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아침, 강화읍 풍물시장 어귀에서 저는 순무김치를 파시는 할머니 한 분과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일흔둘이라는 할머니는 스마트폰을 꺼내 보이시며 “손자가 이거로 물건 팔 수 있다는데, 나는 글자 찍는 것도 겁이 나” 하고 웃으셨습니다. 손자가 깔아 준 인공지능 앱은 화면 구석에서 그대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앱을 열어 할머니 말씀을 녹음해 보았고, 몇 초 뒤 화면에는 “삼십 년 담근 순무김치, 오늘 아침 새로 버무렸습니다”라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는 “이게 내 말이야?” 하시더니 한동안 화면을 들여다보셨습니다.
![]() [코리안투데이] 풍물시장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할머니 © 장형임 칼럼니스트 |
요즘 어디서나 인공지능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 말에 반은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예순다섯 넘은 어르신께 향할 때는 이상하게 뒤틀려 들립니다. 마치 지금이라도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코딩을 못 하면 뒤처진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말 대신 다른 질문을 해 보고 싶습니다. 예순다섯이 이미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일자리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먼저 강화가 어떤 섬인지 숫자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5년 12월 강화군 인구는 69,698명이고, 그중 65세 이상이 28,402명으로 40.7%에 이릅니다. 같은 시점 전국 고령화율이 21.2%이니 강화는 나라 전체보다 두 배 가까이 나이 든 섬입니다. 열 명이 모이면 네 명이 어르신인 곳에서, 젊은 사람만을 위한 일자리 이야기는 절반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난다는 사실도 숫자가 말해 줍니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동안 강화군의 19세부터 34세까지 청년은 11,286명이 나가고 8,750명이 들어와 2,536명이 순유출되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2월 7일 강화군 18세 이상 주민 501명에게 강화에 가장 필요한 것을 물었을 때 일자리 창출이 45.1%로 1위였습니다. 규제완화 27.0%, 도로와 교통시설 확충 19.5%, 고령층 복지강화 10.2%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저는 이 조사에서 일자리와 고령층 복지가 따로 놓인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르신에게 일자리는 곧 복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어르신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자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풍물시장 할머니에게서 그 답의 한 조각을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코딩을 몰라도 삼십 년 김치 담근 이야기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인공지능이 하는 일은 그 이야기를 받아 적고 다듬어 세상에 내놓는 일이었습니다. 어르신이 배워야 할 것은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자기 말을 기계에 들려주는 법 하나였습니다.
같은 이치로 저는 여러 자리를 떠올립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옛 지명과 물때, 갯벌 이야기를 인공지능에 들려주어 강화 관광 안내를 함께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민박집 주인이 손님 문의에 답하는 문장을 인공지능으로 정리해 두면, 밤늦은 예약 문의에도 사람의 온기가 담긴 답이 나갑니다. 젊은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 결과물을 어르신이 읽고 “이건 강화 사람 말투가 아니야” 하고 바로잡아 주는 검수 일도 가능합니다. 이 자리들은 모두 젊음이 아니라 세월을 요구합니다.
물론 이런 자리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어르신 곁에 앉아 첫 화면을 함께 열어 주어야 하고, 그 결과가 실제 소득으로 이어지도록 판로를 놓아 주어야 합니다. 저는 그 다리 놓는 일이야말로 강화를 떠나지 않은 청년, 혹은 강화로 돌아오려는 청년의 일자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르신의 이야기와 청년의 손이 인공지능이라는 도구 위에서 만나면, 떠난 2,536명 가운데 몇 명은 돌아올 이유를 찾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곁에는 어떤 어르신이 계신가요. 그분이 평생 쌓아 온 이야기 가운데 인공지능이 받아 적어 세상에 내놓을 만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여러분은 그분 곁에 앉아 첫 화면을 함께 열어 드릴 마음이 있으신가요.
풍물시장을 나서는 길에 할머니는 제게 “다음 장날에 또 와서 그거 한 번만 더 해 줘” 하셨습니다. 저는 그 부탁을 예순다섯 넘은 섬사람이 인공지능에게 건넨 첫 번째 구직 신청서로 받아 적어 두었습니다.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기록은 제가 강화에서 쓰고 만든 책과 서비스에도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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