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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 토요일 전체기사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中文 日本語 Tiếng Việt

칼럼 장형임

[섬에서 온 인공지능] 제1권 · 제9장 · 기계가 알아듣지 못한 할머니의 한마디 앞에서 저는 받아 적기로 했습니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8092

지난주 목요일 오후였습니다. 강화 읍내에서 차로 십오 분쯤 들어간 마을, 회관 앞 평상에 할머니 서너 분이 나란히 앉아 계셨습니다. 저는 요즘 쓰는 인공지능 음성 비서를 보여드리려고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열어 드렸습니다. 한 할머니가 몸을 기울여 화면에 대고 “내일 비 오간?” 하고 물으셨습니다. 화면에는 전혀 다른 문장이 떴고, 할머니는 잠깐 저를 보시더니 “얘가 귀가 어둡구먼” 하고 웃으셨습니다.

  [코리안투데이] 마을회관 앞 평상에 앉은 할머니들 © 장형임 칼럼니스트

제가 옆에서 또박또박 “내일 비 와?” 하고 다시 물었더니, 이번에는 기계가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강수 확률이 몇 퍼센트고 오후에는 개겠다는 말이 매끄럽게 흘러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신기해하시면서도 한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쟤는 서울말만 아는구먼.” 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말이 마음 한쪽에 걸려 있었습니다.

기계의 귀가 어두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운 적이 없는 말이었을 뿐입니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적어 놓은 글과 녹음해 둔 목소리를 먹고 자랍니다. 그러니 많이 적히고 많이 불린 말은 또렷하게 알아듣고, 어디에도 적히지 않은 말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나갑니다. 할머니의 그 짧은 물음은 칠십 년 넘게 이 섬에서 살아 있었지만, 기계에게는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문장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기계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가 남겨 두지 않은 자리 같았습니다.

며칠 뒤 이장님을 만나 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장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씀하셨습니다. “요새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몇 안 남았어요.” 마을에서 옛 말투를 그대로 쓰는 분은 이제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그마저도 자식들 앞에서는 말끝을 고쳐 쓴다고 하셨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기계만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포구 근처 민박 주인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방학이라고 서울에서 내려온 손주가 할머니 말을 못 알아들어서, 자기가 옆에서 통역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손주가 그러더래요. 할머니는 왜 그렇게 말해요, 하고.” 그 집 할머니는 그 뒤로 말투를 조금씩 바꾸셨다고 합니다. 말이 사라지는 자리에는 대개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먼저 놓여 있습니다. 사전에서 지워지기 전에, 밥상 앞에서 먼저 지워집니다.

제가 들어 온 강화 말에는 짧고 단단한 데가 있습니다. 물음은 끝을 살짝 올리며 금세 끊기고, 긴 설명 대신 한마디로 상황을 다 담습니다. 물때를 기다리고 바람을 읽으며 사는 사람들의 성격이 말의 길이에까지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표준어로 옮겨 적으면 뜻은 남지만, 그 단단함과 무뚝뚝한 다정함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번역이 되지 않는 부분이 사실은 그 말의 가장 좋은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노트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마을을 다니며 들은 말을 들린 그대로 적어 둡니다. 옆에 뜻을 달고, 누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표정으로 했는지도 함께 적습니다. 이 노트가 언젠가 기계에게 읽힐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적어 두지 않으면 확실히 없어진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칼럼을 쓰면서 제가 하는 일이 결국 받아 적는 일이라는 게, 조금 우습기도 하고 조금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기술은 앞으로도 더 많은 말을 알아듣게 될 것입니다. 다만 그 목록에 무엇이 오를지는 결국 우리가 남긴 기록이 정합니다. 여러분의 고향에도 부모님만 쓰시는 말, 이제는 아무도 받아 적지 않는 말이 있으신지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들어 본 게 언제였는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어제 다시 그 마을회관에 들렀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보시더니 대뜸 물으셨습니다. “그 기계, 인제 좀 알아듣간?” 저는 아직이라고 답했습니다. 할머니는 웃으시며 평상 옆자리를 슬쩍 내주셨고, 저는 노트를 꺼내 방금 들은 그 문장부터 적었습니다.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기록은 제가 강화에서 쓰고 만든 책과 서비스에도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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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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