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저는 전남 고흥의 갯벌 마을 골목에서 101세 김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마늘을 까고 계시던 할머니는 제가 인사를 건네자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마늘 까는 일로 하루 네 시간은 손을 놀린다.”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백 년을 산 사람의 하루가 특별한 의식이나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손을 계속 움직이는 평범한 노동이라는 사실이 제게는 낯설고도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고흥에서 만난 백세인들의 하루는 다들 비슷했습니다. 보리밥이나 잡곡밥에 갯벌에서 건진 꼬막과 낙지, 된장국 한 그릇과 나물 한두 가지. 화려할 것 없는 밥상이었지만, 그 안에는 저지방·저염·고섬유·식물성 단백질이라는 네 가지 조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그 밥상을 마주하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지구 반대편이 아니라 바로 옆 나라, 중국의 장수마을 사람들도 이렇게 먹고 있을까.
그 궁금증을 안고 저는 광시 바마(巴馬)로 향했습니다. 숫자로 먼저 짚어보겠습니다. 2023년 한국의 100세 이상 인구는 사상 처음 7,634명을 넘어섰습니다. 2019년 4,874명이었으니 불과 4년 사이 56.6%가 늘어난 셈입니다. 같은 시기 중국은 60세 이상 인구가 3억 1,031만 명, 전체의 22.0%에 이르러 초고령사회 문턱을 넘었고, 중국노년학회가 인정한 ‘장수의 고향’만 100곳을 넘어섰습니다. 지역 단위로 보면 격차는 더 선명합니다. 전남 고흥은 인구 10만 명당 100세 이상이 75명으로 전국 1위였지만, 중국 선전 다펑신구 난아오가도는 무려 110.86명으로 국제 인증 기준의 7.4배에 달했습니다. 같은 ‘장수’라는 말을 쓰고 있어도, 그 밀도는 나라마다 이렇게 달랐습니다.

바마의 백세인들은 옥수수죽과 고구마, 그리고 ‘장수유’라 불리는 火麻油(대마유)에 버무린 채소로 대부분의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고흥의 보리밥·꼬막·된장국과 재료는 전혀 다르지만, 저는 그 밥상 앞에서 데자뷔를 느꼈습니다. 실제로 장쑤 루가오의 백세인 74%는 “아침과 저녁은 묽은 죽, 점심은 된밥”이라는 ‘이희일건(兩稀一乾)’ 규칙을 평생 지켜왔다고 합니다. 재료는 옥수수든 보리든 상관없었습니다. 국적도 언어도 다른 두 마을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방식으로 아침을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공통점은 ‘쉬지 않는 몸’이었습니다. 바마현 조사에서는 백세인의 80%가 100세 이후에도 집안일을, 40%는 여전히 논밭에 나가 일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김 할머니의 하루 네 시간짜리 마늘 까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곳에는 ‘은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WHO가 권장하는 주당 150분의 신체활동을, 두 마을의 노인들은 헬스장이 아니라 부엌과 텃밭에서 이미 채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만남들을 정리하면서, 왜 유전자보다 다른 것이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루가오 장수연구소가 《인민일보》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유전이 수명에 기여하는 비중은 25%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심리건강·생활습관·식사·수질·대기환경 같은 종합 요인이 결정한다고 합니다. 고흥과 바마의 백세인들에게 물려받은 유전자가 특별히 다른 게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에 죽 한 그릇을 먹고 몸을 움직이고 이웃과 눈을 맞추는 반복이 백 년을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전남대병원 연구에서 고흥 백세인의 61.9%가 스스로 건강하다고 답한 것도, 결국 몸이 아니라 마음이 단절되지 않았다는 증거로 저는 읽었습니다.
한국은 지금 65세 이상 인구가 20.3%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정수기·공기청정기 시장은 6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장수마을이 공짜로 누리는 물과 공기를, 도시에 사는 우리는 매달 돈을 내고 되사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도시 독거노인의 우울증 유병률은 32%대에 이릅니다. 고흥과 바마의 노인들이 삼대가 함께 차를 마시고 마을 행사의 주빈석에 앉는 동안, 우리는 편리함과 맞바꾸며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자주 되묻게 됩니다.
정책의 결도 두 나라가 사뭇 달랐습니다. 한국은 2008년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시행해 시설과 재가 서비스를 국가가 떠받치는 방식을 택했고, 중국은 ‘9073’ 모델이라 불리는 틀 아래 노인의 90%는 가정에서, 7%는 지역사회 돌봄으로, 나머지 3%만 시설에서 노년을 보내도록 설계했습니다. 바마 현정부가 발간한 백서에는 “장수는 재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사는 것”이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저는 그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으며, 우리가 요양 시설과 복지 예산을 늘리는 데만 골몰한 나머지 정작 ‘관계’라는 항목은 정책표에서 빠뜨리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루가오시 노령위원회 관계자도 제게 “우리는 노인을 돌본다고 말하지 않는다, 노인과 함께 산다고 말한다”고 했는데, 그 어감의 차이가 오래 남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부모님, 혹은 여러분 자신의 밥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집니다. 거창한 건강기능식품이나 값비싼 운동기구가 아니라, 오늘 저녁 묽은 죽 한 그릇과 손자의 이름을 부르는 시간이 백 년을 만드는 재료일 수 있다는 것을요. 장수는 특별한 마을에서만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무엇을 반복하며 늙어가는가의 문제라고 저는 믿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19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고흥과 바마를 오가며 만난 백세인들의 더 많은 목소리, 그리고 한중 실버산업이 이 만남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는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에서 이어가겠습니다.
THE KOREAN TODAY × WIA CODE
이 기사의 WIA Code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사실과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기본 카메라로 찍으면 스캐너 안내 페이지가 열립니다 — 기사 바로 열기
움직이는 코드(스트림) 한 장에 기사 전문(사진 포함)이 담겨 있습니다 — WIA Code 스캐너로 약 36초 비추면 폰에 저장되어 인터넷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Stream.mp4 도 여기서 받습니다.
WIA Code · 코리안투데이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