게 항복하고 국민혁명군에 들어오라 권했으나 거절당했다. 남과 북으로 갈린 중국의 싸움은 이 여름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서양 건너 캐나다에서는 슬픈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노바스코샤 앞바다를 강타한 폭풍에 소형 어선 여러 척이 실종되었고, 무선 통신이 없던 배들이라 확인이 며칠씩 늦어졌다. 라하브 지역에서만 마흔여덟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신문에 실렸다. 며칠 전에는 스무 살 미국 처녀 거트루드 에덜리가 영국해협을 헤엄쳐 건넜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져, 세계는 슬픔과 놀라움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경성 24시

이른 아침, 법원 앞 골목엔 벌써 사람들이 늘어섰다. 변호사들은 서류 뭉치를 안고 검사국 복도를 바삐 오갔고, 기다리는 가족들은 담장 그늘에 몸을 붙이고 더위를 피했다. 한낮이 되면 종로 거리는 뜨거운 볕에 조용해졌다가, 해거름이 오면 다시 살아났다.

밤이 깊어지면 종로통 극장가에 불이 켜졌다. 단성사와 조선극장, 우미관 간판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활동사진 구경으로 더위를 잊으려는 이들이었다. 골목 카페에선 축음기 소리가 흘러나왔고, 광화문통 서점가는 늦게까지 불을 밝혀 두었다. 낮의 무거운 법정 이야기와 밤의 가벼운 극장 불빛, 그 사이를 오가는 것이 그해 여름 경성의 하루였다.

100년의 거울

항목 1926년 2026년
법 제도 치안유지법 아래 영장 없는 장기 취조 영장주의와 변호인 조력권 보장
재판 공개 총독부 판단에 따라 축소·비공개 공개재판 원칙, 언론 취재 보장
저녁 문화생활 단성사·조선극장의 활동사진, 축음기 카페 스트리밍 극장가와 다매체 콘텐츠
정보 확인 속도 대서양 저편 소식도 며칠씩 지연 실시간 전세계 뉴스 확인

백 년 전 경성의 법정은 침묵을 강요받았지만, 오늘의 법정은 공개와 절차로 사람을 지킨다. 그 사이를 메운 것은 다름 아닌 백 년의 싸움이었다.

내일, 1926년 8월 11일. 경성 법원가의 여름은 계속된다. 🕙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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